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논술개런티]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가 ‘사회계약론’ 만들었다?!
이순영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8.23 09:00
  • 같은 시기, 같은 이론을 다른 입장의 근거로 펼친 두 철학자가 있다. 바로 영국의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영국은 혼돈의 시기였다. 정치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그러했다. 영국은 1534년 국왕 헨리 8세가 앤 블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왕비 캐서린(Catherine 1485~1536)과 이혼을 하려 했으나 로마 교황은 이에 반대한다. 그러나 헨리 8세(Henry Ⅷ 1491~1547)는 이혼을 단행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과 절연하고 국교인 영국인 성공회를 세운다. 가톨릭이 이혼을 금기시한다면 종교를 바꿔 이혼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다. 헨리 8세는 이들마저 처형하는데 이때 희생된 인물이 당대 존경받는 대법관이자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였다. 

    이런 공포 정치 속에서도 영국 성공회를 비판하면서 나온 개신교 파가 청교도다. 청교도는 강력한 왕권에 반대하며 의회 중심으로 공화정을 주장하며 시민 혁명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 혁명이다. 혁명이 성공하면서 영국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11년 만에 다시 왕정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왕정복고라고 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청교도들이 대륙을 이동해 세운 국가가 미국이다. 이 격동의 시기에 왕권에 맞서는 세력, 의회파 측 사람이 바로 로크였고 국왕과 국교회에 충성을 맹세한 왕당파 측 사람이 바로 홉스였다.

    17세기의 무질서, 혼란의 시대와 달리 역사의 전개는 평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세워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존 로크의 『정부론』과 더불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기초로 세워졌다. 특히 로크의 『정부론』은  국가권력의 삼권 분립,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 인정에 대한 개념들을 쏟아 내어 현대 국가의 철학적 기틀이 되었고 현대 정치 원칙들을 성립시켰다. 이를 읽다 보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보다는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오히려 익숙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로크는 『정부론』을 통해 ‘왕권은 신이 준 절대적 권력이다’라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한다. “시민이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중심은 시민이다. 따라서 왕이 계약을 위반할 시 시민은 저항할 수 있다”며 이를 전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국가권력의 구성요소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국가권력은 왕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부여될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인 국가 구성원들의 사회계약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는 전제다. 이렇듯 공동체의 힘을 위임받아 사용하는 강력한 권력이기에 오직 공공선을 위해서만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크가 왕권신수설을 일축하며 들이댄 근거가 바로 사회계약론인 것이다. 통치자의 권위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체결한 사회계약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통치자가 시민의 재산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는 같은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토머스 홉스와는 다른 입장이다. 그는 자연 상태를 힘과 폭력에 좌우되는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로 봤다. 그러나 로크는 이와는 달랐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도 자유롭고 평등하기때문에 선의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공동의 자산이 줄어들면서 노동을 통해 획득한 재산 차이에 따라 빈부격차가 생기고 불평등, 사회 갈등과 대립들이 파생되면서 폭력이 벌어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개인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이루고 사회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에게 있어 국가권력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에 위임한 권력이고 그러기에 그 목적은 국민의 이익과 생명 보호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국가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으로서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권력, 고용인에 대한 고용주에 대한 권력,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력, 노예에 대한 주인의 권력과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만약 군주나 권력자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할 때 그 직위를 폐위하고 권력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까지 과감하게 주장한다. 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권력을 나눌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권 분립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집행하는 행정부, 이를 심판하는 사법부 세 기관의 권력을 나눠 균형과 견제 기능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입장의 로크가 홉스의 ‘전체주의’를 자연 상태보다 더 나쁘다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홉스에게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대단히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로 목적과 욕구가 같다면 서로 파멸시키거나 굴복시키려 하므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계약이 필요한데 이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단계이며 이를 통해 국민은 범죄, 무질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홉스는 입법권, 사법권, 전쟁 선포권 이 모든 것이 군주에게 속해 있다고 본다. 이는 분할할 수도 없고 견제받아서도 안 되며 이를 행하기 위한 군주의 행위는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주장한다. 로크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그런 홉스에게 군주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기에 그의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며 이러한 군주의 명예는 백성 전체의 명예보다 위대한 것으로 인식된다. ‘짐이 곧 국가이며 국가가 곧 짐이다.’ 국가와 군주를 동일시하는 절대군주론이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결과이다. 

    군주에게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통치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홉스가 전근대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왕권신수설, 즉 주어진 신분으로서 자동적으로 획득되는 절대적 군주가 아닌 합의에 의해 권력이 이양되는 계약적 군주의 개념을 탄생시킨 것은 시대사적 의의가 있다. 

    흔히들 홉스가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 공격받을 때 공포 속에서 조산된 아이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절대 권력을 지향했다고 분석한다. 그 자신도 어머니는 자신을 무시무시한 공포와 함께 쌍둥이를 낳았다고 하니 국력이 약한 상황에서 태어난 국민이 가지는 공포가 어떤지는 짐작이 간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을 통해 “칼이 없는 계약이란 단지 말에 불과하며 사람들을 보호할 그 어떤 힘도 없다”며 계약의 강제성과 경외감, 그리고 힘을 강조했던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가 과연 시대를 넘어서 당시의 시대적 환경에서 벗어난 시기에 태어났다면 어떤 이론을 펼쳤을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생각해 볼 문제 * 

    1. 로크와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핵심은 무엇이며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 홉스가 “칼이 없는 계약이란 단지 말에 불과하며 사람들을 보호할 그 어떤 힘도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강제성이 없는 법은 타지 않는 촛불과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담긴 뜻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3. 만약 홉스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절대군주에 관한 생각은 달라졌을까? 자신의 의견을 쓰고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4, 다음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핵심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그는 개인들이 공동체를 통해 개인적 이익을 보장받으러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개인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는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과 어떻게 다른지 서술하시오.


    루소는 사회계약을 통해 자연 상태처럼 모든 사람들이 선한 심성을 유지한 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즉 사회 계약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 각자의 의지를 결집하여 일반 의지를 만들어 내고 그것에 의해 운영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구분되지 않고 서로 완전한 일체가 되어 있다. 특히 모든 개인 의지는 공동체의 의지에 완전히 넘겨진 상태이므로 공동체의 의지, 일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에만 복종하는 경우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