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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E 첫 아시아 여성 수장, 권오남 교수가 말하는 ‘성장 방식’ (인터뷰①)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기사입력 2025.04.23 09:00

-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 아시아 여성 첫 회장 선출
- 보이지 않던 연구자에서 아시아 여성 첫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장이 되기까지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 회장이요? 처음에는 망설였죠. 제가 과연 이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권오남 서울대학교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International Group for the Psychology of Mathematics Education, PME)*의 아시아 여성 최초 회장으로 선출됐다. 세계 각국의 수학교육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는 이 권위 있는 학회에서 한국인, 더구나 아시아계 여성 연구자가 회장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International Group for the Psychology of Mathematics Education, PME): 수학교육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 학회로, 1977년에 설립됐다. 매년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수학 학습의 인지적·정서적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학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전 세계 수학교육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수학 교육 개선을 위한 연구 성과와 실천적 통찰을 교류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를 ‘결과’보다 ‘과정의 축적’으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학회에서 아시아계 참석자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발표장에 있어도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웠음에도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세션에 참여했고, 묵묵히 질문하며 자신의 학문적 목소리를 쌓아갔다. “투명인간 같았던 제가 어느새 토론을 이끄는 연구자가 되어 있더라고요”라는 회고에는 오랜 시간 흔들리지 않고 쌓아온 내공이 담겨 있다.

    ‘수학은 삶의 언어’라고 말하는 권오남 교수는 실패를 다른 질문으로 이끄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또, 그 철학은 수많은 청소년과 학습자들에게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넨다. 이제 PME 회장으로서 그는 한국과 아시아 수학교육의 관점을 세계와 더 깊이 연결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 PME의 아시아 여성 최초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연구와 활동을 PME이 인정해줬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특히 아시아 출신 여성 연구자로는 처음으로 회장직을 맡게 된 건데요,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서, 한국 수학교육의 위상이나 아시아 학자들의 연구 역량이 세계적으로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참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PME는 전 세계 수학교육 연구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학회예요. 그 중심에서 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배우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나누기 위해 노력해왔던 연구자로서의 자세가 세계 학계와 진정성 있게 소통한 결과라는 생각에 조심스럽지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제는 이 역할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 수학교육의 관점, 또 현장의 고민을 국제무대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다양한 문화권의 연구자들과 협력하면서 앞으로의 세대들이 더 넓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 PME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는지,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PME 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건 싱가포르와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사님들의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PME 이사는 총 16명인데, 국적만 해도 15개국에 걸쳐 있을 만큼 다양한 분들이 함께하고 있거든요. 처음엔 솔직히 출마 자체가 망설여졌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 연구 성과뿐 아니라, 그동안 국제 학술 커뮤니티에서 쌓아온 네트워크와 리더십 경험을 높이 평가해 주셨죠. 그런 신뢰가 저한테는 큰 용기이자 책임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과정이 항상 순조롭진 않았어요. 함께 출마했던 후보는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 명문대에 재직 중인 백인 남성 교수였어요. 선거 직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제게 ‘I feel sorry for you.’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인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저는 그 말속에서 제가 동등한 경쟁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한, 미묘한 시선을 느꼈죠.

    되도록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아시아는 물론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가의 연구자분들이 저를 응원해줬고, 예상보다 훨씬 큰 지지를 보내줬어요. 덕분에 저는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이 권위 있는 학회 회장직을 맡게 됐고요. 그 모든 과정이 지금도 참 벅차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 학회 활동이나 국제무대에서 문화적 혹은 성별과 관련한 장벽을 느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듣고 싶어요.

    “솔직히 그런 순간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죠. 제가 처음 PME에 참여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학회 현장에는 한국인 연구자는 물론이고, 아시아계 학자 자체가 거의 없었거든요. 전체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서구 중심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영어에 능숙한 서구권 학자들이 주도하는 흐름이었어요. 그 속에서 아시아 여성 연구자로서 저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어요. 분명 발표장에 있는데,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나갔던 것 같아요. 연구 발표는 물론이고, 모든 세션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경청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차근차근 제 존재감을 쌓아가는 데 집중했죠. 그 시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저는 늘 믿었어요. 성실하게,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진심은 결국 전해진다고 말이죠.

    그렇게 시간이 쌓여서 2013년에는 독일 키엘에서 열린 학회에서는 국제 이사직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어요. PME는 총 16명의 국제 이사 체제로 운영되는데, 그 이사직은 학회의 운영과 방향을 논의하고 이끄는 아주 중요한 자리예요. 이사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넓어졌어요. 그 이후로는 패널 토론자, 심포지엄 조직자, 기조 강연자 등 다양한 역할로도 초청받으면서 제 연구와 관점이 국제적으로 조금씩 더 인정받게 됐고요.

    결국, 제가 택한 극복의 방식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물러서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나아갔던 시간이 있었기에 어느 순간 투명 인간 같았던 제가 어느새 ‘토론을 이끄는 연구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 쉽지 않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던 교수님의 모습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교수님께서는 연구와 강의, 학회 활동까지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죠. 그런 일정 속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나, 평소 실천하는 공부 습관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저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에요.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걸 좋아하죠. 강의 준비나 논문 집필처럼 깊은 사고가 필요한 일은 가능하면 오전 중에 먼저 처리하려고 해요. 조용한 새벽이나 오전 시간은 제게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시간대이죠. 

    또 하나 제 습관 중에 중요한 건 ‘짧은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태도’예요. 학회나 회의, 수업, 출장 등으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더라도 이동 중이나 잠깐 기다리는 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챙기려고 해요. 논문을 짧게 읽는다든지, 발표 자료를 훑어본다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음성 메모로 간단히 남기기도 하고요. 처음엔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느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시간 관리는 단순히 ‘일정을 얼마나 채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리듬과 에너지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작은 시간도 나답게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 같고요.”

    ─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해볼게요.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릴적 꿈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저는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산수 시간에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늘 제 이름을 부르셨죠. 칠판 앞으로 나가 친구들 앞에서 직접 문제를 푸는 일이 잦았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을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됐어요. 그 경험이 저를 수학에 더 몰입하게 만든 첫 계기였던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는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됐는데,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초반에는 낯설고, 어색한 순간들이 많았죠. 어느 날 수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집합 단원에서 조금 까다로운 문제를 칠판에 내주셨어요. 자원해서 풀 학생을 찾으셨는데, 용기 내서 손을 들고 나갔습니다. 다행히 문제를 잘 풀었고, 그 이후에 친구들 사이에서 ‘전학 온 친구가 수학 잘한다.’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어요. 수학이 저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해준 다리 같은 존재였던 거죠.

    그때 처음 느꼈어요. ‘수학은 그냥 시험 과목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언어일 수도 있구나.’ 잘하고 싶어서 더 공부하게 되고, 공부할수록 더 좋아지더라고요. 어릴 적 꿈은 수학자가 되겠다는 것보단,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학과 교육, 두 가지가 만나 지금의 길로 이어진 것 같아요.”

    ─ 당연히 수학자가 꿈이였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르치는 일’에 더 마음이 갔다는 점이 의외네요. 수학교육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대학원 박사과정 후반까지는 수학 그 자체, 특히 ‘복소해석학’을 연구하던 전형적인 순수수학 전공자였어요. 수업이나 시험에선 늘 좋은 성과를 냈지만,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하는 꽤 근본적인 질문이었죠.

    그 질문을 파고들다 보니 제 개인의 한계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가 자라오며 받아온 수학교육 방식, 정답을 외우고 해설을 암기하는 수업들이 생각의 틀을 좁혀온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긴 거죠. 비슷한 시기에 주변의 한국 유학생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요.

    그때 수학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수학을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지를 먼저 알아야겠다’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를 마치자마자 주저 없이 교육학 분야의 문을 두드렸고, 6개월 만에 교육학 석사학위를 추가로 취득했죠. 물론,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의 만류도 있었어요. 수학을 더 깊게 파보라며 응원해주셨지만, 저한테는 그 변화가 단순한 전공 전환이 아니라 학문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게 된 전환점이 됐죠. 수학교육 연구를 하면서 ‘수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제 모습,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게 된 것 같습니다.”

    ─ 교수님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시거나 좌절을 겪은 시기가 있었을까요? 그런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궁금합니다.

    “있었죠. 제게는 박사과정 후반, 논문을 준비하던 시기가 아마 가장 깊은 고민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수학을 오랫동안 좋아했고 성적도 늘 좋았지만, 정작 창의성이 필요한 연구 앞에서는 자꾸 제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왜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밖에 바라보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요.

    처음엔 ‘내가 부족한 걸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주변의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한 한국 유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 비로소 이게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온 교육방식 자체에서 오는 구조적인 한계일 수 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제게 정말 큰 전환점이었어요. 수학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수학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학교육 분야로 저를 이끌었거든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야말로 제 학문적 시야를 넓히고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좌절은 끝이 아니라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질문의 시작’이었다고 느껴요.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학생들에게도 말해요. ‘방향이 바뀌는 건 실패가 아니야. 그건 성장의 또 다른 방식일 수 있어’라고요.”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 삶의 방향을 바꾸게 만든 것도 수학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고 했어요. 교수님에게 수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인생에서 수학이 어떤 역할을 해왔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수학은 단순히 문제를 잘 푸는 기술이나 공식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언어이자 태도에 가까워요. 수학을 하다 보면 명확한 언어와 논리를 통해 복잡한 것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는 힘을 기르게 되잖아요. 저한테 수학은 그렇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학문이었습니다.

    삶의 여러 갈림길에서 저는 늘 수학적인 태도로 질문하고, 구조를 살피고, 더 나은 해답이 있을지 고민해왔어요. 가끔은 한 가지 방법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좌절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정답’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유연한 사고력 같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수학은 제게 늘 ‘해결하는 도구’이자 ‘탐색하는 도구’였고, 어떤 선택 앞에 섰을 때도 늘 저를 중심에 놓고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힘이 됐어요. 지금도 저는 수학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수학을 삶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교수님만의 생각을 길러주는 특별한 만남이나 문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나 책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교육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존 듀이(John Dewey)예요. 그의 책 『Experience and Education』을 읽으면서,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깊이 느꼈죠.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직접 경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그 과정을 교육의 핵심으로 본 그의 철학에 크게 공감했어요. 저도 수업을 설계할 때 항상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됐죠. 그 출발점이 바로 듀이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수학자 중에서는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가 기억에 남아요. 『과학과 가설』이라는 책에서 푸앵카레는 수학이 단순한 논리 체계가 아니라, 직관과 창의성에서 출발한 사유의 산물이라고 말하거든요. 저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수학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문제를 탐색하는 언어이자 도구라고 생각하게 됐죠. 수업에서도 ‘정답 맞히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힘’을 키우는 걸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탐색해보는 수업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다고 믿고 있어요.”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 수학과 교육에 대한 교수님의 철학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학이나 수학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나요?

    “과학이나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제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 두 분야는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왜 그럴까?’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하죠. 진짜 과학자나 수학자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에요.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막히는 순간이 있어요. 저도 그랬고, 사실 지금도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해요. 그런데 그 순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막힘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거든요. 중요한 건 ‘내가 틀렸나 봐.’하고 멈추는 게 아니라,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고 다시 질문해보는 용기예요. 실패는 과정의 일부일 뿐, 결코 끝이 아니니까요.

    또 하나 꼭 전하고 싶은 건 여러분이 어디에 살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과학과 수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세계라는 거예요. 다양한 시선과 경험이 오히려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니까,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탐색해보면 좋겠어요. 호기심을 잃지 않는 마음,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자세. 이 두 가지가 과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요. 그 마음만 지켜낸다면, 분명 여러분도 자신만의 길을 멋지게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거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넨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은 시기라는 걸 저도 정말 잘 알아요. 어떤 길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기도 하고,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있죠. 사실 저도 그랬어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흔들렸고 방향을 바꾸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고민이 있다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고,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해요.

    그럴 때 제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방향이 바뀌는 건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한 방식’이라는 말이에요. 우리는 처음 그린 길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진짜 길은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거든요. 어떤 좌절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 전혀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도 해요.

    지금 흔들리는 마음도, 불안한 질문도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그건 여러분이 진지하게 자신과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예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지금 하는 질문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어요. 정답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니까요.

    꼭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앞서가고 있는 누군가도, 예전에는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었고요. 지금의 이 경험과 고민이 분명히 여러분만의 길을 만들어줄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가능성은 아직 무한하니까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교수.

    ☞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학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학교에서 수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및 수학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2003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사범대 교육연수원장과 여성연구소장을 역임했고, 2020년부터는 서울대 수학교육센터장을 맡아 ‘SNU 수학교육 웨비나’를 운영하며 국내외 학문 공동체 간 교류를 이끌고 있다.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차기 회장에 선출돼 오는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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