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의 우리 아이, 이슈&저널] 무인 뽑기방에서 돈을 쓸어 담는 아이들
서민수 경찰관
기사입력 2026.05.20 12:22
  • 얼마 전 한 방송국의 요청으로 청소년 범죄와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 자문 인터뷰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작가님이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사례들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제가 알던 소년 범죄와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방송에 소개된 청소년 무인점포 절도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영상에는 아이들이 현금이 많이 보관된 무인 인형 뽑기방을 중심으로 마치 게임을 하듯이 절도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을 넘나들며 범행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역할을 나눠 택시를 잡고 도망갈 방법을 미리 준비해 놓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피해 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금액만 놓고 보면 더 이상 ‘애들 장난’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런데 화면 속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면 이상한 점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큰돈을 훔친 아이들의 얼굴에서 흔히 예상하는 흥분이나 즐거움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딘가 지쳐 있고, 무표정하며,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가출팸’과 ‘동네형’입니다. 

    가출팸은 단순히 친구들끼리 어울려 노는 집단이 아닙니다. 집 나온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는 ‘작은 가족’이자, 동시에 돈과 생존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작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역할을 배우고, 때로는 범죄를 통해 필드에 나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식까지 익히게 됩니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동네형’들의 존재입니다. 도대체 이 ‘동네형’은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일단, 동네형들은 직접 범죄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들에게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고, 범행을 시키거나 훔친 돈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속여서 곤경에 빠뜨리고 돈을 착취하기도 하죠. 하지만 당하는 아이들은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이용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훔치기도 합니다. 어른에게 인정받기 위해, 가출팸 안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잠잘 곳과 밥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범죄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누군가의 생계 수단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무인 뽑기방은 현대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불빛은 화려하고 기계음은 끊이지 않지만, 정작 사람은 없습니다. 점원도 없고, 가게 주인의 얼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물건을 훔치면서도 누군가의 삶을 빼앗는다는 감각보다, 그저 게임 속 미션 하나를 수행하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과거 동네 문방구에는 ‘관계’라는 게 존재했습니다. 문방구 아주머니는 아이 이름을 불렀고, 아이들은 괜히 눈치를 보며 주머니 속 손을 움츠렸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라는 한마디가 통하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지금의 무인 공간에는 그런 ‘관계’가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눈빛 대신 CCTV 렌즈만 남아 있을 뿐이죠. 어쩌면 아이들에게 범죄는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 아니라, 차가운 시스템을 통과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오늘날 아이들이 너무 많은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은 끊임없이 “갖고 싶다”라는 마음을 자극합니다. 친구의 새 운동화, 유명 브랜드 옷, 게임 아이템, 배달 음식 사진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현실의 아이들은 불안합니다. 공부에 지치고, 미래는 막막하고, 인정받을 기회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아이들은 천천히 노력해서 얻는 기쁨보다, 지금 당장 손에 넣는 만족에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 인터넷 속 잘못된 정보도 문제입니다. “소년은 처벌받지 않는다”, “촉법소년이면 괜찮다”와 같은 말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떠돕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복된 절도는 결국 아이 삶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순간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학교생활과 인간관계, 미래의 진로까지 흔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피해자 역시 누군가의 부모이고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인 점포를 운영하는 분들 가운데는 하루 매출 몇만 원이 절실한 자영업자도 많습니다. 반복되는 절도는 단순히 물건 몇 개를 잃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볼 때마다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시’보다 ‘관계’라는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 많은 CCTV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바라봐 주는 어른의 눈빛일지도 모릅니다. “괜찮니?”, “요즘 무슨 고민 있니?”라고 물어봐 주는 한 사람의 관심이 아이를 붙잡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인 사회는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입니다. 편리함은 더 커질 것이고요. 하지만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 아이들의 마음까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결국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범죄를 멈추게 하는 힘 역시 차가운 기계음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