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편독하는 아이들, 꼭 걱정해야 할까
권준혁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지도교사
기사입력 2026.06.17 09:00
  • 아이들과 독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어떤 아이는 과학이나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고 하면서, 비슷한 내용의 책을 다음 달에도 다루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런 한편에 어떤 도서를 주더라도 묵묵히 읽어오는 학생들이 있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을 두고 걱정하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 “우리 아이는 너무 한 종류의 책만 읽어요.”, “과학책만 읽고 문학은 잘 안 보려고 해요.”, “판타지 소설만 좋아하는데 괜찮을까요?” 하는 식이다. 아이가 책을 아예 읽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읽는 책의 종류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독서는 폭넓게 해야 좋다는 말이 워낙 익숙하고, 실제로 다양한 글을 읽어야 어휘와 배경지식, 사고력도 넓어진다. 그러니 특정 분야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혹시 독서 습관이 좁게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게 된다.

    그러나 수업 현장에서 아이들의 글쓰기까지 함께 지도하다 보면, 편독을 그렇게 급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한 가지 종류의 책만 고집하며 다른 글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경우라면 지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아이들은 ‘편독’이라기보다 아직 자신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독서의 문을 찾은 상태에 가깝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 문이 과학책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역사 만화이며, 또 어떤 아이에게는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 문 앞에서 멈추어 서 있는지, 아니면 그 문을 통해 책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다.

    글쓰기 지도를 해보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좋아하는 분야가 확실한 아이들은 글감이 주어졌을 때 반응이 빠른 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서 보았던 장면, 알고 있는 용어, 비슷한 상황을 금방 떠올린다. 예를 들어 과학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환경 문제나 기술 변화에 관한 글을 쓸 때 자료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인물의 선택이나 사회 변화에 대한 글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배경 지식을 끌어온다.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아이는 인물의 갈등이나 세계관을 상상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읽는 분야가 좁아 보이더라도, 그 안에서 아이는 나름의 어휘와 구조, 사고의 틀을 쌓고 있는 것이다.

    물론 편독하는 아이들의 글에는 일정한 한계도 있다.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글이 술술 풀리지만, 낯선 주제가 나오면 갑자기 문장이 짧아지거나 생각을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는 글은 자신 있게 쓰지만, 인물의 감정을 해석하는 문단에서는 멈칫하는 아이가 있다. 반대로 소설을 많이 읽어 장면 묘사는 풍부한데, 주장과 근거를 명확하게 세우는 논설문에서는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교사가 할 일은 “그런 책만 읽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독서의 힘을 다른 종류의 글로 옮겨 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갑자기 고전문학을 갖다 주면서 흥미를 가져보라고 요구하면 아이는 쉽게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공룡에서 출발해 지구의 역사, 생명의 변화, 환경 문제, 멸종과 보존의 문제로 조금씩 확장해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아하는 분야는 아이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마법과 모험을 좋아한다면, 그 안에서 인물의 선택, 규칙이 있는 세계, 권력과 책임의 문제를 끌어낼 수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는 단서 찾기와 근거 제시에 강점을 보일 수 있으므로, 논리적인 글쓰기와 연결하기 좋다. 편독을 무조건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그 편향을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다. 수업 중에도 좋아하는 분야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학생들이 있다. 평소에는 빈칸을 짧게 채우던 아이가, 자신이 잘 아는 주제가 나오자 갑자기 문장을 길게 쓰기 시작한다. “이건 제가 아는 건데요” 하고 말을 꺼내는 순간, 아이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설명하는 사람이 된다. 글쓰기에서 이 경험은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쓸 말이 있어야 한다. 편독하는 아이들은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안에서는 쓸 말이 많은 아이들이다. 이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장점이다.

    문제는 그 장점을 어떻게 넓히느냐에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인정해 주는 것이 좋다. “너는 과학책만 읽어서 문제야”라고 말하기보다, “과학책을 많이 읽어서 원리를 설명하는 힘이 좋구나. 이제 그 힘을 사람의 감정이나 사회 문제를 설명할 때도 써 보자”라고 안내하는 편이 낫다.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부정당한다고 느끼면 독서 자체에 방어적이 되지만, 자신의 강점을 인정받았다고 느끼면 새로운 분야에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독서 확장은 금지가 아니라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실제로 편독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방식이 도움이 된다. 첫째, 좋아하는 분야와 가까운 책부터 연결해 주는 것이다. 과학을 좋아하면 과학자의 전기나 과학사, 과학 윤리를 다룬 책으로 넓힐 수 있다. 역사 만화를 좋아하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나 청소년 소설로 옮겨 갈 수 있다. 둘째, 같은 주제를 다른 형식으로 읽히는 것이다. 바다 생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정보책만 주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함께 읽히는 식이다. 셋째, 글쓰기 과제를 통해 확장시키는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주제를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해 보자”, “그 주제와 관련된 인물의 마음을 상상해 보자”, “그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나누어 보자”와 같은 활동은 편독을 글쓰기의 재료로 바꾸어 준다.

    편독은 영원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생각보다 자주 변한다. 한동안 곤충만 읽던 아이가 어느 순간 역사 속 전쟁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고, 판타지에 빠져 있던 아이가 추리소설을 지나 사회 문제를 다룬 책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어른의 눈에는 한 분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보여도, 아이 입장에서는 그 안에서 충분히 탐색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시기를 조급하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 관심을 발판 삼아 다음 독서로 넘어갈 수 있게 적절한 계단을 놓아 주는 것이다.

    결국 편독은 걱정의 대상이기 전에 이해의 대상이다. 아이가 어떤 책을 반복해서 찾는다면, 그 안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익숙해서 편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잘 아는 세계라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그 책 속에서만큼은 자신이 능숙한 독자가 된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보지 않은 채 “다른 책도 읽어야지”라고만 말하면, 아이는 독서의 폭을 넓히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지키는 데 더 힘을 쓰게 된다.

    독서의 폭은 넓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폭은 억지로 벌리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충분히 뿌리를 내린 뒤 조금씩 가지를 뻗으며 넓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편독하는 아이를 볼 때, 먼저 “왜 이것만 읽을까?” 하고 걱정하기보다 “이 아이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고 있을까?”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 질문에서 출발하면 지도 방향도 달라진다. 좋아하는 책은 아이를 좁게 만드는 울타리가 아니라, 더 넓은 독서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아이가 한동안 같은 분야의 책을 붙잡고 있다고 해서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통해 아이가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그 안에서 생각을 쌓고 있는지, 그리고 언젠가 그 관심을 다른 글과 연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다. 편독은 때때로 독서의 정체가 아니라 독서의 시작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손을 억지로 놓게 하기보다 그 책에서 다음 책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함께 놓아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