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 현장 전문가의 시선] “화석에서 생명력으로”…2028 대입과 인재의 재정의
벤자민 아발론랭콘 광교캠퍼스 원장
기사입력 2026.05.15 08:52
  • 바야흐로 컨설팅의 시대다. 매주 안개 낀 길 앞에 선 듯한 마음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필자는 지난 7개월간 130여 명의 초·중·고 학생들을 만나 진로와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지금도 상담 예약 문의는 끊이지 않는다. 이 숫자는 단순한 상담 건수의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급변하는 입시 환경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묻는 교육 현장의 불안과 절실함이 담긴 결과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지난 7개월간 만난 130여 명 가운데 특목고나 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은 20% 남짓이었다. 나머지 80%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반고 지망생들이었다. 25년간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16년간 입시 상담의 최전선에 서온 필자에게도 최근의 변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고교학점제’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그리고 그 뒤에서 성적이라는 숫자에 가슴을 졸이는 부모님들께, 130여 명의 상담이 필자에게 확인시켜준 교육의 현실을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숫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에 있었다.

    ◇ 점수라는 이름의 화석, 역량이라는 이름의 생명

    2028 대입 개편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숫자의 퇴장’과 ‘역량의 등장’이다. 과거의 입시가 매끈하게 다듬어진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라는 ‘화석’을 수집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대학은 그 화석이 만들어지기까지 학생이 겪어온 ‘살아있는 과정’을 보고자 한다.

    주요 대학에서 내신 100% 교과 전형이 줄어들고, 정시에서조차 학생부 기록을 반영하거나 면접 비중을 높이는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뽑는 데서 나아가 스스로의 배움과 성장을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로 풀어낼 줄 아는 ‘호모 나렌스(Homo Narrens, 이야기하는 인간)’를 선발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러한 변화는 거대한 시대적 변곡점과 맞닿아 있다. 3차 산업혁명이 ‘검색’과 ‘실행’을 통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인재를 요구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스스로 ‘질문’하고 창의적으로 ‘융합’하는 인재를 요구한다.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혁명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변화”라고 단언했고,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느냐”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지식의 양이 아닌, 변화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는 인간 본연의 역량. 그것이 대입의 핵심 경쟁력이 된 것이다.

    ◇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 우리 자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필자는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진로적성검사와 전 과목 학습역량 진단을 실시한다. 아이가 어떤 기질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과목별로 지식을 이해하고 다시 활용하는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개개인에서 제공하는 솔루션은 차이가 있지만,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발견을 토대로 역량과 성찰을 갖추어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시기별로 설계하는 공통 전략은 다음과 같다.

    ◇ 초등 시기: 독서와 경험의 결합을 통한 ‘독서&체험 자산화’의 시작

    초등 시기에는 단순히 책을 읽히는 것을 넘어 실제 공간과 체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과 미술관, 과학관, 생태공원 같은 공공의 배움터는 그런 점에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된다. 책에서 만난 개념은 실제 공간을 걷고, 보고, 느끼는 경험을 통해 아이의 감각 안으로 들어온다.

    예컨대 광교에 위치한 경기도대표도서관은 건축물 자체가 ESG 가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이곳을 거닐며 친환경적 설계와 공공성의 의미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텍스트로만 접하던 가치를 삶의 장면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텍스트로 접한 가치가 삶의 감각과 만나는 순간, 배움은 더 오래 남는다. 독서와 체험, 탐구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아이의 사고는 쉽게 흩어지지 않는 자산으로 쌓이기 시작한다.

    ◇ 중등 시기: 역방향 설계(Backward Design)와 중학교 생기부의 연습장화

    중학교 시기는 적성 못지않게 학업 역량이 진로의 키를 좌우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내일이 대입 원서 제출일이라면 나는 어떤 서류를 내고, 어떤 면접을 준비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물어보는 역방향 설계가 필요하다.

    희망하는 대학과 전공에서 요구하는 과목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되, 그 관심과 노력의 흔적을 생기부에 세특·활동·독서가 어우러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도 중요하다. 

    ◇ 고등 시기: 냉철한 실전, 입체적 관리와 성찰의 완성

    고등학교 시기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전이다. 앞서 쌓아온 역량을 토대로 희망 학과와 대학을 끊임없이 수정·보완하며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성적과 활동의 하향 곡선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초·중등 시절에 다져놓은 학업적 기초와 사고의 자산이 반드시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탄탄한 자산 위에 대학이 요구하는 서류의 문법과 그들이 듣고자 하는 언어를 갖추어 성찰을 완성해내는 것. 그것이 고등 시기의 핵심이다.

    ◇ ‘답’이 아닌 ‘내용’에 집중하는 시대

    이제 잠깐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반복하던 기계식 문제 풀이의 시대는 끝났다. 공부의 방식도 역방향 설계에 맞춰 변해야 한다. 모든 과목의 공부는 “답이 무엇인가”를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내용이 무엇인가”를 깊이 파고드는 탐구가 되어야 한다.

    국어와 영어는 본문을 논리적·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수업이 되어야 하고, 수학과 과학은 공식 암기에서 벗어나 세상의 진리를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컨설팅은 아이를 대신해 길을 닦아주는 작업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지도를 읽고, 방향을 설정할 줄 알게 도와주는 이정표여야 한다. 

    개인 맞춤형으로 적성과 역량을 준비한다는 것 역시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나답게 성장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2028 대입 개편안이라는 변화의 파도 앞에서 아이들이 흔들릴 수는 있다. 그러나 침몰하지 않게 하려면, 이제 우리는 점수라는 ‘화석’이 아닌, 아이의 내면에 숨 쉬는 ‘생명력’을 먼저 들여다보고 그것을 성장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