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산 티처프러너 글로벌 필드트립] 싱가포르에서 배운 ‘연결’의 가치, 다시 교실에서 시작하다
임석영 천성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26.09.28 13:09
  • 임석영 천성중학교 교사.
    ▲ 임석영 천성중학교 교사.

    “선생님, 이 정도는 그냥 버려도 되는 것 아니에요?”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면 여러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에서 물을 사용한 뒤 제대로 정리하지 않거나 휴지를 필요 이상으로 쓰는 모습, 급식을 거의 먹지 않은 채 남기고 나오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성별에 따른 역할이나 차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이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로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환경 보호와 성평등의 중요성을 더 많이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잔소리도 적지 않게 했다.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중요성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행동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생각한 뒤 행동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 끝에 인성교육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결해 보기 시작했다. 환경과 성평등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도록 했고, 여기에 기업가정신 교육도 접목했다.

    하지만 수업을 할수록 또 다른 아쉬움이 생겼다. 교실 안에서는 학생들이 문제를 고민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수업이 끝나면 그 생각과 행동도 함께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교실에서 시작된 배움이 실제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지 고민하게 됐다.

    SDGs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17개 목표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고 외우게 하는 것만으로는 생활 속 실천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학생들이 자신의 주변을 들여다보며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라고 질문하기 시작할 때 SDGs는 비로소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된 문제가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할 때 배움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바로 그 연결의 지점을 교실에서 만들고 싶었다.

    ◇ 기업가정신을 만나 달라진 수업

    아산나눔재단의 교사 대상 기업가정신 교육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인 ‘아산 티처프러너’를 통해 기업가정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업가정신을 창업과 가까운 개념으로 생각했지만, 교육을 받으며 그 범위가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업가정신은 창업을 꿈꾸는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는 것,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직접 시도해 보는 것, 실패하더라도 다시 방법을 찾아 나서는 태도까지 모두 기업가정신과 연결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문제 발견’이었다. 해결책을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발견하는 것부터 배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학교 교육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데 익숙한 반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찾아보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래서 ‘진로와 직업’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고 문제를 직접 찾아보도록 했다. 이어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과 아이디어도 생각해 보게 했다.

    물론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우리 학교에서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함께 던지면서 학생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를 지켜보는 나 역시 달라졌다. 몇 년간 같은 방식의 수업을 이어가며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교사는 언제나 정답을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신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필요한 순간에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 싱가포르 AVPN에서 만난 ‘연결’

    지난 8월,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실천해 온 기업가정신 교육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아산 티처프러너 동문 프로그램을 통해 싱가포르 글로벌 필드트립에 참여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여러 기관을 방문하며 반복해서 마주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연결’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시아의 사회혁신 생태계를 잇는 AVPN(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을 방문하면서, 교육에서 말하는 ‘연결’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AVPN이 강조하는 문구 가운데 하나는 ‘Move Capital Towards Impact’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곳으로 자원을 움직이고, 사람과 지식, 기술과 네트워크를 연결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곳에서 들은 말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자원은 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교실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발견한 문제를 실제 변화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결국 돈만은 아니었다. 함께 고민해 줄 사람, 필요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학교 밖과 연결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했다.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학생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고, 관련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친구와 힘을 모아야 할 때도 있고, 학교 밖의 사람이나 기관과 연결되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업가정신 교육은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사람과 자원에 연결하고, 다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AVPN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며 아산 티처프러너를 수료한 교사들이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이 질문들은 단순히 창업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SDGs는 거창한 국제사회의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과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존중하며 살아갈지처럼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그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사회에서 직접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까지 고민해 보게 하고 싶다.

    학생이 “왜 그랬을까?”라고 질문하는 순간, SDGs는 교과서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는 순간, 기업가정신이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한번 해보자”고 행동하는 순간, 배움은 실제 변화와 연결된다.

    ◇ 다시 교실에서 시작하는 기업가정신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뒤, 그동안 해온 수업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내가 가고 있던 방향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새로운 수업 자료나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지금까지 이어온 기업가정신 교육을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더 깊게 연결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은 지금 이 교실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를 준비시키고 있는가.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학생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도 스스로 질문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새로운 해결 방법을 시도하고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야 할까.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뒤 나는 후자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됐다. 기업가정신 교육은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과 사회의 필요를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연결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매일 생활하는 교실에서 시작된다.

    내일도 학생들과 함께 주변을 살펴보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작은 답 하나가 우리가 꿈꾸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답을 대신 정해주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곁에서 돕고 싶다.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은 그동안 교실에서 이어온 작은 실천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그 실천을 교실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람과 지역사회,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결국 학생들이 다른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다시 교실이다.

    ※ 본 기고문 시리즈는 아산나눔재단이 초·중·고교 교사를 기업가정신 교육 전문가로 양성하는 ‘아산 티처프러너(Asan Teacher-Preneur)’ 프로그램의 동문 교사가 해외 선진기관을 탐방하며 얻은 통찰과 시사점을 국내 교육 생태계와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본 기고문은 아산나눔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