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 년 동안 나는 고객을 정의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그 문제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구조화하는 일. 시장의 경쟁 속에서 고객의 니즈를 빠르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포지셔닝을 설계하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유능한 브랜드 마케터의 조건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나는 조직에서 자주 성과를 내는 리더로 평가받았다.
빠르게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이 비효율을 막도록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 그것이 나의 강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아이를 고객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내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 자녀의 문제 해결사라는 부모의 착각
청소년이 된 아이가 처음에는 잘 따라온다고 알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풀어야 할 문제로 정의했고. 진로가 정해지지 않으면 빠르게 '결정해줘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감정이 불안정해 보이면 고쳐야 할 결함으로 진단했다. 아이가 힘들 때는 “힘이 들었겠구나”라는 공감이 먼저가 아니라, “다음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재빠르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케팅에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듯이,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을 문제와 해결책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마다 빠른 진단으로 자녀의 혼란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좋은 고객 경험을 설계하듯이, 좋은 부모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있던 즈음, 아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고민과 문제는 더 많아 보이는데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요구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지 않아. 항상 답만 주려고 해. 나를 믿기는 하는 거야?”
시간이 멈춰버리는 듯했다. 나는 정말 내 아이에 집중하고 있었던가. 아이의 존재를 온전히 궁금해하고 나보다 아이를 믿고 있었던가?
◇ 마케팅은 가치에 관한 것, 존재의 경청
코칭 공부는 이 때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문제를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존재 가치’였다. 마케팅도 가치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나는 아이의 존재 가치를 얼마나 들여다보았는가? 제품에 생명을 불어넣어 브랜드를 만든다고 믿었던 나만의 마케팅 철학을 이미 한 생명체인 아이에게 얼마나 실천했는가? 그 생각에 한동안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독일의 대 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 생각이 났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코칭은 상대를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며 성장을 지원한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아이의 진정한 자기다움이야 말로,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스스로 ‘나’를 찾아가는 성장의 여정에 있어야 함을. 알이라는 자신의 세계,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여정임을.
코칭과 마케팅은 이어져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주고 알아차리는 과정임을. 코칭을 배우고 아이와 다시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는 것 같아, 들어줘서 고마워”
유능한 부모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인생의 진득한 경험을 통해 명석한 해답으로 꽃 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바램. 하지만 아이는 더 닫힌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아이의 '세계'와 ‘가치’를 이해하려고 한다.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실천해야 했다. 가장 먼저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 아이를 만드는 부모에서 기다리는 부모
나는 내 아이에게 계속해서 했던 부모 포지셔닝을 내려 놓았다. 내가 그려 놓은 포지셔닝 맵 틀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노력했던 아이에게, 부모가 줘도 아깝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신뢰를 선물하려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발견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신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의 말 사이에 조언을 넣지 않는다. 아이가 침묵해도 그 침묵을 존중한다. 진로 고민을 할 때도 “그럼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지”라고 펼쳐놓지 않는다. 대신 “그렇구나. 언제든 얘기 나누고 싶으면 말해”라고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선택을 조금씩 발견해간다.
포지셔닝을 내려놓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부모가 정의하는 ‘넌 이런 아이’라는 틀에서 아이를 해방시키는 것. 그리고 ‘넌 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그것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것을 만들 때쯤이면 고객은 이미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아이의 셀프 브랜딩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마케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이를 만드는 부모에서 기다리는 부모가 되었다.
-
☞ 김주리 블루밍경영연구소 코치
마케팅, 리더십, 조직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으며, 현재는 국제코치연맹 인증 전문코치(PCC)로서 코칭과 자문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돕고 있다. 또한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스마트AI경영학과 특임교수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성장과 인재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에듀 리더십 코칭] “넌 뭘 할 때 가장 너답니?”
- 김주리의 셀프 브랜딩 ①
Copyrightⓒ Chosunedu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