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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아이를 만드는 부모에서 기다리는 부모가 되었다.”
이 깨달음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다리는 부모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새로운 질문이 밀려왔다. 기다린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사랑일까?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내가 우선 실천한 것은 ‘말을 줄이는 일’이었다. 말을 참자 자연스럽게 나의 두 눈은 아이의 행동을 더 오래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아이가 먼저 다가왔다. 말을 걸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무언의 질문으로 초대하는 능동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뜻밖의 곳에서 찾았다. 20여 년간 내 직업의 언어였던 마케팅에서였다.
◇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목소리’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집착하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Brand Voice, 브랜드 보이스였다.
브랜드 보이스는 단순히 로고나 슬로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브랜드는 어떤 톤으로 말하는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는가. 경쟁자가 무엇이라 말하든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예외 없이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권의 동료들과 함께 브랜딩 작업을 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강한 브랜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깨달음은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바꾸어놓았다. 나는 이제 내 아이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자기만의 브랜드 보이스가 있는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 외부 평가에 의존하는 브랜드의 위기
마케팅에서 가장 위험한 브랜드 유형이 있다. 외부 의존형 브랜드다. 소비자 반응이 좋을 때는 잘 나가다가, 트렌드가 바뀌거나 경쟁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흔들린다. 자기만의 핵심 가치 없이 외부 평가에만 기대온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나는 칭찬을 정말 많이 하는 부모였다.
“잘했어.”
“역시 네가 최고야.”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잘한다고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계속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또 한 번 멈췄다. 칭찬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제대로 마주했다.
코칭을 공부하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칭찬은 대부분 평가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칭찬은 대개 칭찬할 만한 결과물 앞에서만 작동했다. ‘잘했어’는 결과에 대한 판정이었다. ‘역시 네가 최고야’는 기대치를 심어주는 말이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칭찬을 들을수록 다음에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함께 떠안게 된다.
돌아보면 나는 아이에게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느끼는 자신감 대신, 타인의 평가로 자신을 확인하는 습관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 평가 없이는 작동하지 못하는 브랜드와 정확히 같은 구조였다.
◇ 포지셔닝은 밖에서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짜면서 내가 가장 많이 경계했던 실수가 있다.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멋지게 주입하려는 태도다.
“우리는 믿을 수 있다.”
“우리는 가성비가 좋다.”
“우리는 프리미엄이다.”
아무리 이렇게 외쳐도, 소비자가 그것을 경험으로 느끼지 못하면 포지셔닝은 실패한다.
부모의 칭찬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번에도 기대할게”, “넌 특별해”, “넌 최고야”라는 말을 아무리 반복해도, 아이가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는 경험 없이는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하다. 진짜 포지셔닝은 아이 내부에서 단단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LEGO의 창립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오직 최고의 것만이 충분히 좋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결과의 완성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의 성실함을 향한 태도를 의미했다. 심리학자 캐롤 드웩은 이를 연구로 설명한다. 결과를 칭찬받은 아이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회피하게 되고, 과정을 인정받은 아이는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힘이 생긴다.
칭찬의 양이 아니라 칭찬의 방향이 아이의 내면을 전혀 다르게 설계하는 것이다. 나는 칭찬의 방식을 바꿨다. 결과 대신 과정을, 능력 대신 태도를, 평가 대신 관찰을 말하기 시작했다.
“잘했어” 대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던데, 괜찮았어?”
“네가 최고야” 대신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느낌이었어?”
◇ 아이의 보이스, 이렇게 만들어진다
마케팅에서 SWOT 분석의 진짜 힘은 약점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약점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애플(Apple)은 ‘비싸다’는 약점을 ‘단순함’이라는 강점으로 재정의했다. 이케아(IKEA)는 ‘조립의 번거로움’을 ‘내가 만드는 경험’으로 창조했다.
아이의 약점도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재정의할 것으로 바라볼 때, 아이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고집이 세다’는 말은 ‘자신의 신념이 있다’로 바뀔 수 있다. ‘산만하다’는 말은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느리다’라는 약점은 ‘신중하다’는 강점으로 읽힐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보는 순간, 아이의 브랜딩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하는 말은 결국 아이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 된다. “넌 무엇을 할 때 가장 너답니?”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 그것이 코칭에서 말하는 ‘자기주도성’이며, 브랜딩으로 말하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코어 아이덴티티(Core Identity)’다.
나는 지금도 무심코 “잘했어”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뱉고 나서 반드시 한 마디를 덧붙이려 한다.
“그런데 너는 어땠어?”
그 한 마디가 평가를 대화로 바꾼다. 외부의 판단에 기대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가진 아이로 자라게 하는 시작점이 된다. 그것이 바로 아이의 진정한 셀프 브랜딩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이의 셀프 브랜딩을 위한 여정의 첫 번째 질문은 오늘 저녁, 부모의 입에서 시작되어도 좋다.
“그럼, 너는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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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리 블루밍경영연구소 코치
마케팅, 리더십, 조직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으며, 현재는 국제코치연맹 인증 전문코치(PCC)로서 코칭과 자문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돕고 있다. 또한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스마트AI경영학과 특임교수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성장과 인재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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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이 많을수록 아이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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