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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 주, 월트 디즈니 에니메이션 ‘주토피아 2’는 개봉 수익으로 5억 5950만 달러(약 8220억원)를 기록했다. 주토피아 2를 찾는 관객이 늘고 있는 이유는 모처럼 맘껏 웃고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이야기지만 이는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토피아(Zootopia)는 동물원을 뜻하는 ‘Zoo’와 토머스 모어의 소설의 제목이자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이다. 주토피아는 그 명명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등장하는 동물들은 크기부터가 극명하게 다를 뿐 아니라 심지어 분류군조차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겉으로는 초식동물 육식동물이 평등하고 사이좋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완벽한 사회인 것 같지만 이 안에서도 편견으로 인한 차별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갈등이 산재해 있었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지만 파충류는 제외돼있는 것 자체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상태지만 아무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전 편의 활약으로 주토피아 내부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찰계의 영웅이 되어 있을 것 같았던 토끼, 주디 홉스는 기대와 달리 초반부터 문제를 일으킨다. 전진 사기꾼이었던 여우 닉 와일드와 파트너가 됐지만, 밀수업자 안토니를 잡겠다는 의욕에 앞서 서장의 명령에 무시했던 것이다. 심지어 안토니를 추격하다가 주토피아와 기후 장벽 설립자 에비니저 링슬리의 동상을 부수며 웃음거리가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주디와 그의 파트너 닉은 파트너십을 위한 상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삐걱거리는 관계로 낙인이 찍혔던 주디와 닉은 주토피아 건립 100주년 기념 파티에 참석한다. 이때 주토피아에 추방된 뱀, 게리가 나타나 기후 장벽을 만드는 연구 일지와 함께 링슬리 가문의 수장인 밀튼을 납치한다. 게리는 주디에게 연구일지는 자신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증거가 있다고 설득하고 주디와 닉은 이 여정에 합류한다. 그렇게 주디와 닉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사실 주토피아를 건설하고, 기후 장벽을 만든 사람은 에비니저 링슬리가 아니라 게리의 증조할머니 에그네스고 이 모든 공을 에비니저가 가로챘던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에비니저는 자신에게 방해가 됐던 거북에게 살해의 누명을 씌우고 파충류를 도시에서 쫓아낸다. 그렇게 링슬리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차별적이면서도 부패하게 도시를 장악해왔지만,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오늘날 주토피아를 있게 만든 국부로서 그들을 대우해왔다.
게리와 함께 진실을 밝혀줄 특허권을 찾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 겪었던 주디와 닉은 결국 링슬리 가문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그들을 감옥에 보낸다.
또한 아그네스가 진정한 주토피아의 설립자로 인정받게 도와준다. 그렇게 파트너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었던 주디와 닉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게리 가족과 파충류는 도시로 복귀시키며 주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만든다.
주토피아 2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링슬리 가문의 음모와 비리를 밝혀내는 것은 나약하고 왜소해 보이는 여성, 주디였고, 인간에게 선악과를 가져다준 간악할 것 같았던 뱀은 링 가문의 연구 일지를 훔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주토피아와 기후 장벽을 만든 영웅이었다.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배우 출신 시장 브라이언 위드댄서는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 사실 링 가문의 권력에 휘둘리는 무능하고 멍청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 열외 되고 차별받던 파충류 또한 오해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미 사회 속에서 굳어져 버린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해버렸다.
이렇듯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일 수도 있다. 이것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조차 분별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리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름’에 집중을 할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일지도 모른다. 닉이 주디에게 “나는 우리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아. 왜나하면 나에게 중요한 건 너니까.”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 사는 사회에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사람’이지 그 부차적인 부산물이 아니다. 빈부, 외모, 인종과 남녀 차이 등의 ‘다름’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인간’에 대한 존엄은 그 뒤로 밀려나게 된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을 공존재라고 본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이질적인 타인과 함께 사회 속에서 어우러져야 하는 존재다. 주토피아는 이에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해 나가기 위해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넘어 아닌 ‘다름이 아닌 존재를 볼 것’을 새롭게 역설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는 우리가 인종은 물론 모든 각종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무해하고도 실효성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생각해볼 문제
1. 주토피아가 동물들의 이상세계로 여겨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실체는 어떠했나?
2. 주토피아에서 기존의 편견을 뒤엎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이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시오.
3. 편견을 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4. ‘다름’에 집중하지 않고 ‘존재’를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서술해보자.
5. 인간이 공존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편견을 깨부수는 통쾌한 이야기 ‘주토피아’
-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닌 ‘존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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