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장은 ‘지금 해결할 사람’을 원한다… AI 시대, 전문대학이 증명한 취업의 공식
김태욱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발전협의회 대외협력·홍보위원장
기사입력 2026.09.09 15:09

- ‘빠른 취업’을 넘어 지역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는 인재양성 축으로
- SK하이닉스·셀트리온부터 미슐랭 3스타 주방까지… 배운 것이 곧 일이 되는 교육

  • 김태욱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발전협의회 대외협력·홍보위원장(안산대 교수).
    ▲ 김태욱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발전협의회 대외협력·홍보위원장(안산대 교수).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의 배양실. 박태민 씨의 하루는 pH와 용존산소, 온도 등 배양공정의 핵심 변수를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유한대학교 유한생명바이오학과에서 배양공정의 원리를 배우고 바이오시밀러 배양 실습을 반복한 그는 학교에서 익힌 지식과 기술을 입사 후 실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배움이 취업을 위한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꺼내 쓰는 기술이 된 셈이다.

    AI가 정형화된 업무를 빠르게 대신하면서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보다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전문대학의 경쟁력도 여기에 있다. 전공 이론을 배우고 실험·실습으로 장비를 직접 다루며, 자격증과 현장실습·인턴십을 통해 직무역량을 검증하는 과정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전문대학 졸업생들은 핵심 생산현장에 자리 잡고 있다. 울산과학대학교 반도체공학과를 졸업하고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최재혁 씨는 2~3년이라는 교육기간을 오히려 강점으로 봤다. 목표 기업과 직무를 일찍 정하고 필요한 기술과 자격증, 경험을 집중적으로 쌓는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전문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대학의 강점이 ‘짧은 교육’이 아니라 ‘현장과의 짧은 거리’에 있다는 의미다.

    그 거리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현장으로도 이어진다. 유한대학교 호텔조리전공을 졸업한 성주진 씨는 미국 앨라배마에서 인턴십을 경험한 뒤 현재 조선팰리스 이타닉 가든에서 경력을 쌓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Quince 합류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주방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에서 익힌 해외 다이닝 전문용어와 조리 기본기가 있었다.

    전문대학 출신의 무대는 생산과 조리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4년 전문대학인상을 받은 재능대학교 출신 김효진 씨는 미국 MOUNT Sinai West 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며 후배들의 해외 진출까지 돕고 있다. 직무 전문성이 글로벌 커리어로 확장된 사례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는 한국영상대학교 출신 이상용 감독이 ‘범죄도시2’와 ‘범죄도시3’를 연출해 두 작품 모두 천만 관객을 기록했다. 대구공업대학교 출신 육은향 씨 역시 ‘오징어 게임’ 등 영화·드라마의 메이크업·분장 현장에서 활약했다. 전문대학에서 쌓은 실기와 현장 중심 역량이 K콘텐츠 경쟁력으로 이어진 경우다.

    배운 기술을 사업으로 확장한 졸업생도 있다. 한국관광대학교 출신 이지은 씨는 제과제빵 분야에서 창업해 사업체를 운영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대구과학대학교 출신 송서영 씨는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진료파트장으로 중증외상 진료체계 구축과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했다. 한쪽에서는 기술이 창업과 일자리로, 다른 한쪽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전문성으로 발전한 것이다.

    셀트리온 배양실과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현장, 미슐랭 3스타 주방, 글로벌 병원과 영화 촬영장까지. 이들의 일터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자신의 ‘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산업은 단순히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장비를 다루고, 상황을 판단하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한다. 결국 대학을 선택할 때도 ‘어느 대학에 들어가는가’ 못지않게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졸업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문대학은 더 이상 단순히 ‘빨리 취업하기 위한 대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의 분야를 일찍 발견하고 직접 배우고 경험하면서, 이를 취업과 창업, 해외 진출과 전문직으로 연결하는 대학이다. 대학 이름보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전문대학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