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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등장인물들은 질투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실수하며, 타협하고 좌절하는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보여준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정서를 따라가며 나의 내면을 발견하고, 수많은 감정의 축제를 경험하는 것이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신화를 읽고 난 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동그마니 남아 있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을 예로 이야기 해보자.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벗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전장에서 만난다. 분노에 찬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목에 창을 꽂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열이틀 동안이나 전차에 헥토르의 주검을 매달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돈다. 한편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돌려 받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온갖 선물을 준비하여 아킬레우스에게 간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시오. 그분도 이제 내 나이가 되었을 것이오 어쩌면 지금 그대의 머나먼 고향에는 그분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그분의 고통과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분은 나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이오.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가장 훌륭한 아들이 옆에 없소. 나는 그대 아킬레우스에게,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내 아들 헥토르의 주검을 내달라고 청하러 왔소. 나는 그대의 아버지는 물론,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가련한 사람이오. 내 아들을 죽인 두 손을 잡고 애원하기 위해 위험을 뚫고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오.”
- <트로이 전쟁> 153쪽 중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이라니,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친구를 위한 복수심과 슬픔 때문에 목숨을 내건 싸움을 했던 사람이, 과연 원수의 아버지이자 적군 왕의 부탁을 들어줄까? 그렇지만 예측하지 못한 전개가 이어진다.
‘아킬레우스는 아버지를 떠올리자,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노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요. 그는 프리아모스 왕의 손을 잡아 일으켜 옆의 의자에 앉히고, 자신의 아버지 늙은 펠레우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지요. 아킬레우스는 하녀 둘을 불러, 헥토르의 주검을 가져다 깨끗이 씩긴 뒤 프리아모스가 가져온 겉옷 두 벌로 잘 싸라고 명령했어요. 하녀들이 일을 마치자, 아킬레우스는 직접 헥토르의 주검을 들어 수레에 옮겼어요.’
- <트로이 전쟁> 155쪽 중에서
늙은 왕의 부탁이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 왕에게 헥토르의 장례를 며칠이나 치를 생각인지 묻고, 그 기간 동안 왕의 도시로부터 군대를 물려, 평화롭게 장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킨다. 단순히 자비를 베푼 것을 넘어, 프리아모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반응이다. <트로이 전쟁>은 이 사건 이후에도 오디세우스의 귀환 과정을 다루며 전쟁과 복수, 갈등과 반목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진실한 마음’이라는 맥을 놓치지 않는다.
삶은 갈등과 불화의 연속이다. 인터넷과 뉴스를 보면 세상에 분노와 분열, 공격과 적대감이 가득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각기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인간들이 오해와 일그러진 표현 속에서 완전히 화목하지 못한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속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처럼, 진심을 전달하고 그 진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면 때론 기적 같은 이해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본성과 기분이 아니라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햇살이 우리 삶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오디세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훌륭한 평점을 얻으며 누적 관객 수를 경신하고 있다고 들었다. 영화관을 향하기 전 신화 책을 펼쳐 우리 본성 속에 자리 잡은 진실한 마음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신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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