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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 앨빈 토플러
나는 한국 교육이 바뀌었으면 한다. 내 자식과 그 후손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뭘 못하던 때는 지났다. 교육 예산이 넘쳐난다. 지금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압축성장의 길 그대로 압축소멸의 내리막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중국은 5년 전 사교육 금지라는 ‘쌍감’ 정책을 발표했다. 사교육 업체들은 하루아침에 도산했고, 중국의 대형 교육 업체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와 함께 사업을 하던 중국의 파트너사에서 보내주던 로열티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로열티가 다시 상승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직접 확인을 하고 싶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트너사 사장은 나에게 2022년 판 ‘영어과정표준(英语课程标准)’이라는 문서를 건네줬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영어과 교육과정’과 유사한 문서다. 겉으로 보기엔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가 '이해'와 '표현'의 실질적 영어로 교육 과정 전환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같은 '이해'와 '표현'으로 문서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두 문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본질'에서 차이가 보였다.
우리 교육부에서는 2022년에 교육과정 개편안을 발표한 후, 수천억을 쏟아부으며 야심차게 AI 디지털 교과서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나름 사명을 갖고 만들었겠지만, 영어에 국한해서 비판을 하자면 교육의 핵심, 즉 본질은 그대로 두고 전달 시스템만 바꿨다고 볼 수 있다.
AI로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추천해 준다. 번개같이 오는 맞춤형 배달 음식. 포장 그릇과 젓가락, 포크도 좋아졌다. 그런데 음식이 맛없다. 빨리 오고 취향 저격 메뉴도 추천해 주는데 좋은 재료와 그 재료로 맛있게 요리하는 레시피가 쏙 빠져 있다.
물론 극심한 학력 격차를 보이는 학생들 사이에 '수준별 개인 맞춤'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력 격차에 따른 낙오 학생을 구원해 줄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의 본질에는 큰 변화가 없다. 교육의 본질은 그 평가 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찬란한 '수능'이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수능 점수는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관계가 높다. 전체 인구의 3%에 해당하는 강남 3구에서 서울대 (정시) 합격자의 20% 이상을 배출하는 이유다. 또 다른 특징은 점수와 영어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수능 영어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중국은 2022년 영어교과과정 개편안을 시작으로 그들의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高考)의 영어과목을 IELTS와 유사한 방식으로 개혁 중이다.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는 여타 영어공인 시험 대비 영어 구사력을 가장 잘 평가하는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과 영국 문화원이 공동으로 개발 관리하고 있다.
영어 교육의 본질은 교과서 개편이나 AI 도입이 아니라 해당 언어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동적 인지(Active Cognition)를 유발하는 학습을 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재미있게.
현재까지 검증된 학습법은 '독서'가 유일하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주입과 반복 그리고 평가를 중심으로 한 행동주의식 교육이다. 수동적 인지(passive cognition) 회로를 극대화하여 58000 rpm으로 돌린 후 수능 영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구조다. 짧은 지문을 읽고 ‘정답은 뭐야?’라고 닦달하듯 다그치는 교육이다. 의미있는 글을 읽고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묻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아이들은 영어로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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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필자는 중국에서 열리는 영어교육국제 컨퍼런스(Global Conference on Innovating Language Literacy Education Capacity)에 기조 강연자로 초대되어 발표했다. 500여 명의 영어 교사 및 교육 관계자 앞에서 나는 그들의 ‘영어과정표준’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나보다 앞서 기조 연설을 했던 메이(梅德明) 교수가 그 문서를 작성한 위원회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나는 메이 교수님과의 저녁 만찬 자리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교육이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독서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개념있는 교수가 국가 영어교육의 방향을 이끌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교육부와 정책 입안자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중국 교육부의 2022년 ‘영어과정표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교과과정을 넘어 영어 ‘독서’를 장려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학년별 최소 독서량을 제시한다. 중3의 경우 최소 15만 단어 분량. 필자의 회사에서 개발한 리딩앤 레벨 7~9 기준으로 130권 정도 된다. 200쪽 남짓 되는 문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독서(阅读)’다. 324쪽에 달하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영어과 교육과정’ 개편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어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독서’라는 단어가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서를 읽어 내려가다가 아래 부분을 읽고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되어 울고 싶어졌다. 나는 중국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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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과외 독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독서 소양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독서 환경, 자원, 방법을 제공하여 좋은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독서를 통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중학생들의 인지 발달 요구와 언어 수준에 맞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갖춘 독서를 선택하여 보충하거나,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 수준과 관심사에 맞는 독서 자료를 선택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독서 계획이나 독서 과제 목록을 작성하고, 교과 내용을 참조하여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성장, 가족, 학교, 과학, 사회 문제 등의 주제를 선정해 긍정적인 내용을 담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매일 일정한 독서 시간을 확보하도록 독려하고, 정독과 다독, 수업 내 독서와 과외 독서를 결합하여 독서 과제를 숙제로 통합하고, 정기적으로 독서 성과를 발표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습의 규칙을 따르고, 학생들의 차별화된 요구를 충족시키며, 지속적 조용한 독서, 독서 일지, 이야기회, 연극 공연, 독서 감상문 공유 등의 활동을 지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이 독서 경험을 현실 생활과 연결시켜 감정적 공감과 독서 기대를 불러일으키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독서 기술과 전략을 더욱 발전시키고, 독서 유창성을 높이며, 독서량을 늘리고, 지속적인 독서 관심을 유지하며, 좋은 독서 습관을 기르고, 건강한 독서 취미를 형성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윤의 AI시대 K-리더스] 나는 중국이 무섭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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