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으면서 1천 8백명 이상의 사망자와 1천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입히며 최악의 참사를 낳았다. 이때 국가의 재해 시스템이 붕괴됐고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공간이 바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였다.
이 병원은 뉴올리언스의 다른 병원에 비해 사망한 환자 수가 많았다. 또한 병원에서 발견된 부패한 시신 45구 중 절반이 안락사에 사용되는 약품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수사관들은 조사에 나섰고 의사 안나 포가 간호사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일부 환자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해 안락사를 주도한 정황을 밝혀냈다. 해당 주 검사는 곧 그녀를 2급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닥터 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도움을 주는 의사로서 역할을 다했을 뿐이라고 입장을 변호했다.
닥터 포의 행동이 과연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였는지, 아니면 죽음이 진행된 환자들에게 고통을 줄여주는 행위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당시 병원의 상황이 처참했던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태풍 카트리나의 직격타를 입은 메모리얼 병원은 재난이 진행되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전력마저도 끊기게 되었다. 자체 발전기 장치인 자동 변환 개폐기는 침수되어 쓸 수가 없었고 에어컨 가동이 멈춰 병원은 화씨 100도를 넘어서면서 극도의 더위 속에 놓였다. 화장실 하수도는 막혔고 물도 쓸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 본사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사고 대응 메뉴얼이 없었다. 지휘 체계가 없다 보니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비상 위원회를 꾸려 모든 것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구조 헬리콥터가 동원됐지만, 야간 구조는 위험하단 이유로 중단됐고 에어보트 구조가 있었지만 메모리얼 병원은 우선순위에서 다른 병원들에 밀려났다.
결국 병원은 민간 자원 구조대에게 모든 걸 의지하게 된 상태에서 나름의 구조 우선순위를 정했다. 병원은 환자를 혼자서 이동이 가능한 환자는 1급, 부축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2급, 매우 위중한 환자나 심폐소생술 거부를 한 환자들은 3급으로 나누었다. 이 기준은 부상자 선별 시스템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임기응변의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의사들이 판단이 틀릴 가능성도 다분했다. 특히 심폐소생술을 거부한 환자를 3급으로 분류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컸다. 심지어 한 의사는 3급으로 분류되었던 마비 환자를 남편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1급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이렇게 불완전한 기준이 환자의 생사를 갈라놓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료 종사자들은 최대 다수 사람에게 최대 이익이 되는 진료를 합리적으로 분할해서 하려고 한다. 물론 ‘이익’을 ‘생명의 숫자’로 보는가 아니면 ‘품질’ 혹은 ‘수명’으로 보는가 따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하든 의료진은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고자 노력한다. 이에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환자 분류시스템은 상태가 가장 나쁜 환자가 대피하거나 치료받는 동안 상대적으로 경미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기다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닥터 포와 동료들은 이러한 분류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한 결과가 향후 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환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안락사를 시킨 것은 아무리 특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렇듯 위급한 상황에서 개인이 내리는 결정은 위험부담이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특정 그룹의 환자를 배제하는 규칙이 만들어질 때마다 위험이 따르고 어떤 경우에는 재난만큼이나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문제 제기에 맞서 닥터 포는 ‘최대 다수의 최대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사회에 던졌다. 정부가 재난 구조에 실패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게 버림받은 의사와 간호사한테 전가 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피해가 발생한 당시 정부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 수수방관하다가 상황이 종료된 후 뒤늦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와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에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닥터 포의 변론은 여론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재난 의학의 규약에 따라 행한 의료행위는 민사소송을 면책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법안 규정에 따라 결국 닥터 포는 불기소 처분된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재난 상황에서 의사의 결정이 법과 마찬가지도 작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곳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환자들의 삶과 죽음은 결국 한 개인의 결정에 달린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환자를 구할 수 있음에도 의료인이 개인적이고도 독단적인 선택으로 많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동들이 면책이 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립 채리티 병원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채리티 병원도 메모리얼 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태풍의 피해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심지어 메모리얼 병원에 비해 환자 대비 의료진의 수가 적었고 환자 수는 두 배나 많았다. 그러나 사망한 환자의 수는 단 3명뿐이었다. 병원 직원들은 전력이 끊기자 자신들 승용차에 있는 기름을 추출해 이동식 소형 발전기에 연료를 공급했다. 이를 통해 중환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동력이 되었다. 채리티 병원은 위중한 환자들을 가장 처음으로 내보냈다. 메모리얼과 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또한 의료진들은 병원의 긍정적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장기자랑을 하기도 했다. 재난이 왔을 때 서로를 더 아끼고 보살핀 것이다. 이렇게 의료진이 단합하여 보여준 상호신뢰와 민주주의적 태도는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때로는 재난보다도 더 큰 재난은 생존자들 간의 불신과 대립이 되기도 한다. 채리티 병원 의료진들은 이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던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도덕적 딜레마 속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 놓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둘 다 재산상의 손실이라든지 생명의 피해 등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 같은 것 말이다. 이때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다음을 위해 재난에 대한 허술한 시스템과 부실한 대처들을 고쳐 나가야 한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실수라고 볼 수가 없다. 아무리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재난이라 할지라도 인재(人災)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력을 키우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다. 이것을 놓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생각해 볼 문제 ◇
1. 의료진 모두가 병원을 탈출하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환자들은 병원에 남게 되었다. 이때 환자들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법을 어기면서 이들을 안락사 시키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보자.
2.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에서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환자 분류를 한다면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3. 닥터 포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4. 재난 발생 시 의사의 결정이 곧 법인 상황이 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가?
관련뉴스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들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악몽 같은 이야기 ‘소년의 시간’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영화 ‘미키 17’, 인류 미래에 관한 질문을 던지다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 것일까?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소년이 온다’
-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영화 ‘위키드’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
-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침묵하는 지식인, 왜 악의 축이 되는가?
-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촉법소년법, 이대로 괜찮은가?
- [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세상을 선하게 만든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
Copyrightⓒ Chosunedu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