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천] [현장 패트롤]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는 '도시형 대안 학교'

By최재용 기자Posted2009/09/29 06:37

지난 22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 '하늘샘'의 한 교실. 중·고교 통합 과정의 영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What is your job?'이라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돼?"

선생님의 질문에 4명의 학생들은 "좝이요?"하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업이 뭐냐는 거지."

"아하!"

잠시 뒤 한 학생이 책에 써 있는 단어를 읽으면 다른 학생들이 따라서 읽도록 했다.

"화덜", "화덜"

"아버지죠? 그러면 다음은?"

"마덜(어머니)", "마덜"

"크게 해봐. 크게 해야 자기 목소리에 그 단어가 외워지는 거야."

선생님의 조언에도 학생들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따라 읽으며 단어를 외우려 애쓰는 모습들이었다.

'하늘샘'은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청(淸)'과 함께 지난 4월 문을 연 도시형 대안학교다. 정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둔 청소년들이 힘든 시기를 잘 넘기도록 돕기 위해 인천시가 만들었다.

학적(學籍) 없는 청소년이 대상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청’에서 학생들이 리코더를 불며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도시형 대안학교는 중·고교 과정에서 자퇴나 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나 학적이 없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학적이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대안학교와는 이런 점에서 다르다.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학교를 그만 둔 중·고생이 2007년 3450명, 2008년 3076명이고 올해는 8월 말까지 1924명이다.

이들을 비행 청소년이 되지 않도록 마련한 공간이 도시형 대안 학교다.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사회복지시설에 가깝다. '하늘샘'은 개인이, '청'은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이 인천시의 위탁 기관 공모에 뽑혀 운영 중이다. 시는 두 학교에 교사 인건비, 학습교재비 등으로 각각 한 해에 4750만원씩 지원한다.

두 학교의 정원은 20명씩이지만 현재 각각 11명, 16명이 등록돼 있다. 입학은 학부모와 학교가 상담을 해 결정한다. 학생들은 하늘샘의 경우 학기당 수업료 30만원과 1끼당 3000원의 급식비를 낸다. 청은 입학금 20만원에 월 수업료 5만원과 1끼당 2500원의 급식비를 낸다.

교사진은 2명씩의 전담 교사 외에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전담 교사는 전직 교사 출신으로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원봉사 교사는 자신들이 맡고 있는 과목을 전공한 사람들로 교사자격증을 갖고 학원이나 학교에 강사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자유로워 좋아"

수업 과목은 하늘샘이 중국어, 미술, 한자, 영어, 전산회계, 신문활용교육(NIE), 요리실습, 텃밭가꾸기이다. 청은 국·영·수, 음악, 정보통신, 한자, 미술, 체육이다. 이 밖에 어린이집 등의 봉사활동이나 경찰서·소방서 견학 등의 지역 탐방 수업도 한다. 수업은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쯤 끝난다. 하늘샘은 모든 과목에 대해 중·고생 구별 없이 한꺼번에 수업을 하고, 청은 국·영·수를 빼고 그렇게 한다.

하지만 정규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력 인정을 받으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학생들은 "(정규 학교와 달리) 자유로워 좋다"는 반응이었다. 또 "학생 수가 적다보니 선생님과 나누는 교감이 크고, 비교적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풀어야 할 과제 많아

이들 학교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특기·적성·직업 교육을 전문기관과 연결해 배우도록 하겠다는 당초 취지를 아직 못 살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쇼핑몰 창업, 유치원 교사, 미용사 등 다양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집이 어려워 다닐 돈이 없다"고 말했다.

당초 취지대로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부족이다. 전문 학원에 보내려면 수강료를 지원해줘야 하는데 인천시의 한 해 지원액 4750만원으로는 교사 인건비나 교재비 쓰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 아동청소년과 백종국 담당자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적성에 맞는 자격증을 따보려는 학생들을 위해 내년부터 학원비 지원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아직은 미미하다. 하늘샘의 김미정 교감은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지 않으면 이곳 생활에 금세 싫증을 느낄 것"이라며 "자원봉사자라도 많으면 1 대 1 학습식으로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여건으로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빨리 없애야 할 과제다. 청의 유진애 주임은 "학생을 데려오는 학부모들의 첫마디가 '우리 아이가 물들지 않을까요?'라는 말"이라며 "가정불화나 왕따, 지루한 학교 생활에 대한 부적응 등이 문제가 돼 학교를 나왔을 뿐 아이들은 모두 심성이 착하고 꿈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