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아이들의 언어유희, 아재 개그로 폄하하지 말자
김창연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원장
기사입력 2026.05.13 09:00

- 동서양 대문호들이 증명한 지적 유희의 힘

  • 김창연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원장.
    ▲ 김창연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원장.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단어를 갖고 노는 장면들이 재미있다. 같은 발음으로 연결 지어 다른 어휘를 말할 때 학생의 창의적인 생각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 얼토당토않은 것 같이 보여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의 줄임말, 신조어도 이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비틀고 뒤집는 이 유희의 과정이야말로 아이의 문해력과 사고의 유연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로 볼 수 있다.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언어의 구조와 맥락을 완벽히 이해해야만 가능한 고도의 지적 유희이다.

    ◇ 중의적 표현의 정수, 우리 고전 문학의 미학

    우리 문학사에서 언어유희는 품격 있는 수사법인 중의법(重義法)으로 발전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 시대 기생 황진이의 시조다.

    청산리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 시조에서 ‘벽계수’는 표면적으로는 ‘푸른 시냇물’을 뜻하지만, 세종의 증손인 왕족 ‘이종숙’이라는 인물의 호(號)이기도 했다. 또한 ‘명월’은 ‘밝은 달’을 의미함과 동시에 황진이 자신의 기명(妓名)을 뜻했다.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시를 문장으로만 대하게 되면 단순히 자연의 섭리를 읊는 듯 하다. 하지만 이면에는 종친 이종숙의 마음을 흔드는 매혹적인 메시지를 숨겨둔 황진이의 유혹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에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담아내는 능력은 언어의 결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고도의 문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단어의 소리와 뜻을 연결하며 장난을 치는 것은 이러한 문학적 비유의 기초가 되는 언어적 민감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 세계를 매료시킨 대문호들의 워드플레이(Word play)

    서양 문학에서도 언어유희는 대문호들의 가장 강력한 수사법이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언어를 무기로 사용한 더욱 정교한 예시가 등장한다. 주인공 포샤는 구혼자가 직접 금, 은, 납 상자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바사니오에게 노래를 통해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

  • 이 노래의 가사는 ‘bred, head, nourished, fed‘ 등 -ed 발음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반복한다. 이는 정답인 상자의 재료인 납(Lead)과 각운(Rhyme)을 맞춘 고도의 언어적 장치였다. 바사니오는 이 청각적 유희 속 힌트를 포착해 운명적인 선택에 성공하여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단순히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을 넘어, 소리의 유사성을 통해 정보를 유추하고 판단하는 전략적 문해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어유희의 또 다른 거장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대표작 ‘어니스트? 어니스트!(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에서 제목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언어유희로 설정했다. ‘성실하다’는 뜻의 형용사 ‘earnest’와 남자 주인공의 이름인 ‘Ernest’의 발음이 같다는 점을 이용해, 가식적인 상류 사회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갖기 위해 소동을 벌이는 설정 자체가 언어유희가 지닌 비판적 사고의 힘을 보여준다.

    ◇ 말장난 속에 숨겨진 메타인지와 문해력의 씨앗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문호들이 언어유희를 즐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유희가 단순한 웃음을 넘어, 언어라는 도구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언어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인지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어휘의 다의성과 동음이의어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검색하고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다. 어떤 상황에서 이 단어를 던져야 상대방이 반전의 묘미를 느낄지 계산하는 고도의 사회적 인지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경직된 사고를 깨는 유연함이다.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언어를 하나의 재료처럼 다루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는 경험은 창의적 글쓰기의 핵심 자산이 된다.

    ◇ 자유자재로 말장난을 하는 학생에게 박수를!

    어떤 학생의 엉뚱한 말장난을 듣게 된다면 소위 ‘아재개그’라고 핀잔부터 하지 말고 그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황진이의 우아한 중의법, 셰익스피어의 위트가 학생들의 말장난 속에서 싹트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호응은 아이의 언어 지능을 깨우는 가장 좋은 비료가 된다. 즐거운 놀이로 인식하며 언어와 친숙해지고,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는 학생은 어휘력과 문해력이 성장하는 흥미진진한 탐험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