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후 강사의 과학 이야기] 시험장만 가면 배가 아픈 까닭
이승후 이투스 생명과학 강사
기사입력 2026.10.01 16:39

- 신경과 호르몬에 대하여

  • 이승후 이투스 생명과학 강사.
    ▲ 이승후 이투스 생명과학 강사.

    모의고사 날 아침, 집에서는 멀쩡하던 배가 1교시 예비령이 울리기 직전 요동치기 시작한다. 전날 뭘 잘못 먹었나 곱씹어 보지만 범인은 음식이 아니다. 내 몸이 지금 '비상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몸 안에 울리는 비상 사이렌 

    긴장을 느끼는 순간, 뇌의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을 작동시킨다. 심장이 빨리 뛰고, 동공이 커지고, 기관지가 넓어진다. 이를 '투쟁-도피 반응'이라고 하며, 맹수를 만났을 때 싸우거나 달아나기 위해 몸 전체를 전투태세로 바꾸는 반응이다. 

    ◇ 비상시엔 주방부터 불을 끈다 

    화재 경보가 울린 건물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요리를 멈추고 비상구로 뛴다. 몸도 마찬가지다. 교감신경은 위와 장의 운동과 소화액 분비를 억제하고, 혈액을 소화관 대신 근육 쪽으로 보낸다. 사자 앞에서 점심을 소화하고 있을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배가 더부룩하고 입이 마르는 것은 '주방이 문을 닫았다'는 신호다. 흥미롭게도 스트레스 호르몬은 위의 움직임은 늦추면서 대장은 오히려 재촉하기도 한다. 시험 직전 화장실이 급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 두 개의 신호, 신경과 호르몬 

    비상 명령은 두 경로로 퍼진다. 첫째는 빠른 신호다. 교감신경이 부신 속질을 직접 자극해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을 혈액으로 쏟아낸다. 둘째는 느리지만 오래가는 신호다. 시상하부 → 뇌하수체 전엽 → 부신 겉질로 이어지는 호르몬 연쇄를 거쳐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혈당을 높여 긴 싸움에 대비한다. 

    두 신호의 차이는 유선 인터넷과 무선 인터넷에 빗대 볼 수 있다. 신경은 뉴런이 표적 기관까지 직접 연결된 유선 인터넷과 같아서, 케이블이 꽂힌 곳에만 신호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고 전송이 끝나면 금세 조용해진다.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무선 인터넷이다. 신호는 어디에나 닿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수신기, 즉 수용체를 가진 표적 세포만 알아듣는다. 전달은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효과는 오래 남는다. 시험이 끝나 긴장이 풀렸는데도 한동안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떨리는 것은, 이미 혈액으로 퍼진 호르몬의 효과가 곧바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시험지는 사자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 몸의 비상 시스템이 수십만 년 전 초원에 맞춰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몸은 시험지와 맹수를 구분하지 못한다. 다행히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을 높여 주고, 조절할 방법도 있다. 숨을 길게 내쉬는 호흡은 부교감신경 쪽으로 균형을 옮기는 데 도움이 된다. 카페인 역시 에피네프린 분비를 부추기니, 시험 당일만큼은 평소보다 커피를 늘리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앞서 말한 호흡법이 통하는 이유는 자율신경이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로 짝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관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함께 연결되어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데, 이를 길항 작용이라 한다. 교감신경이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면 부교감신경은 늦추고, 교감신경이 소화를 억제하면 부교감신경은 촉진한다. 그래서 '교감신경은 억제, 부교감신경은 촉진'이라고 외우기 쉽지만, 이는 대표적인 오개념이다. 교감신경은 심장에는 가속 페달이고 소화관에는 브레이크다. 무엇을 촉진하고 무엇을 억제하는지는 기관마다 다르다. 시험을 마치고 나면 허기가 몰려오는 것도, 비상이 해제되자 부교감신경이 다시 주방의 불을 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몸은 당신 편이다 

    시험장에서 배가 아픈 것은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오래된 시스템이 너무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서다. 그 신호를 적으로 여기지 말자. "지금 내가 이만큼 진지하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사이렌은 조금씩 잦아든다. 수능까지 남은 시간, 몸의 경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