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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영화 ‘위키드’는 개봉 첫 주 글로벌 2억 28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가 됐다. 주인공 ‘엘파바’가 오즈의 부패한 지도자들과의 전면전을 예고하며 막을 내렸던 터라 후속편에서 그녀의 활약이 어떻게 펼쳐질지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린 팬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1편에서 ‘글린다’와 엘파바는 서로를 ‘밥맛’이라 부르며 갈등과 마찰 관계에서 도무지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도회 사건을 통해 반전의 국면에 돌입, 둘도 없이 친한 단짝이 된다. 가뜩이나 학교에서 놀림감인 엘파바는 글린다가 준 촌스러운 할머니 모자를 쓰고 나타나 춤까지 기괴하게 춰 웃음거리가 된다. 이를 본 글린다는 그녀를 조롱하는 대신 동작을 따라한다. 그러자 엘파바를 놀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그 춤을 따라하며 분위기가 바뀐다. 이를 계기로 둘은 우정을 쌓고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 앞에 당면한 사회 문제에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며 각자의 노선을 걷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마법의 능력도 없이 거짓으로 에메랄드 시티를 통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이 사람들의 공포심을 조성해 자신들을 믿고 따르도록 해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엘파바는 진실을 알리고자 이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글린다는 눈을 감고 현실에 순응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엘파바의 사회 지배층에 대한 정면 도전은 그녀를 사악한 마녀의 프레임을 덮어쓰게 했고 그렇게 엘파바는 세계를 위협하는 ‘악’이자, 에메랄드 시티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
세계 제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파시즘이 부상하는 시기 영화로 제작된 ‘오즈의 마법사’가 거대한 마법의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이 사실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통치자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2025년 제작된 영화 ‘위키드2’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영웅이 부패한 지배층에 맞서 사회 개혁을 실천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만 같았다. 그 기대감을 만들어준 건 전작인 위키드1이었다.
하지만 위키드 2에서는 엘파바에 대한 기대가 집단의 폭력일 수 있다는 서사를 집어넣는다. 영화 초반 도입부에 엘파바가 노란 벽돌길을 까는 혹독한 노동을 하면서도 학대 당하는 동물들을 구하러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사회의 약자를 위해 제 역할을 해낼 것처럼 보였다. 엘파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권자에게 쉽게 조종 당하는 대중을 각성시키기 위해 하늘에다 ‘오즈의 마법사는 거짓이다.(Our Wizard Lie)’라고 쓴다. 하지만 마담 모리블은 이를 지우고 ‘오즈는 죽는다.(OZ Dies)’라고 고쳐 쓰며 오히려 엘파바가 지도자를 암살하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만든다. 이 때문에 알파바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증폭된다.
사람들이 악인 줄도 모르는 ‘진짜 악’에 맞서며 거짓 선전, 권력의 속임수 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야 할 알파마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중력을 거스르면서까지 불의에 대한 저항했던 대의를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다. 사회를 혁명처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사라져 버리는 선택을 한다. 자신을 마녀라고 믿고 자신을 없애는 것이 악을 물리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충족시키며 평화를 지키는 것이 세상에 더 이롭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알파바는 죽음을 가장하고 마녀로부터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을 해방 시킨다. 자신 또한 마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어찌 보면 엘파바가 보여준 결말은 작품의 전편을 이어 나가야 할 내용이 갈 길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엘파바 개인의 삶을 놓고 봤을 때 행복을 위한 용감한 그리고 올바른 결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주의의 폭압에 무력해진 사람들이 그저 여기에 맞서 세상을 구해줄 영웅을 기다리고 그럴만한 인물이 나타났을 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집단의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 자신의 삶을 공공재로 내놓고 사회를 위해 희생시키라고 강압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정의 수호를 누군가는 생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엘파바를 영웅으로 만드는 대신 작품의 뒤편으로 빠지게 하면서 남긴 작품의 메시지는 사회의 시스템을 바꿀 주체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여야 한다는 것이다. 엘파바가 세상이 아닌 자신의 삶을 구하는 선택에 대해 그 누구도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녀의 공적인 역할 또한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그녀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다.
반면 글린다는 어려서부터 마법을 원했지만 쓸 수는 없었다. 대신 환하게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법을 배웠다. 커서도 그녀가 가진 마법의 힘이 아닌 기계로 작동되는 버블을 타고 다니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자신에게 주어진 '착한 마녀'의 이미지에 충실하며 시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실상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악’으로 규정하기엔 너무도 ‘선’한 인물이었다.
엘파바와의 관계에서 막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전개를 우정으로 승화시킨 것 역시 글린다였다. 거짓인 것을 알지만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침묵을 감수하는 길을 걷는다. 이것이 그녀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악’하지 않은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로 몰리며 실존적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면 글린다는 ‘착한 마녀’로서 그녀의 삶을 희생해야 했다. 둘 다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과 이미지로 자신의 삶을 맞춰야 하는 피해자인 셈이다. 이에 알파바는 왜곡된 진실을 들춰내어 바로 잡고자 했고 글린다는 ‘좋은 게 좋은 거다.’며 진실을 덮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엘파바는 세상 속에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됐던 서사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결론을, 그리고 글린다는 진실을 혼자서 간직하고 이에 대한 삶의 무게감을 인내하는 삶을 살아간다. 사라진 자는 말이 없고 남은 자는 침묵함으로써 오즈의 진실은 묻혀 버렸다.
한편, 동심을 파괴하면서까지 보여준 엘파바와 피예로 왕자의 사랑에도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이 둘은 ‘다름'을 악으로 간주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은 외모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편견과 차별 없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것이다. 우정과 사랑을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 글린다는 둘의 사랑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성숙한 처신을 보여준다.
어떤 주제를 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1편이 던져줬던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2편이 이어 나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지만 작품이 제시하는 새로운 논의 그리고 그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위키드’가 아니었다면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법한 것들이었다. 두 마녀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시선과 그에 따른 평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성장한 인격으로 더 나은 선을 위한 희생을 감내했다. 비록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방식의 길을 걷지만 그들의 우정은 떠난 후에도 영원히 영향을 미치며 서로의 삶 속에 긍정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유산을 이어 나갈 것임은 분명하다.
◇ 생각해볼 문제
1. 개인에 대해 사회가 거는 기대가 집단의 폭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엘파바가 사회를 등지고 개인의 행복을 택한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 이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하시오.
3. 서로 다른 관점을 존중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 유익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4. 사회적인 평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5. 오즈의 진실을 대하는 데에 있어 글린다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는지 서술하시오.
6. 오즈의 진실은 밝히는 것이 온당한 지 입장을 정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7. 작품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선은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한 사람에게 거는 기대는 집단의 폭력일 수 있다 ‘위키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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