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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왜 여기서 일해요?”
지겹지도 않은가 보다. 아이들은 마치 매월 날아오는 통신요금 자동납부 메시지처럼 잊을만하면 나에게 왜 이곳에서 일하는지 묻는다. 한편으로는 고맙다. 요 맹랑한 질문이.
“너 지금 제대로 하고 있니?” 라고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게 하기 때문이다.
“네, 선생님은 어린이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거든요. 여기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두 가지가 모두 있으니까요.”
좀 어쭙잖아 보이는 것 같아 솔직히 대답하는 게 망설여지긴 하지만 내 꿈 중 하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냥 어린이 옆에 있는 좋은 어른이고 싶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동녘, 2003)의 제제에게 좋은 어른이었던 뽀르뚜가처럼. 아니다. 뽀르뚜가는 경제적으로 꽤나 넉넉한 사람이라서 내가 되긴 좀 거리가 멀고, <내 이름은 스텔라> (특별한서재, 2020) 속 닝구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저렇게 살짝 모자라도(?)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는데, 나라고 삶을 살아내지 못할쏘냐?’
정도의 정서적 안도감이 들게 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반복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일 먼저 살피는 것은 내가 아이들 앞에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독자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공장장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교사가 열정이 가득하다 보면 공장에서 완벽한 제품을 찍어내듯, 자칫 독서 스킬을 단단히 갖추고 기계적으로 책을 읽는 학생을 배출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에게 요약하기, 추론하기, 질문 만들기 등 읽기 전략도 필요하다. 이런 지도를 통해 읽기 능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켜 독서에 효능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서 스킬 지도에만 치중하다 보면 읽기는 학습자가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해치워야 할 과제가 되고, 학습자는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렵다.
즉, 독서 스킬 지도만으로는 아이들이 요즘 환경 분야든 경제 분야든 모두가 부르짖는 ‘지속 가능한’ 독립된 독자로 서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을 스스로 책을 찾는 독자로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먼저 학생에게 스스로 텍스트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읽을 때 즐거움과 재미도 더 커지는 법이다. 리딩엠은 수업을 할 때 모두가 의무적으로 보아야 하는 ‘수업 도서’를 대출하는 것 외에 학생이 자율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한다. 이 책을 ‘보충 도서’라고 한다.
교실에서 책에 대해 도란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흐뭇한데, 더 반가운 것은 학생 스스로 고른 보충 도서에 대해 반응하는 경우다. 특별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한다면 이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더없이 기쁘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읽기 동기가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둘째, 독서 실패에서 배우게 한다. 수업의 주재료인 수업 도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지만 보충 도서는 다 읽지 않아도 좋다. 종종 아이들은 꾸지람을 들을까 싶어 또는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빌린 책을 다 읽어 온 척한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이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다 안다. 평소와 달리 꾸무럭꾸무럭 들어오면
‘저 녀석, 책을 다 못 읽은 게로군.’ 하고 보인다.
재미있거나 혹은 너무 재미없는 책은 학생들이 교실에 득달같이 와서 말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학생들이 괜한 죄책감을 느낄까 봐 내 이야기를 슬쩍 들려준다.
“선생님은 보통 5~7권의 책을 동시에 봐요.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 온 다음 쌓아놓고 보는 거예요. 책을 읽다가 흥미가 있으면 계속 읽고 다소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책으로 바꾸어요. 이렇게 흥미가 떨어질 때쯤 도서를 바꾸어 보면 그런대로 잘 읽히는데요. 아무리 짧게 끊어 읽어도 영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읽지 않아요. 저와 맞지 않는 책이거나 아직 타이밍이 맞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간 타이밍이 맞겠지 하며 다 읽지 않고 반납한답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실패가 아니라 다음으로 약속을 미루는 것뿐이에요. 또는 내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라고 말이다.
셋째, 웅숭깊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루는 학생들과 치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마침 <치킨 행성의 비밀> (창비, 2026)을 읽은 터라 인간에 의해 초비만 닭이 되어 A4 용지보다 좁은 곳에서 관절통에 시달리다 두 달로 짧아진 생애를 마치는 닭에 대해 이야기하며
“선생님도 치킨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이제 닭 먹는 것을 조금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운을 뗐더니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요, 뭘. 전 치킨 계속 먹을 건데요.”
물론 친구들을 웃기고자 한 의도도 조금은 있었지만, 텍스트를 읽고 나서 순도 100%의 반응이었다면 교사로서의 보람은 0, 아니 마이너스 100으로 떨어졌을 거다. 텍스트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면 적어도 지식 추가로 끝나지 않고 자료가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거나, 내가 자주 시켜 먹는 브랜드 닭의 사육환경에 대한 궁금증을 품는 행동으로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교사는 책 읽기가 정보 습득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성을 띤 삶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학습자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가볍게 ‘넛지(nudge)’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내 수준과 기호에 맞게 책을 선택하고, 글을 전략적으로 파악하고, 나의 고민과 생각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삶 속으로 가져오는 것. 이제는 독서 스킬을 기르는 것을 넘어 독자를 기르는 교실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독서 스킬을 기르는 교실, 독자를 기르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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