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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나면서 중간고사 이후 조금씩 나오던 고1 학생의 선택과목 고민이 본격화됐다. 보통 5~6월 사이 선택과목에 대한 공지가 처음 등장하는데, 이 시기에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 뒤 다음 학기에 결정하게 하거나, 정하더라도 다음 학기에 수정할 수 있는 일종의 가선택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 이제 여름방학을 앞두면서 1학기 동안의 학습 경험과 고등학교 입학 때 생각했던 진로 방향성을 변화 여부를 고민하며,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도, 아이와의 대화도 예년보다 길어진 듯한 분위기다.
고교학점제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앞선 학년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학부모라면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단순히 이 과목이 시험에 유리한가도 중요하겠지만, 이 과목이 아이의 진로와 맞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순서가 있다. 진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오로지 비전이나 전망만으로 방향을 정했다가, 뒤늦게 그 선택이 자신과 어긋났음을 깨닫는 경우다. 상담 사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만큼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과목 선택에 앞서 먼저 선명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 ‘어떤 방향’, ‘어떤 계열’로 갈 것인가이다. 학과까지는 아직 고1 입장에서 명확하게 정해지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희망 학과는 다시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필요하다. 계열에 대한 이해나 자신이 희망하는 방향성 없이 과목부터 채우면 나중에 이 과목을 왜 골랐는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은, 결국 부모에게도 되돌아온다.
현재 입시는 진로·학과에 따라 인문계열, 사회계열, 경영경제계열, 자연계열, 공학계열, 의료‧보건계열, 교육계열 등 과거 문과, 이과 선택 시대 대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한층 다양해졌다. 이러한 범주 안에서 계열‧학과가 가진 사회적 위상, 시대에 따른 전망, 학생의 흥미와 적성 같은 요소들이 진로 방향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함께 반영된다.
요즘의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전통적으로 선호도가 높았던 의료 계열을 비롯해, 최근에는 AI, 반도체 관련 분야의 선호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상담 과정에서 가끔 듣는 “문과 나와서 뭐 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선택 과정에서 압박으로 작동한다. 어쩌면 이 말을 무심코 아이에게 건네고 있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선호를 그대로 따라간 아이가 정말 그 길에 맞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적성과 흥미가 맞지 않는데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정말 옳은 방향일까. 반대로 앞서 언급된 인문사회계열은 정말 지금 사회에서 무의미한 분야일까.
실제로 최근 교육부는 인문사회 분야 젊은 연구자를 위한 지원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고, 관련 신규 연구 과제 수는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물론 이공계 전체를 지원하는 예산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편이지만, 인문사회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질문들이 국가 차원에서도 조금씩 더 주목받고 있다는 흐름만큼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선정된 연구 주제들이다. 비혼 청년의 시간 빈곤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 목욕탕 데이터를 활용해 지방소멸과 기후 위기 속 취약지역을 진단하는 연구, AI 교육의 윤리적 실천이 정책과 제도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한 연구까지, 하나같이 통계나 공학만으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누구의 삶을 들여다볼지 판단하는 일은 인문사회적 사고의 영역이다. 인문계열의 강점은 특정 직업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구조화하는 역량'에 있다. 다만 이런 흐름이 취업이나 안정성을 곧바로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이과를 선택하면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자연계열, 의료‧보건, 공학 등 서로 다른 세부 방향으로 나뉜다. 같은 이과라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를 둬야 할 과목이 조금씩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공학계열은 물리학과 수학의 비중을 높여야 하고, 의·생명 계열은 화학과 생명과학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또 과학중점고로 지정된 학교라면 과학중점반에 들어가서 심화를 하는 것이 학업 역량 측면에서 잘 소화해낼 수 있는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이러한 지점들을 미리 살펴본다면 향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이 필요할 때 훨씬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사회계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인문사회 안에서도 사회과학 계열은 통계와 자료를 다루고 해석하는 역량이, 어학이나 문학 계열은 텍스트를 읽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편이다. 경영경제 계열로 향한다면 수학적 사고와 자료 분석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과든 문과든, 큰 계열을 정한 뒤에도 그 안에서 다시 한번 방향을 좁혀야 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다. 먼저 어떤 계열로 향할지를 스스로 묻고 고민해보는 과정을 거친 후 그 안에서 세부 방향을 좁혀가고, 선택과목은 그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자기 고민 없이 전망이나 비전만 보고 계열을 정했다가, 정작 그 안에서 요구되는 학습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아 뒤늦게 방향을 되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되돌림의 시간은 고1보다 고2, 고3에서 훨씬 값이 비싸다.
물론, 관심, 의욕 등의 이유로 방향 자체를 못 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며, 이는 탐색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대신,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지 말고 꼭 탐색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선택과목표 앞에서 아이가 멈춰 있다면 부모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떤 과목이 유리한가’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어떤 문제 앞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인가’이다. 성적표 한 줄보다, 평소 아이가 어떤 질문에 눈을 반짝이는지, 어떤 자료를 볼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를 지켜보는 쪽이 훨씬 정확한 신호를 준다. 시간이 걸리는 고민이 되더라도 이 과정을 짚고 계열에 대한 선명한 이해가 먼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선택과목표의 빈칸도 의미 있는 선택이 된다.
[정영주의 도란도란 입시톡] 선택과목 앞에 선 아이, 부모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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