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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처럼”
서울샛별학교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제도 밖으로 나온 한 청년의 배움에 대한 갈증, 그리고 관계의 단절 속에서 홀로 길을 찾아야 했던 그 경험이 씨앗이 됐다.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가 팬데믹으로 귀국한 뒤, 정보도 학원도 부족한 지방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그는 절실히 깨달았다. 교육에서의 진짜 격차는 ‘정보’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2021년 같은 문제의식을 품은 청년들과 함께 그는 서울샛별학교를 열었다. 배움을 포기했던 어르신, 언어의 벽에 막힌 이주민, 제도 밖 청소년과 느린 학습자까지, 삶의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있던 이들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시도였다. 이 학교의 이름엔 단순한 상징을 넘어선 실천의 언어가 담겨 있다. 샛별처럼 먼저 빛나며 곁을 밝혀주는 존재가 되기를,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에서야말로 교육 사각지대의 현실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변화를 시작하자는 다짐을 담았다. 그렇게 서울샛별학교는 ‘누구나 다시 배울 수 있는 용기’, ‘다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는다.
이제는 수업 시간보다 수업 뒤의 식사 자리를 더 기다리는 어르신, 처음으로 손주에게 편지를 쓴 할머니,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던 이주 여성이 친구를 데려오는 모습들이 이 학교의 오늘을 말해준다. 배움은 지식의 습득을 넘어 삶의 회복이자 관계의 시작임을 서울샛별학교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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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샛별학교가 어떤 취지와 철학으로 설립되었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서울샛별학교는 제 개인적인 배움의 결핍에서 출발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한 뒤,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갑작스럽게 귀국했어요. 이후 경남 함안에서 홀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대학 진학을 시도했죠. 서울처럼 학원이나 정보가 풍부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인터넷 강의와 독학 교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교육 격차는 단순한 실력 차이가 아니라 ‘정보와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대학에 진학한 이후, 저처럼 제도 밖에서 홀로 길을 찾아야 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어요. 그렇게 지난 2021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과 함께 서울샛별학교를 시작하게 됐죠.”
─ 학교 이름이 참 인상적인데요. 어떤 뜻과 바람이 담겨 있나요?
“샛별은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별이잖아요. 다시 배움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처음으로 빛을 비춰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샛별학교에서는 학생도 교사도 각자의 방식으로 샛별이 됩니다. 누군가는 늦게 빛나고, 또 누군가는 먼저 곁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죠. 결국 중요한 건 ‘같이 빛난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도시가 많은 자원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배움의 사각지대도 많다는 걸 저희가 직접 느꼈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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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분들이 주로 찾아오나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세요. 나이도 국적도, 학습 수준도 제각각이지만, ‘지금이라도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문을 두드리시죠. 2025년 1학기 기준으로는 총 82명이 등록해 계시고요, 어르신이 약 70%, 이주민이 20%, 학교 밖 청소년이 10% 정도예요. 그 외에도 느린 학습자, 발달장애인, 새터민, 고립된 중장년층이나 은둔형 어르신까지, 참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분들이 함께하고 계세요.
어르신들은 한글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은행 업무나 대중교통 이용, 손주랑 문자 주고받는 일처럼 일상에서의 불편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세요. 이주민 학습자분들 가운데는 결혼이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도 많아요. 고부 갈등, 육아 스트레스, 언어 장벽으로 위축된 마음을 회복하고 싶어서 오신 경우가 많고요. 청소년이나 느린 학습자분들은 배움의 속도보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학습 방향을 찾아가고 있어요.
또, 어떤 분들은 사실 글자는 다 읽을 줄 아세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오시는 거예요. 그분들에겐 수업이 단지 공부가 아니라, 함께 숨 쉬고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늘 그래요. 이곳은 ‘배움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학교’라고요.”
─ 샛별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건 바로 ‘관계 회복형 학습’이에요. 단순히 뭔가를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고, 스스로 존중하게 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한글을 배워서 손주한테 문자 하나 보내는 순간,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겨요. 혼자 밥을 드시던 분이 수업 끝나고 다른 분들과 식사 약속을 잡는 것만으로도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받으시고요.
이런 걸 가능하게 하려면 단순히 수업만으론 부족해요. 그래서 저희는 정기 상담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모든 학습자에게 한 달에 한 번 이상 상담이 돌아가고, 상황이 힘든 분들에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드리려 해요. 기록도 꼼꼼히 남겨서 담당 교사가 바뀌더라도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하고 있고요.
또 한 가지, 샛별학교는 ‘왜 아직도 이걸 못 하세요?’가 아니라, ‘괜찮아요, 천천히 같이 해봐요’라고 말하는 학교예요. 처음 오실 때는 눈치를 많이 보시지만, 그런 말 한마디에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걸 자주 봐요. 어떤 어르신은 ‘수업도 좋지만, 수업 끝나고 같이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저희 학교가 지향하는 걸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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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함께 배우면 세대나 언어의 차이로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순간이 꽤 많았어요.(웃음) 특히 작년 여름, 무슬림 이주민 가족분들이 대거 등록해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수업 방식이나 생활 리듬이 잘 맞지 않으면서 연락없이 수업을 중단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했어요. 무슬림 문화에 맞춰 교재부터 교실까지 다 준비해두고 기다렸는데, 며칠 만에 연락이 끊겨버리면 사실 마음도 운영도 많이 흔들렸죠.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언어와 문화의 차이였어요. 한 교실 안에 아랍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등 다양한 언어가 섞이다 보니 ‘왜 여기서 그런 말을 하느냐’ 같은 갈등도 있었고요. 거기에 세대 차이까지 겹치면, 같은 수업이어도 받아들이는 속도나 방식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분반 수업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어요. 문화권에 따라 그룹을 나누고, 각 그룹에 맞는 교재도 따로 만들었죠. 예를 들어 결혼이주 여성분들에겐 한글과 한국어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교재를, 어르신들에겐 문해 중심 교재를 드렸어요. 이와 더불어 수업엔 항상 교사 한 분과 보조 선생님 두세 분이 함께 들어가요. 문화나 언어 장벽이 있을 땐, 수업 중에도 자연스럽게 보완해줄 수 있도록요.
또, 교실 안에선 교사가 중심을 잡고, 불편한 분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하는 메뉴얼도 마련해 뒀고요. 물론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어요. 다양한 배경이 모였다는 건 분명 도전이지만, 그 안에서 ‘같이’ 배운다는 감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게 샛별학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기도 해요.”
─ 샛별학교의 교사진과 커리큘럼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샛별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운영이 100%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배움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공감에서 시작된 청년들이 함께 모였어요. 2025년 현재, 함께하는 교사와 운영진은 총 37명인데요, 대부분이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나 졸업생들이에요. 전공도 교육학, 간호학, 공학, 디자인, 의학까지 정말 다양하고요. 어떤 친구는 직접 교재를 만들고, 또 어떤 친구는 커리큘럼을 기획하거나 공간을 꾸미고, 행정이나 예산을 챙기기도 해요. 유급 인력 없이 돌아가는 조직이다 보니, 정기 교무회의나 팀 회의로 늘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손발을 맞춰가요.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진심을 다해 시간을 내어 함께한다는 점이 샛별학교의 진짜 힘인 것 같아요.
수업은 모두 소규모 맞춤형으로 운영돼요. 학습자 한 분 한 분의 속도와 필요에 맞춰 유연하게 구성하고, 수강 기간에도 제한이 없죠. 물론 전액 무료고요. 요즘엔 기초 문해력과 디지털 활용 능력을 함께 키우는 교육에 집중하고 있어요. 팬데믹 이후에 디지털이 일상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겪는 불편이 정말 크거든요.
특히 샛별학교의 디지털 수업은 실생활에 바로 쓰일 수 있게 1단계부터 천천히 구성했어요. 스마트폰 켜고 끄기, 글자 키우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단계부터, 카카오톡, 키오스크 주문, 앱 사용, 유튜브 보기, 그리고 마지막엔 보이스피싱 예방, 은행 앱 사용, 개인정보 보호까지 이어지죠. 저희가 늘 고민하는 건, ‘이 배움이 진짜 이분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에요. 그 물음 앞에서 저희의 커리큘럼은 늘 생활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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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샛별학교에서 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나 성장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샛별학교에서의 배움은 단순히 뭔가를 ‘배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요. 가장 큰 변화는 결국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감각을 되찾는 순간이에요. 처음 오시는 분 중 ‘내가 이 나이에 뭘…’ 하며 주눅 들어 계신 분들이 많아요. 이후 글자를 하나씩 익히고, ‘이젠 은행에서 자식 안 기다리고 혼자 출금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실 때, 눈빛이 180도 달라져 있어요. 어떤 어르신은 손주에게 처음 편지를 쓰셨는데 ‘이게 제 인생 첫 자랑거리예요’라며 울먹이셨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또, 변화는 관계 속에서도 일어나요. 시장에서 말 한마디 못 하시던 이주 여성분이 ‘이젠 조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시고, 혼자 지내시던 독거 어르신은 ‘이 학교가 내 주말 약속이에요. 누군가 내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맛이 나요’라고 하시기도 했죠. 최근에 가장 감동받은 말은 ‘이제는 저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요’입니다. 이 말은 ‘수혜자’에서 ‘주체자’로 전환됐음을 의미하거든요. 기존 학생이 새로 오신 학습자의 멘토가 되고, 공동체 활동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진짜 배움의 힘을 느껴요. 이처럼 샛별학교가 바라는 건 시험 점수나 결과가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고 관계를 맺으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이에요. 저희는 그걸 ‘사람 중심의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바꾸는 진짜 힘이라고 믿고 있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천천히 같이 해봐요”… 배움으로 잇는 공동체 ‘서울샛별학교’ (인터뷰①)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 조수현 서울샛별학교 대표이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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