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논술개런티] 침묵하는 지식인, 왜 악의 축이 되는가?
이순영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11.22 09:00
  •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캐릭터는 지배권력층과 이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피지배층이다. 하지만 계층이 양분된 구도로 정착해가는 상황에서 이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당나귀 ‘벤자민’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벤자민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글을 능숙하게 읽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개입을 일절하지 않는다. 게다가 세상에 부조리는 늘 있어 왔고 그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회의주의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개 소설 속에는 악의 무리에 저항해 싸울 주인공 격인 선이 등장한다. 이 작품 속 벤자민은 사회를 바꾸고 이야기의 전개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임에도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방관자적 인물에 역할에 머물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태평양에 돌 하나 던진다고 뭐가 바뀌지?’하는 회의적인 태도는 문제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악행을 미워하지 않는’ 지식인들은 악의 세력이 자리 잡는 토양을 보고도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정치는 원래 부패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순간, 정치는 진짜 부정부패한 것이 되어버린다.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도 침묵한다면 이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조리에 동조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악이 되어 돌아온다는 데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고여 불의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장기화 되다보면 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고착된다. 불의한 세상일수록 역설적으로 빠르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면 개선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개악(改惡)이 될 뿐이다. 이를 보고도 동물들처럼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부류도 있을 테고, 벤자민처럼 알면서도 이에 눈을 감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 개나 돼지들처럼 결탁하는 자들도 생겨난다. 

    불의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발목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침묵하는 자들이 결국엔 악에 힘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이것이 곧 불의한 세상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 시위 현장에서 “If you are silent you are compliant.(당신이 침묵한다면 동조하는 것이다)”란 문구는 많이 사용되는 건 이런 맥락때문이다.  

    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 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취급이 되느냐에 따라 이것에 힘이 실리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간단하고도 단순한 진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우리 사회는 크나큰 고통에 빠지게 된다. 악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를 초래한다. 소수가 침묵할 때 세상은 진리의 전부를 잃어버리게 된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악에 저항하고, 견제하며 악을 지탄의 대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신념을 가지고 용기 있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조차 없다. 불가능해 보이는 정의일지라도 그것이 불의에 맞서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려면 정의가 없는 곳일지라도 정의를 논해야만 한다. 그렇게 정의를 바닥에서부터 일으켜 세울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듯 역사를 바꾸는 힘은 올바른 시대정신을 가진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물리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고 있는 아이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종래의 시공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켜 놓았다. 이런 업적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 출신으로 당시 히틀러 정권에 탄압에 저항해 유대민족주의를 지지하며 평화주의 운동가로도 활약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참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것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은 악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가 나서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희의적인 생각보다는 ‘내가 아니면 누가하랴?’, ‘지금 아니면 언제?’하는 행동적이고 실천적인 의식으로 시작한 날갯짓이 태평양을 건너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날은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상당 부분 실현이 되어 있고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또한 높아졌다. 내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정의의 목소리를 내게 되면 반드시 나의 곁에 함께 서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연대의 힘을 발휘하면 미비해 보였던 것들이 그 어떤 세력보다 더 강력한 힘과 영향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침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된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 생각해 볼 문제 ◇ 

    1. ‘침묵하는 것은 곧 악의 편’이라는 의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2.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우리의 자유와 인권에 위해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3. 다수의 무책임하고 무비판적인 합의는 왜 위험한지 서술하시오.

    4. ‘정치는 원래 부패한 것’이라고 인정한 순간 정치가 부패한 것이 된다는 말의 뜻을 해석해서 쓰시오.

    5. 만약 벤자민이 불의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면 동물동장의 변화는 가능한 것인지 상상하여 이야기의 결말을 써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