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의 우리 아이, 이슈&저널] 누가 아이들에게 ‘소음 양해문’을 쓰게 했을까
서민수 경찰관 kyul@chosun.com
기사입력 2026.04.30 17:54
  • 뉴스를 보다 보면, 점점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이 어디로 향하는지 묻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독특하게 보였던 일들이 점점 일상처럼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익숙한 언어로 포장되어 자연스레 ‘맞는 말’처럼 자리 잡는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빠르게 재구성되고 확산하면서 어느새 ‘아닌 게 맞는 것’처럼 하나의 기준으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담장에 붙은 ‘소음 양해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쓴 걸로 보이는 종이에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고, 운동회 날짜가 적혀 있는 걸로 보아, 곧 열릴 운동회로 인해 소음을 미리 양해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였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이들은 주변 아파트 주민들에게 아직 하지도 않은 운동회를 두고 미리 일어날 소음을 사과했다는 건데, 이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운동회는 그저 그런 학교 행사가 아닙니다. 원래 운동회는 근대 교육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기 위해 도입된 교육 활동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학교 교육 속에 자리 잡았고, 단순한 체육 행사를 넘어 스스로 ‘함께하는 경험’을 배우는 꽤 중요한 교육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즉, 아이들의 운동회는 ‘시끄러운 행사’가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성장의 순간 앞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곧 있을 행복을 뒤로 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문제는 운동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놀이 환경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방과 후, 아이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고 있고, 그 공백을 편의점 같은 소비 공간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간은 접근성은 좋겠지만, 본질적으로 관계 형성과 활동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죠.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 역시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시설이 존재하더라도 안전에 대한 인식과 관리의 문제로 실제 이용률은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농구장에 농구공이 없고, 축구장에 축구공 없이 시설만 존재하니 아이들이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하지 못합니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머무르며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보다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이탈하는 공간’에 더 익숙해질 수밖에 없겠죠.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활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놀이 공간은 단순한 여가의 장소가 아니라, 또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 규범을 체득하며 정서적 에너지를 조절하는 핵심적인 환경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이 축소되면서, 아이들의 일상은 점점 더 관리되고 분절된 형태로 재구성되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결국, 현재 상황은 ‘공간의 부족’이라기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머물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질적 공간’의 감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꽤 위험한 변화입니다. 아이들의 성장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친구와 부딪히고, 때로는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정서가 함께 자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적인 활동이 점점 제한되고, 오히려 아이들이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실제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운동회와 관련된 민원이 접수되면서 경찰이 출동하는 사례까지 발생하자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뛰어노는 것조차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이 터무니없게도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민원이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즉, ‘초품아’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된다는 게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원래 ‘초품아’는 아이의 안전한 통학과 교육 환경을 위해 부모들에게 선택된 주거 형태였습니다. 학교를 가까이 두고 안심하며 키우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는 공간이었죠. 물론 여기에는 예상했던 긴장이 존재하는 건 사실입니다. 아이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마음과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같은 공간 안에서 부딪히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균형이 깨질 때, 가장 먼저 조심하게 되는 존재가 바로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는 게 너무 씁쓸합니다. 

    교육은 결국 가치의 우선순위를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아이들은 원래 움직이고, 소리 내고,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교육 이전의 본성이자, 지켜줘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운동회를 경험한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아이들에게 “죄송합니다”를 먼저 말하게 한다는 건, 너무 무례하고 염치없는 행동이지 않을까요. 

    운동회 날, 학교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시죠. 그 소리가 불편함이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신호로 들리지 않나요. 앞으로는 꼭 운동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자기의 행복과 권리 앞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도록 어른으로서 다 같이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