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 문해력 공부법] ‘감정이입’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
권준혁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6.04.22 09:00
  • “저는 외동이에요.”

    “저는 동생은 없고, 누나만 있어요.”

    “우리 가족은 이모는 있는데, 고모는 없어요.”

    수업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들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심을 ‘나’에게 둔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주인공의 상황이 자신의 경험과 다르면 곧바로 거리를 둔다. 나는 외동인데 왜 동생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우리 집에는 그런 어른이 없는데 왜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 반응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럽다.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던 아이가 타인의 입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 그 낯설고 어려운 통로에 바로 독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에서 감정이입은 선택이 아니라 핵심이다. 책 속 인물과 독자가 완전히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독자가 똑같이 경험했을 확률도 매우 낮다. 그런데도 독서가 의미 있으려면, 우리는 그 낯선 사건을 내 삶과 연결해 보고, 아직 겪어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마주할 수도 있는 일처럼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책은 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넓혀 주는 경험이 된다.

    많은 학생이 학년이 오르고 어휘력이 늘면 자연스럽게 모든 작품이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낱말의 뜻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예전에 잘 모르고 지나쳤던 문장이 훗날 가슴에 와닿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러나 단어를 안다고 해서 곧바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뜻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그 독서는 아직 표면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독서는 정보를 얻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직접 살아보지 못한 삶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책을 읽을 때 뇌는 그 장면과 감정을 실제 경험에 가깝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서에서 감정이입은 단순한 공감 훈련이 아니라, 삶을 더 깊고 넓게 받아들이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 권준혁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 권준혁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감정이입의 훈련은 거창한 작품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해서 대충 넘겼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이를테면 ‘흥부전’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은 처음에는 흥부를 그저 가난한 사람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부는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생계를 꾸리려 애쓰는 아버지다. 여기까지 읽히기 시작하면 학생은 단순히 줄거리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한 인물의 절박함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부터 독서는 살아 있는 해석이 된다. 더 나아가 어떤 학생은 흥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놀부의 시선을 상상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해석과 다르더라도, 이렇게 인물의 처지와 감정을 실제로 붙잡고 생각해 본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다. 수업에서는 바로 이런 순간이 창의성의 출발점이 된다.

       

    ‘심청전’도 마찬가지다. 내가 심청 같은 딸이 아니어도,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본 적이 없어도 괜찮다. 꼭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다른 작품 속 인물과 연결해 볼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관계와 감정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심청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혼자 남겨진 심 봉사의 외로움을 상상해 보는 과정, 혹은 영상으로만 보던 이야기를 인물의 마음에 집중하며 다시 읽는 과정이 모두 감정이입의 훈련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찾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독서를 잘한다는 것은 글자를 빠르게 읽는 일이 아니다. 줄거리를 줄줄 외우는 일도 아니다. 진짜 독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나의 시선도 조금씩 넓어지는 일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꾸만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게 될 수 있다. 때로는 잘 맞지 않는 비교를 하거나 엉뚱한 연결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아이는 눈으로만 훑는 독서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읽는 독서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모범 답안을 바로 내놓지 못할 것 같다고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한편 어른들은 엉뚱하더라도 아이들이 이야기 속 인물의 입장과 배경을 알아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특하게 생각해주어야 한다. 독서에서 감정이입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한가지다. 책을 통해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더 깊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수능 국어문제를 풀 때 보편적 감성과 보편적 사고를 할 줄 아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정답 체크는 확연히 달라진다. 국어점수가 잘 안 나오는 근본적 문제는 주관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에 있다. 보편적 감성과 보편적 사고는 그래서 중요하며, 이 훈련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감정이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