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서 성장으로”… 서울샛별학교의 다음 걸음 (인터뷰②)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기사입력 2025.05.27 09:00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이사 인터뷰

  • 수업 중인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수업 중인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서울 성동구 금호동, ‘서울샛별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은 시험 점수 대신 존재의 회복을, 성적표 대신 관계의 복원을 꿈꾸는 학교다. ‘한 사람의 배움이 멈추지 않도록 돕자’는 다짐으로 시작된 이 학교는 20대 청년들의 자발적 운영과 수십 명의 어르신, 이주민, 학교 밖 청소년들이 함께 어우러진 느린 배움터로 성장했다.

    서울샛별학교의 대표이자 창립자인 조수현 씨는 서울샛별학교를 ‘사람이 서로를 지탱하는 곳’이라 말한다. 수업 끝 무렵 어르신과 나누는 식사, 무슬림 이주 여성과의 낯선 첫인사, 텅 빈 교실에서 느낀 사회적 단절의 깊이까지. 그는 이 모든 작은 일들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서울샛별학교를 이끌어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크게 느낀 건 아무래도 책임감이에요. 특히 함께한 청년 교사들에게 ‘내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커요. 샛별학교는 급여도, 수당도 없지만 많은 청년이 수업뿐 아니라 식사 챙기고, 상담하고, 생활지도까지 진심을 다해 참여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도 스스로에게 묻게 돼요.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우리가 만든 이 공간이 누군가에겐 진짜 의미가 되고 있을까?’ 같은 질문들 말이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늘 학습자분들의 변화 속에서 돌아와요. 글자를 다시 배우며 활력을 찾으신 어르신, 샛별에서 공부를 시작한 엄마를 보고 ‘엄마의 외로움을 덜어줘서 고맙다’며 눈물로 전화 주신 따님, 자신감을 되찾고 한국 생활에 애착을 가지게 된 이주 여성분까지. 저희가 건넨 전단지 하나, 수업 하나, 짧은 대화 한 번이 누군가의 삶 전체를 바꾸는 걸 직접 보고 듣게 되면 ‘아,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구나’하고 마음이 다시 단단해져요. 그게 샛별학교가 저한테 주는 가장 큰 울림이에요.”

    ─ 운영하면서 마음이 가장 무거웠던 순간이 있다면요?

    “솔직히 제일 힘들었던 건 마음만으론 해결이 안 되는 현실의 벽을 마주했을 때였어요. 처음 학교를 만들고 나서 함께하겠다는 청년 교사들은 금방 모였거든요. 근데 정작 수업을 듣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었어요. 준비한 교실은 텅 비어 있고, 전단지를 들고 탑골공원, 동묘, 미용실, 재래시장까지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연락 한 통 오지 않는 날이 많았죠. 그때 느낀 건 단순히 참여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단절의 깊이’ 였어요.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정보를 전할 관계 자체가 없다는 현실이 정말 아프게 다가왔어요.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고 조용하고, 때론 상처도 남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그리고 또 하나, 함께하는 청년 교사들에 대한 책임감이었어요. 수업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이들을 지치게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자주 들었죠.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교실, 자원은 부족한데 기대는 높고, 흔들릴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다시 붙잡아준 건 작은 장면들이었어요. 샛별학교는 늘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의 온기로 채워지는 공간이에요. ‘다음 학기는 더 잘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게 지금도 제가 이 길을 계속 걷게 만드는 이유예요.”

    ─ 이런 활동들이 더 이어지려면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까요?

    “정말 많죠.(웃음) 샛별학교를 운영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힌 건 행정적인 정보의 벽이었어요. 처음엔 고유번호증이 뭔지도 몰랐고, 세무서나 은행에 가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결국 인터넷에서 찾고, 부모님께 묻고, 아는 분들께 하나하나 여쭤보며 배워갔죠. 

    대학생이 비영리 기관을 운영한다는 건 정말 끝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어요.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보조금 제도였어요. 꼭 필요한 재정 지원인데, 조건을 보면 ‘상근 인력 2인 이상’ 이런 기준이 많거든요. 근데 저희처럼 자원봉사자로 꾸려지는 단체는 그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죠. 그렇다고 덜 헌신적인 것도 아닌데, 기준에 막혀 아예 지원조차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상근이 아니어도 진심을 담아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팀들이 많다는 걸, 제도가 좀 더 유연하게 받아줬으면 해요.

    또 하나는 초보 활동가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이요. 처음 시작할 땐 ‘공문은 어떻게 써야 하지?’, ‘어디에 뭘 신청해야 하지?’ 이런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막막해요. 누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체계만 있었어도 덜 헤맸을 거예요. ‘공익 스타트업 매뉴얼’ 같은 게 생긴다면, 저희처럼 처음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결국은 이런 활동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어느 동네에서나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문턱을 낮춰주고, 사회가 ‘그래, 너희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해’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 그게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청년에게 가장 큰 희망이 될 거예요.”

  • 수업을 듣고 있는 서울샛별학교 학생. / 장희주 기자.
    ▲ 수업을 듣고 있는 서울샛별학교 학생. / 장희주 기자.

    ─ 앞으로 서울샛별학교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길 바라나요?

    “샛별학교는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로 시작한 곳이 아니었어요. ‘한 사람의 배움이 멈추지 않도록 한 명의 청년이 먼저 손을 내밀자’라는 그 단순한 마음이 모여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 정신을 지켜가며 조금 더 넓고 오래갈 수 있는 학교로 자라나길 바라고 있어요.

    우선은 ‘지역 기반 시민대학’으로 확장하는 게 꿈이에요. 단순히 글자만 배우는 게 아니라, 건강, 금융, 디지털, 문화, 시민권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배움이 이어지는 공간이요. 특히 디지털 문해교육에 대한 수요가 정말 많아서 지금은 교재도 따로 만들고 커리큘럼도 계속 다듬어가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전국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샛별학교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만의 사례가 아니라, 각 지역 청년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작은 대안학교가 전국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지역 단체나 평생학습관, 공공기관과의 협업도 하나둘 준비 중이에요. 지역마다 다 다른 사정이 있으니, 그에 맞게 자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고요.

    내부 시스템도 더 지속 가능하고 전문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샛별에서의 활동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전문적인 일이라는 자부심을 모두가 느끼도록요. ‘이곳에서 시간이 내 인생을 바꿨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변화를 오래 지켜줄 수 있는 힘을 더 갖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사람이 중심인 교육이라는 원칙은 놓치지 않고요.”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만약 다른 지역에도 샛별학교가 생긴다면, 꼭 담고 싶은 ‘서울샛별학교만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빚을 진 세대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게 샛별학교의 중심에 늘 놓여 있는 정신이에요. 사실 저희 외할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셨고, 친가 쪽 어르신들도 일제강점기를 겪으시느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셨어요. 그런데도 신문을 읽고, 생계를 꾸려가시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셨잖아요.

    저는 어르신들께 카카오톡 쓰는 법을 알려드리는 이 일이 결국은 제 외할머니께 해드리지 못했던 걸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하는 거라고 느껴요. 이건 단순히 ‘좋은 일’, ‘봉사’의 차원이 아니라 저희 세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학생들에게도, 함께하는 봉사자들에게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고 얘기해요. 이런 마음이야말로 샛별학교가 교육기관을 넘, 세대 간의 신뢰와 책임, 존중을 잇는 공동체로 설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다른 지역에서도 샛별학교가 생긴다면, 교재나 커리큘럼 같은 겉모양보다 더 중요한 건‘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그 본질적인 마음과 신념이에요. 그 정신만은 꼭 함께 품고 시작해 주셨으면 해요. 그게 샛별학교를 샛별학교답게 만드는 힘이고, 전국 어디에서든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해주는 따뜻한 나침반이 되어줄 거라 믿어요.”

    ─ 간혹 스스로에게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질문 정말 많이 했어요.(하하)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늘 단순하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샛별학교를 운영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거창한 사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제 자원과 시간, 에너지로 눈앞의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큰 변화보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마음을 덜 외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참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는 절대 못해요. 샛별학교는 저 혼자 만든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 청년 교사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남아 이야기 나눠주는 학습자분들, 응원의 말 한마디를 건네주신 지역 주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저는 요즘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보다는 ‘이 일을 하며 나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를 더 자주 생각해요. 그 성장이 멈추지 않는 한 저는 계속 이 길 위에 서 있을 거예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게 ‘마땅한 일’이라 믿기 때문이에요.”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 / 장희주 기자.

    ─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가’라고 하셨는데요. 요즘 스스로에게서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나요?

    “예전에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지만 샛별학교를 하면서는 ‘개인주의’나 ‘냉소적인 시선’ 같은 걸 스스로 더 경계하게 됐어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신뢰하면서 바라보게 됐달까요. (웃음) 처음엔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에요. 예전엔 혼자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함께하는 선생님들, 어르신들,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사람 사이의 온기’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매일 실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나는 이 따뜻한 공동체를 평생 찾아다니며 살아가겠구나’하는 마음도 들어요.

    또, 제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잇고그 안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 그게 저한테 정말 잘 맞고 보람도 커요. 특히 제가 지칠 때, 오히려 어르신들이 저를 위로해주실 때가 있어요. 시험 기간이라고 하면 약밥을 싸 오시고, 연애로 속상해하면 ‘그런 건 다 지나가요’ 하면서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럴 때마다 깨달아요. 나도 선생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학생이라는 것을요. 이젠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제가 자라고 있다는 걸 더 깊이 느껴요. 지금의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배우고 있는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