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소년이 온다’
이순영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5.01.17 09:00
  • 문학은 아직 오지 않을 미래를 투영하기도 하고, 시대를 거슬러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과 지혜에 불멸의 생명력을 투여하는 인류의 산물이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문학적 역할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제목만 보면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작 작품에 나오는 소년은 그와 거리가 멀다. 5·18민주화운동을 끌고 오는 망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형으로 서술된 제목 ‘소년이 온다’는 과거로부터 나온 절규가 여전히 우리들의 현재 속에 진행 중임을 함의하고 있다.  

    소설의 저자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밝혔듯 이 작품은 ‘현재가 과거를 구할 수 있을까?’,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을까?’로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집필 작업을 하면서 어두운 인간성을 접하게 되자 더 이상 소설 집필을 진행할 수 없는 지점에 닿게 됐다. 작가는 간접 경험만으로도 처참한 고통이 흡수돼 차마 이를 끌고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료 조사 중에 접했던 읽었던 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장을 보고 다시 집필을 결심한다. 일기장에는 야학교사가 계엄령 속에서 겪었던 비인간적인 상황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이를 본 작가는 자신이 가졌던 의문을 거꾸로 뒤집었다. 과거의 것들이 현재를 바꿀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듯 소설을 썼다. 그리고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방식이 아니라 문학으로 승화시켜 구현해 놓았다. 

    5·18민주화운동 때 죽은 사람들은 현장의 참상을 안고 땅에 묻혔다. 남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죽음과 삶. 결코 그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지만, 피해자들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비극에 휘말려야만 했다. 그들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친구, 가족, 이웃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인간됨은 공권력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의 비극을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통증은 여전히 생생하게 계속되고 있음을 토해내고 있다. 

    소설에서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나섰던 동호 역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죽은 정대는 혼이 되어 많은 혼을 만나고 혼들끼리는 서로의 실체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왜 나를 죽였지?”라고 묻는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김진수는 시민군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 국가에 저항을 했다는 것이 죄가 됐다. 진수는 감옥뿐 아니라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때 생긴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하고 만다. 희생자들의 고통은 학살이 가해졌던 기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후 정신병원에 가거나, 자살로 생을 마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 열다섯 시간 일하고, 휴무는 겨우 한 달에 이틀을 받았던 여성 공원 선주. 봉급은 남자에 비해 절반 수준밖에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 비인격적 대우, 도난 방지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성추행 같은 몸수색을 견뎌야만 했다. 결국, 이를 참다못한 여성 노동자들은 헌법과 노동법에 제시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모였다. 대통령이 돌연히 죽은 시월, 폭력은 사라질 줄 알았으나 그의 신임을 받은 젊은 소장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주에 피가 쏟아지게 만들었다. YH무역 여공 사건*은 이렇듯 선주의 이야기로 소설에 담겼다.  

    * YH무역 여공 사건: YH 무역 생산직 노동자들이 회사폐업조치에 항의해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이들을 찾아 격려하고 정부대책을 촉구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으나 정부는 새벽 2시 경찰력 투입하여 이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총재, 국회의원, 지가들이 폭행당하고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동호 엄마는 한 소년을 보게 된다. 그녀는 죽은 아들이 자신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주고 싶어 나타난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소년을 정신없이 따라갔다. 이후 동호 엄마는 소년을 또 한 번 볼까 싶은 마음에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찾아간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갚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아들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은 그녀에게 살아있어도 죽은 것만 같은 삶을 가져다줬다. 

    동호와 함께 시민군으로 도청을 지켰던 은숙은 그날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도청 앞 분수대 물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얼마나 지났다고 분수를 트느냐?”고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 전화를 걸었다. 지난 아픔은 잊고, 세상이 너무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었다. 

    피해자의 삶 속에는 공권력에 의해 유린된 인권과 이를 막을 수 없었던 무력감이 뒤엉켜 있다. 이들은 그저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만약 우리가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이들의 비극은 내것이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다루는 비극은 개인 차원이 아닌 시대와 민족의 참극인 것이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조각조각들이 책 밖으로 쏟아져 가슴 속에 날카롭게 박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부론’을 쓴 존 로크는 독재는 정당한 권리를 넘어서는 권력의 행사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한다든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국민을 학살 혹은 내란을 일으키는 군주는 이미 군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고, 그에게 저항하는 것은 옳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대처를 보여줬다. 이제 민주적 절차의 시민불복종을 보여줬던 현재가 또 어떻게 미래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할 차례다.

    * 생각해볼 문제 *

    1.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보자.

    2. 6인의 각기 다른 서술자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3. 다음은 책 ‘소년이 온다’에 나와 있는 글이다. 이를 참고해 5·18민주화운동 때 나왔던 민중의 도덕성은 어떤 것이었는지 서술하시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 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의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 된 것. 


    4. 이 소설은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서술하시오. 

    5. 소설의 제목을 현재형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6.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서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