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는 과목이 아닌, 생각하는 과목으로” 권오남 교수가 그리는 수학교육의 미래 (인터뷰②)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기사입력 2025.04.24 09:00

- 권오남 교수, 국내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 선도
- 수학은 ‘정답을 맞히는 과목’이 아닌, ‘사고력’을 기르는 훈련

  •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교수.
    ▲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교수.

    (인터뷰①에 이어)

    수학 과목은 초·중·고 학교 급별에 상관없이 주요 과목으로 꼽힌다. 특히, 국내 입시에서 수학은 합격의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과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상반되게, 수학을 기피하는 학생들이 타 과목에 비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수포자’라는 단어는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이미 만연하게 퍼져있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수학을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이유는 실패의 경험만 반복했기 때문”이라며 “수학의 재미는 ‘풀었다’가 아니라, ‘생각했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국내에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이라는 새로운 학습법을 제시하고, 학생 활동 중심의 교실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International Group for the Psychology of Mathematics Education, PME)의 아시아 여성 최초 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권오남 교수는 교실에 자리 잡힌 ‘수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수 학습 중심의 전통적인 수업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자는 학생들이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 국내에 ‘플립드 러닝’이라는 학습법을 제시하고 선도해왔습니다. 플립러닝이란 어떤 교육법인가요?

    우리말로는 거꾸로 학습이라고도 불리는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은 전통적인 교수-학습의 순서를 ‘flipped(뒤집다)’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교실 수업 시간에 개념을 설명하고 과제로 문제를 푸는 기존 방식과는 반대로, 학생이 수업 전에 핵심 개념을 먼저 학습하고, 교실에서는 그 개념을 적용하고 확장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플립드 러닝의 핵심은 단순히 순서를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실에서 학생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할 수 있느냐입니다. 교수자는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고 토론하도록 유도하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학생이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에서, 직접 구성하고 탐색하는 주체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교육의 본질적인 변화를 이끕니다. 저는 플립드 러닝을 단지 교수법의 하나로 보지 않고, 학생 중심 학습의 철학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학 교육자로서, 수학 수업에 플립드 러닝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기존 교육방식과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수업에서 자주 활용하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일상과 연결된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수학적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이런 방식은 학생들이 수학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플립드 러닝과 기존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학생이 수업의 중심에 서느냐 아니냐’입니다. 교사가 아닌 학생이 먼저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지식을 만들어가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죠. 수학은 특히 개념 간 연결성과 사고 과정이 중요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도록 하는 수업 구조가 훨씬 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 실제 수업 결과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으며, 어떤 효과를 보였나요?

    처음 플립드 러닝을 도입했을 때는 학생들도 다소 낯설어했습니다. 기존처럼 교수자의 설명을 듣고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수학 개념을 단순 암기가 아니라 ‘이해’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체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대학 수학 과목인 미분방정식을 중심으로 플립드 러닝과 전통적인 설명식 수업 방식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었는데요. 그 결과, 절차적 지식(계산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개념적 지식(이해 중심 사고)에서는 플립드 러닝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1년 후 같은 집단을 추적 조사했을 때 플립드 러닝을 경험한 학생들이 절차적 지식까지 더 잘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학습의 지속성과 깊이 면에서도 플립드 러닝이 강력한 교수 전략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여러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게재되며, 플립드 러닝의 효과를 이론적·실증적으로 동시에 보여준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어요. 플립드 러닝은 단순히 수업의 형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지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교육적 철학의 전환입니다.

  • ─ 현재 전 세계 수학교육 방향은 어떠하며, 이를 어떻게 한국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현재 전 세계 수학교육의 흐름은 단순 계산 능력 중심에서 벗어나, 개념적 이해, 문제 해결력, 그리고 실제 맥락에서의 적용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수학적 사고력(mathematical thinking)과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졌어요. 이는 단지 지식을 ‘배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수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 철학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STEM 교육이나 데이터 리터러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수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수학이 기술과 연계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을 한국 수학교육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업과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정답 중심, 빠른 풀이 중심의 교육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학생이 수학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표현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해져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서로의 풀이를 비교하며 수학적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교수자의 역할도 강조돼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플립드 러닝, 협력 기반 수업, 수학적 모델링 수업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왔어요. 실제로 이런 수업 방식이 학생들의 개념 이해와 학습 동기를 크게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축적되고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수학교육의 방향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의미 있게’입니다. 한국도 이제 정답보다 질문, 결과보다 사고의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수학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수학은 특히 기본기 없이 성적을 올리기 어려운 과목이죠. 수학에 꾸준히 강점을 보이는 학생들의 공통점이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수학은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올려야 하는 과목입니다. 제가 오랜 시간 수업을 해오며 관찰한 결과, 수학에 강한 학생들에게는 몇 가지 뚜렷한 학습 태도가 있었는데요. 바로 ‘개념 중심의 학습 자세’입니다. 이 학생들은 공식을 단순히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렇게 되는가?”를 스스로 묻고 그 배경 원리까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오답을 그냥 넘기지 않고 철저히 분석한다는 점입니다. 틀린 문제를 반복하며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고, 스스로 보완하려는 태도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들은 수학을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과목’으로 보지 않고, 사고력을 기르는 훈련의 기회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나의 문제를 여러 방식으로 풀어보려 하거나,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의 이해도를 점검하기도 하죠.

    이런 학생들은 짧고 산만하게 공부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깊이 있게 학습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결국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정답을 아는 학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설명하고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 그렇다면, 학생들 간의 수학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무언가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수학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은 그만큼 시간 투자를 안 하게 되고, 이는 곧 성적 하락과 수학이 더 싫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죠.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동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동기를 심어줘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 교육은 수학을 그저 등급을 매기기 위한 과목 중 하나로만 대하고 있는 거죠. 수학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과목인지는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요.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흔히 교사와 학부모는 ‘대학 갈 때까지만 하면 된다, 조금만 참아라’라는 식의 말을 하곤 합니다. 수학을 단지 시험을 위한 과목이 아닌, 평생 수리적 사고를 갖고 살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녹여내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 정부가 한뜻으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서는 수학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요. 이러한 과학기술이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키플레이어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현재 학생들은 앞으로 과학기술과 더 밀접해 질 겁니다. 과학기술에 입문하기 위해서도 수학이 필요해요. 수학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학은 단순 입시 과목이 아닌, 우리의 삶이라는 의미가 있는 학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 ─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생이 수학을 ‘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수학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학생이 실패의 경험만 반복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교사는 정답을 맞히는 순간뿐 아니라, 질문하는 용기와 사고 과정 자체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수학의 재미는 ‘풀었다’가 아니라,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학을 친근하게 느끼려면 하나의 정답과 하나의 풀이가 강조되는 수업 구조에서 벗어나야 해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여백을 주는 수업이 돼야 합니다. 실생활과 연결된 문제 상황을 통해, 수학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죠.

    ─ 정책적으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앞서 말한 교사의 지도 방향은 교사 혼자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교육정책 지원 또한 병행돼야 해요. 

    먼저, 교사 연수 체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수업 기법 전달에서 벗어나, 수학적 사고를 이끄는 교수법과 학생 중심의 수업 설계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지속적이고 심화된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학생들의 깊이 있는 탐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와 수업 재량이 중요한데요. 이와 함께 정답률 중심의 평가 방식이 아닌, 사고 과정과 표현 능력을 반영하는 평가 시스템으로의 전환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와 교사에게 실질적인 자율성과 신뢰를 부여하는 문화예요. 교사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수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교사가 설계하는 학생 중심 수학교육이 현장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 끝으로, 권오남 교수가 꿈꾸는 미래 수학교육의 비전과 이를 위한 목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최근 저는 학자로서뿐 아니라, 글로벌 수학교육 공동체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더 큰 사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회장으로서, 문화적·언어적 다양성을 포용하고, 동아시아의 수학교육 경험과 시선을 세계 무대에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국제 교류를 넘어서, 전 지구적 교육 격차와 인식 차이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해내는 것이 저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한국 안에서는, 수학교육을 통해 학생이 자기 삶과 연결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특히 경쟁 중심, 정답 중심의 평가 구조를 넘어,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표현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낍니다. 이를 위해 현장 교사들과 협력하고, 후속 세대 연구자들과 실천 가능한 해법을 연구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공정성(equity), 창의성(creativity), 연결성(connectivity). 저는 이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미래 수학교육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학은 이제 정답을 빠르게 맞히는 능력을 넘어서,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연결하고, 사회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고의 언어가 돼야 합니다.

    수학교육의 중심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왜 배우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저는 수학이 미래 사회를 더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세계 곳곳의 교육자들과 함께 길을 열어나갈 것입니다.

    ☞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학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학교에서 수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및 수학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2003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사범대 교육연수원장과 여성연구소장을 역임했고, 2020년부터는 서울대 수학교육센터장을 맡아 ‘SNU 수학교육 웨비나’를 운영하며 국내외 학문 공동체 간 교류를 이끌고 있다.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차기 회장에 선출돼 오는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