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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다가오면 많은 학부모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학기 중 부족했던 과목을 보충해야 할지, 다음 학기를 대비한 선행학습을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독서와 체험활동을 통한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방학을 앞두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요?”이다.
학생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하지만 방학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엇을 채워야 할지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의 방학 시간표에는 학기 중보다 오히려 더 빼곡하게 적혀 있다. 각종 특강과 캠프 등의 외부 활동으로 학생들의 방학은 더 바빠진다.
물론 배움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의 성장은 단순한 배움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배움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얻은 지식을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의 학생들에게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정보의 양은 넘친다. 스마트폰만 열어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AI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여러 가지 답을 알려 준다. 문제는 머릿속에 든 정보의 양이 아닌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사고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접했느냐가 아닌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 왜 독서는 여전히 중요한가
독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들은 책을 읽으며 질문을 만들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 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독서는 읽는 행위보다 생각하는 행위에 가깝다. ‘왜 주인공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작가는 왜 이런 결말을 선택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시작되는 순간 독서는 단순한 읽기를 넘어 사고 활동이 된다.
◇ 세종은 왜 집현전 학사들의 출근을 멈추게 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약 600여년 전 세종대왕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다.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 권채(權綵)와 저작랑(著作郞) 신석견(辛石堅)·정자(正字) 남수문(南秀文) 등을 불러 명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집현관(集賢官)을 제수한 것은 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으므로 다만 글을 읽혀서 실제 효과가 있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각각 직무로 인하여 아침 저녁으로 독서에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본전(本殿)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어 성과(成果)를 나타내어 내 뜻에 맞게 하고, 글 읽는 규범에 대해서는 변계량(卞季良)의 지도를 받도록 하라.” (세종실록 8년 12월 11일)
세종은 신하들에게 단순히 책을 읽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을 시간을 만들라고 명령한 것이다. 당시 집현전 학자들은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세종은 이들에게 일정 기간 업무를 내려놓고 독서에 몰두하게 했다.
세종이 이런 일을 추진한 이유는 분명했다.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생각이 깊어질 시간을 잃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많이 안다고 해서 생각의 깊이까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충분한 시간이 받쳐주어야 자랄 수 있다. 어쩌면 세종이 신하들에게 선물한 것은 독서가 아니라 사색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번 방학 아이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오늘날 학생들의 방학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미 학생들은 충분히 바쁘다. 충분히 배우고 있다. 그런데도 부족한 것은 새로운 학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배운 것을 자기 생각으로 정리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독서는 그 시간을 만들어 주는 가장 좋은 도구다. 소설 책 한 권은 하나의 세계다. 독자는 그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접한다.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는 책을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은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읽은 내용을 생각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고, 동의하거나 반박하는 등의 생각을 확장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독서가 완성된다.
방학은 바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반드시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열 권을 읽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보다 두세 권을 읽고 오래 생각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권수가 아니라 한 권의 책과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단순한 책읽기 휴가를 준 것이 아니라 사고의 지도를 펼칠 시간을 주었다. 생각은 분주함 속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충분히 읽고,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란다. 학생들의 방학 역시 마찬가지다. 부족한 공부를 채우는 시간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아이를 성장시키기는 어렵다.
학생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은 정답이 적힌 문제집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이러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스스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힘이다. 독서는 그 힘을 기르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이번 방학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무엇이 놓여 있어야 할까? 정답을 찾기 위한 문제집일까? 아니면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 갈 사고의 지도일까?
[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세종은 왜 학자들에게 독서할 시간을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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