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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골목. 지금은 ‘강남구 창업가거리(팁스타운)’로 불리는 이 일대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공간이다. 1990년대 후반 벤처 붐 시기, 투자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지역은 지금까지도 주요 벤처캐피털과 창업 지원 기관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꼽힌다. 투자자와의 접근성, 자연스럽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이 일대를 창업가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했다.
지난 24일 금요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 골목. 강남구 창업가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마루360’ 로비에는 투어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예비 창업자와 직장인,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이 모인 ‘마루투어’는 단순한 공간 안내를 넘어 스타트업 지원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로 진행됐다. 창업가를 위한 이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을 만들고, 성장을 지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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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을 넘어선 창업 지원 플랫폼, ‘마루’
팁스 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마루180’과 ‘마루360’은 스타트업을 위한 업무 공간이자 창업 지원 거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두 건물은 도보로 이동가능한 거리에 위치하며, 주변의 투자사와 액셀러레이터, 지원 기관과 맞물려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단순히 사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가와 투자,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환경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실제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기능은 더욱 세분화돼 있다. 장기 입주 공간인 ‘마루성장존’과 초기 팀을 위한 ‘마루시드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회의 공간과 이벤트홀, 촬영 스튜디오까지 갖춰져 있다. 해외 투자자를 위한 공간이나 아이 돌봄을 고려한 키즈존도 함께 마련돼 있었다. 창업가의 일과 일상 모두를 고려한 구성이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프로그램이다. 마루에서는 멘토링 프로그램인 ‘마루커넥트’, 투자 연계 프로그램, 제휴 혜택, 홍보 지원 등이 함께 운영된다. 동시에 ‘마루타운홀’, ‘마루밋업’, ‘마루워크숍’과 같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사 간 교류가 이어진다. 같은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다시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되는 구조다.
이 공간의 이름인 ‘마루’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산의 정상처럼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마루’, 그리고 집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 공간 ‘마루’이다. 창업가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연결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의미다.
운영을 맡은 아산나눔재단은 기업가정신 확산을 목표로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이곳을 거쳐 간 스타트업은 600여 개 팀에 이른다. 각기 다른 단계의 기업들이 이 공간에서 머물고, 성장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
건물 안을 걷다 보면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드러난다. 공간은 열려 있고, 동선은 겹치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마루는 그렇게 설계된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 구조는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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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무는 곳이 아니라, 흐르는 공간
“통창 너머로 시선을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인 휴식 방법입니다.”
마루360 투어는 공간 설명보다 이 한마디로 시작됐다. 라운지 앞을 따라 길게 이어진 통창 너머로 시야가 열렸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건물 밖으로 향했다. 아산나눔재단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계속 보는 상태에서는 뇌가 쉬는 모드로 전환되기 어렵다”라며, “시각적 거리를 확보하는 환경 자체가 휴식을 돕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간의 형태보다 설계 의도가 먼저 제시되는 순간이었다.
라운지 안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졌다. 노트북을 펼쳐 작업하는 사람들, 서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팀이 같은 공간 안에 섞여 있었다. 고정된 자리 없이 이동과 전환이 자연스럽게 반복됐다. “이곳은 쉬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공간입니다”라는 아산나눔재단 관계자의 설명처럼 휴식과 업무의 경계는 분리되지 않았다.
공간은 이용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뉘어 있었다. 디자이너를 위한 라운지는 색감과 오브제가 강조된 열린 구조였다. 한쪽에는 소품이 놓여 있었고, 감각을 환기시키는 요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반면 개발자를 위한 공간은 조도를 낮추고, 파티션을 통해 개인의 집중을 유도하는 구조였다. 같은 라운지라도 휴식의 방식은 다르게 정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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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특정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복도와 라운지 곳곳에 짧은 논의를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었고, 필요할 때 모였다가 흩어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회의실 이름에 붙은 ‘모험’ 같은 단어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장치였다.
중앙 계단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다른 층의 회사들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최대한 많이 만나고, 그 안에서 시너지가 나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중심으로 연결된 동선은 사람을 마주치게 만들었다. 촬영 스튜디오와 이벤트홀, 세미나 공간도 같은 흐름 안에 있었다. 한 공간에서는 촬영이 진행되고, 다른 공간에서는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마루360, 마루180을 따라 이동하며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은 분명했다. 공간은 열려 있고, 동선은 겹치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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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연결, 성장을 만드는 구조
마루의 특징은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더 또렷해진다. 눈에 보이는 라운지와 회의실 뒤편에는입주사를 연결하는 별도의 구조가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
마루는 입주 기업 간 교류를 넘어서 외부와의 접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멘토링 체계인 ‘마루 커넥트’다. 분야별 전문가와의 연결을 통해 사업 방향을 점검하고, 필요한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단순 강의가 아니라, 실제 사업 단계에 맞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가깝다.
투자와의 연결도 이어진다. 건물 인근에는 다수의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가 자리하고 있고,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지는 구조다.
입주사 지원 역시 제공보다는 ‘연결’에 가까웠다. 투자 연계, 파트너사 매칭, 홍보 지원 등은 모두 외부와의 접점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다. 특정 자원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기보다 필요한 사람과 기회를 이어주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였다. 입주사 대표와 팀원들은 같은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연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공간 설계와도 맞물린다. 열린 동선과 공용 공간은 만남의 빈도를 높이고, 프로그램은 그 만남을 관계로 이어지게 만든다. 물리적 공간과 운영 시스템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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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네트워크였습니다”
이날 투어에서는 실제 입주 기업 관계자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마루360에 입주해 있는 최호재 마일코퍼레이션 비즈니스 파트 리드는 “마루에 입주한 뒤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최호재 리드는 “같은 건물 안에서 다른 스타트업 대표나 구성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사업적인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거나 방향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슷한 단계를 겪고 있는 팀들이 많다 보니, 공식적인 프로그램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얻는 정보가 적지 않다”라며 “운동모임이나 네트워킹 자리 등을 통해 형성된 관계가 이후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아산나눔재단 측의 설명 역시 같은 맥락을 짚었다. 아산나눔재단 관계자는 “마루는 다양한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만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뤄지도록 설계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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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투어를 따라 이동하며 확인한 것은 물리적 공간의 규모나 시설의 완성도만이 아니었다. 개방된 동선,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연결,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까지. 공간·시스템·사람이 하나의 구조로 맞물려 작동하고 있었다. 마루는 머무는 장소라기보다 만남과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된 환경에 가까웠다.
이 같은 구조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창업은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그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는 외부와의 연결, 정보 교류, 협업 환경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팁스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일대 역시 물리적 입지를 넘어 투자와 네트워크가 결합된 환경 속에서 기능하고 있었다.
마루투어는 이러한 구조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인을 포함해 예비 창업자,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대상이 참여할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운영된다. 투어 신청은 마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짧은 동선 안에서 둘러본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그 관계가 다시 기회로 확장되는 흐름. 이곳에서는 공간보다 그 안의 구조가 먼저 작동하고 있었다.
[탐방기] 스타트업의 요람, ‘마루180·마루360’ 그 현장을 가다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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