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협 여성가족부 차관보가 인도네시아로 간 이유 (인터뷰)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기사입력 2026.04.03 09:00
  • 정봉협 전 여성가족부 차관보.
    ▲ 정봉협 전 여성가족부 차관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돌봄 공백’과 ‘인력 미스매치’는 이제 예측의 영역을 넘어 현실로 다가와 있다. 인구는 줄고, 현장은 점점 비어간다. 다만 문제의 본질을 두고는 다른 시선도 있다.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교육된 인력을 필요한 곳에 연결하는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봉협 전 여성가족부 차관보는 이 문제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인물이다.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문화공보관,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부 주요 보직을 거치며 여성·가족 정책 전반을 담당해왔다. 수십 년 동안 정책과 제도를 통해 사회 문제를 풀어온 관료였다.

    그런 그가 공직을 마친 뒤 선택한 곳은 인도네시아였다. 2023년 8월, 그는 자카르타 외곽 데폭의 한 대학 캠퍼스로 향했다. 보고서와 제도를 넘어 사람을 직접 키워 현장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선택이었다.

    “한국의 문제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교육된 사람을, 필요한 곳에 연결하는 시스템이 없는 거예요.”

    정 전 차관보의 말은 하나의 문제 제기이자 출발점처럼 들린다. 그가 인도네시아로 향한 이유와 그 선택이 갖는 의미를 물었다.

    ― 공직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공직에 있을 때는 고령화 문제, 돌봄 공백 문제를 늘 숫자와 보고서로 봤습니다. 그런데 퇴직 이후 현장을 다니다 보니, 그 숫자 뒤에 얼마나 많은 가족이 무너지고 있는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정책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있지만, 현장에서 당장 내일 간병인이 필요한 가족에게 정책은 너무 느립니다. 공급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해답이 인도네시아에 있었습니다. 1993년부터 5년간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문화공보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따뜻함과 성실함을 몸으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더 확신을 줬습니다.

    ― 1990년대 인도네시아 대사관 근무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당시는 수하르토 정권 말기였고, 경제 위기 직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아세안 최대 경제국으로 성장했고, 젊은 인구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K-드라마, K-팝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를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에 대한 호감도가 86.5%에 달합니다. 이미 한국을 향한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시스템만 갖추면 됩니다.

  • 정봉협 전 여성가족부 차관보.
    ▲ 정봉협 전 여성가족부 차관보.

    ― 왜 하필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와 손을 잡았나요?

    우리가 필요한 건 단순 인력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인력입니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입니다. QS 세계대학 순위 인도네시아 1위죠. 마카라 UI 아카데미는 그 대학 법인 산하 합작 기관으로, 간호학부(FIK-UI)의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그대로 씁니다. 수료생에게는 대학, 인도네시아 보건부, 아카데미 세 곳의 공동 인증서가 나옵니다. 가족이 '어디서 교육받은 분이냐'고 물었을 때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공신력은 모든 신뢰의 출발점입니다.

    ― 한국폴리텍 1대학장 경험이 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직업교육의 핵심은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학장 경험 덕분에 일본 간병 현장이 요구하는 역량 수준과 인도네시아 보건 계열 고졸자의 역량 차이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마카라 UI의 20개 모듈입니다. 단순히 씻겨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어르신의 감정을 읽고, 응급 상황을 판단하고,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커리큘럼에 완화 돌봄, 반부패 교육, 정서 지원이 포함된 것도 그 철학의 반영입니다.

  • “공직에서 수십 년간 보고서와 정책으로 다뤄온 문제들을, 이제는 현장에서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키우는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 일본 파견 실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규모는 아직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델의 검증이라는 면에서 중요합니다. 일본은 현재 EPA·개호 재류자격·기능실습·특정기능 비자 등 4개 채널로 약 4만 명의 외국인 간병인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간병인들이 타 국가 대비 친절함, 인내심, 적응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현장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인도네시아 인력 중에서도 명문 국립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배출합니다. 이 차별점이 핵심입니다.

    ― TOPIK 센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가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가 한국어능력시험 IBT 공인 시험 센터로 지정됐고, UI의 합작 법인인 마카라 UI 아카데미가 그 운영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전 세계 TOPIK 응시자가 2024년 약 43만 명으로 2016년 대비 70%가량 급증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그 흐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공식 플랫폼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시험을 보려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마카라 UI 아카데미를 찾게 됩니다.

    ― 한국 지자체들의 관심은 어느 수준인가요?

    2025년 9월 경기도의회 정담회에 초청받은 것이 상징적 출발이었습니다. 경남도의회도 2025년 5월 외국인 간병인 비자 신설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고, 전국적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공직자였을 때는 정책을 설계하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현장 데이터와 검증된 모델을 갖고 정책 설계를 돕는 역할이 됐습니다. 지방정부들이 저를 찾는 건 ‘이론이 아닌 실제 작동하는 사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유학 연계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2025년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5만 3천 명으로 전년 대비 21%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수도권 쏠림이 심하고, 지방대학들은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의 접근은 명확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먼저 충분히 한국어를 가르치고, 학업 역량이 검증된 학생들을 한국 지방대학과 연계하는 것입니다. 마카라 UI가 현지 교육을, 글로벌기타가 한국 측 대학 연계를 맡습니다. 중도 탈락이나 불법체류 같은 부작용 없이, 대학도 학생도 만족하는 구조입니다.

    ― 2026년 BIPA 과정 론칭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요?

    BIPA는 외국인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교육입니다. UI가 국가 공인 기관으로서 과정을 개설하고, 마카라 UI 아카데미가 운영을 지원합니다.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제조업에서 디지털·바이오까지 확대되면서 현지 언어 교육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계약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간병인 교육, TOPIK 센터, 유학 연계, BIPA—이 네 축이 완성되면 진정한 의미의 한국-인도네시아 양방향 교육 플랫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