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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 파산’…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간병 파산(看病破産)’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일상어가 됐습니다. 하루 12만~15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 구해도 구해지지 않는 인력, 그리고 가족이 직장을 포기해야만 버틸 수 있는 현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대한민국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84만 명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습니다. 공식적인 초고령사회입니다. 그런데 이를 감당할 인프라는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는 현실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2024년 기준 병원 간병서비스의 월평균 비용은 약 370만 원입니다. 이는 고령 가구 중위소득 224만 원의 1.7배에 해당합니다. 간병비를 낼 능력이 없어 가족이 직접 간병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고, 그 결과 일손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인력 문제입니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돌봄서비스직 인력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 명에서 2032년에는 38만~71만 명, 2042년에는 무려 61만~155만 명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2023년 보건의료노조 조사에서 간병 경험자의 96%가 '간병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습니다. 요양병원 현장에서는 간병인 1명이 환자 8~9명을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간병인에 대한 법적 자격 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아,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합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간병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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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범사업은 왜 충분하지 않은가
보건복지부는 2024년 7월부터 전국 10개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27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장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2024년 말 기준 신청자 중 실제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63.7%에 그쳤습니다. 준비 부족, 복잡한 판정 절차, 관리 부담이 걸림돌입니다.
현재 외국인이 간병 업무에 합법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비자는 방문취업(H-2)과 재외동포(F-4)로 한정돼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 동포에 의존해 온 구조인데, 중국 내 임금 상승과 양국 소득 격차 축소로 이마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남도의회가 2025년 5월 발의한 '외국인 간병인 비자 신설 촉구 대정부 건의안'이 상징하듯, 지방정부에서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간병 인력 수를 늘리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한계를 가진다.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인력을 보충하되, 공인된 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수급·관리해야 한다.” — 대한의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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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답을 찾았다
일본은 한국보다 약 15~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들도 동일한 간병 인력 위기를 겪었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다층적인 해법을 완성했습니다. 일본의 외국인 간병 인력 도입 채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경제연대협정(EPA) ▲개호 재류자격 ▲기능실습 ▲특정기능1호 비자입니다. 현재 이 제도들을 통해 약 4만 명의 외국인 간병 인력이 일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 도입된 ‘특정기능(特定技能)’ 비자의 핵심 원칙은 ‘교육 선행 후 입국’입니다. 자국에서 일본어 시험, 간병 기능 평가 시험, 간병 일본어 평가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만 입국이 허용됩니다. 단순 노동력이 아닌 ‘검증된 전문 인력’을 선별하는 구조입니다. 2024년 6월 기준 일본 요양서비스업의 구인 배수는 무려 4.79로, 사무직(0.87)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수요는 폭발적인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인 만큼, 일본 정부는 외국인 간병인이 활동할 수 있는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EPA를 체결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출신의 개호복지사 후보자들은 일본 개호시설에서 취업·연수를 하면서 국가자격을 취득합니다. 주목할 사실은, 2021년 개호복지사 시험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후보자들이 전체 응시자 합격률(72.3%)과 유사한 수준의 성과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외국인 간병인 도입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일본의 현장 데이터는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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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가 '간병 인력의 최적 공급국'이 될 수 있는 이유
인도네시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간병 인력 공급국입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생산가능인구로 진입하는 인구 보너스의 한가운데 있으며, 직업계 고등학교(SMK)와 대학 졸업자 중 상당수가 국내 노동시장에 흡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강한 취업 의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화적 측면도 중요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노인에 대한 공경심과 돌봄 의식이 깊습니다. 일본 현장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간병인들이 ‘친절함, 인내심, 적응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돌봄 문화와도 접점이 많습니다. 가족 중심의 따뜻한 돌봄을 중시하는 인도네시아인의 정서는 한국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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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카라 UI 아카데미, 명문대의 공신력으로 만드는 검증된 인력
저는 현재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niversitas Indonesia·UI) 법인 산하 마카라 UI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UI는 QS 세계대학 순위 인도네시아 1위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최고 명문 국립대입니다. 마카라 UI 아카데미는 이 대학 간호학부(FIK-UI)의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수료생에게는 마카라 UI 아카데미, UI 간호대학, 인도네시아 보건부 세 곳의 공동 인증서가 발급됩니다.
저는 공직 시절 한국폴리텍 1대학장으로 재직하며 직업교육의 핵심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임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간병 현장이 요구하는 역량 수준과 인도네시아 보건 계열 고졸자의 역량 차이를 분석하여 20개 모듈 커리큘럼을 설계했습니다. 감정 읽기, 완화 돌봄, 응급 판단, 가족 소통 능력이 모두 포함된 종합 과정입니다.
마카라 UI 아카데미는 이미 일본에 간병 인력을 파견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인도네시아 한국교육원 운영 자문 기관으로 지정돼 있으며, 2년여의 한국어 교육 운영을 통해 IBT 토픽 공인 센터로도 지정됐습니다. 단순한 직업학교가 아닌, 국가 공신력이 보증하는 종합 교육 플랫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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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지금 해야 할 두 가지
저는 공직 시절 정책의 언어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하지만 공직을 마치고 인도네시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들고, 운영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고서가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는 해법을 빠르게 도입하는 용기라는 것입니다.
첫째, 검증된 해외 교육 기관을 통한 체계적인 인력 양성입니다. 일본이 EPA를 통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과 협력했듯이, 한국도 국가 공신력을 갖춘 해외 교육 기관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어야 합니다. '교육 선행 후 입국' 원칙은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둘째, 비자 제도의 정비입니다. 경남도의회, 경기도의회 등 여러 지방정부가 외국인 간병인 전용 비자 신설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특정활동(E-7) 비자 내 요양보호사 직종을 신설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습니다. 속도가 문제입니다. 일본은 이 두 가지를 10년 전에 완성했습니다. 한국도 할 수 있습니다. 골든타임은 지금입니다.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 ‘오늘 간병인이 왔는데, 정말 우리 엄마를 사람으로 대해줬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 정봉협 마카라 UI 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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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간병 위기의 해법, 일본이 이미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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