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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직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 태어난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누리는 섬세한 육아와 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필자는 부모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부모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그것이다.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자존감으로 이어졌고,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을 때, 부모님에게서 받은 그 온전한 사랑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흔들림 없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필자는 에디터라는 직업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그때부터 나에게 필요한 육아와 교육 관련한 책들을 직접 기획하고 편집하기 시작했다. 태교동화, 베이비 마사지, 이유식에서부터 자녀 양육의 태도와 관점을 다룬 에세이, 형제 간 갈등과 해법을 다룬 교육책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질문에 따라 책을 만들며 말 그대로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덕분에 필자는 아동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묻고 배우며 아이를 키워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육아와 교육’에 대해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 되었다. 그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 스스로 붙들고 지켜온 한 가지 기준이 있다.
바로 아이를 믿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싶지만, 사랑하기에 실패가 두려워 정작 아이의 역량은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이를 키워본 우리는 안다. 아이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부모인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아이를 한 인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래야 비로소 기다릴 수 있고, 아이의 삶을 존중할 수 있다.
◇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된다는 것
나는 지난 글에서 아이가 한 경험을 맥락과 의미로 연결해 자산으로 만드는 ‘서사지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사지능은 아이의 경험을 꺼내어 감정을 지나, 의미를 발견하게 해 마침내 스스로를 정의하는 자기명명까지 만드는 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한 가지가 있다. 아이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경험 앞에서는 쉽게 개입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떤 일을 겪고 나면 부모는 바로 경험의 결론인 정답지부터 내밀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잠시 접고 생각해보자. 아이가 한 경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부모인가, 아이인가?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아는 것을 넘어선다. 그 경험을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왜 그것이 중요했는지,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행동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를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너는 어떤 느낌이었어?”, “왜 그게 너에게 중요했을까?”, “다시 그 상황이 오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같은 질문은 아이를 ‘경험의 수행자’에서 ‘경험의 해석자’로 바꾼다.
서사가 있는 사람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때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나는 이런 경험을 해왔고, 이런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해온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부모가 결론을 대신 써주는 '매니저'가 아닌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구조화하도록 돕는 '에디터'로 머물 때, 아이의 파편화된 경험은 비로소 하나의 맥락을 가진 브랜딩으로 완성된다.
브랜딩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살아온 경험을 맥락과 논리로 연결해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 즉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그래서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다.
입시는 결국 이 문장을 읽는 과정이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본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부모인 당신은 지금 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경험이 아이 안에서 의미로 완성되도록 기다려주고 있는가. 아이가 자신의 경험에 스스로 밑줄을 그을 때까지 부모의 펜은 잠시 내려놓자.
[에듀 리더십 코칭]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되는 순간, 아이의 브랜딩이 시작된다
- 송미진의 서사지능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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