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의 우리 아이, 이슈&저널] 부모의 문해력은 괜찮나요?
서민수 경찰관
기사입력 2026.03.18 09:00
  • 최근 한 언론사가 입수한 2024년 한 지역 교육청의 ‘문해력 검사’ 보고서를 보면, 초등학생과 중학생 10명 중 9명이 교과서 내용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숏폼(짧은 영상)에 중독된 학생일수록 어휘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확인됐죠. 특히, 중학생의 문해력 자가 진단에서는 10명 중 8명이 “독서보다 유튜브·쇼츠에 몰두한다”라고 답했고, 10명 중 5명은 “두꺼운 책이나 긴 글에 일단 거부감이 든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안 읽는 세대’가 아니라 ‘못 읽는 세대’로 변했습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실시간 검색어’, 이른바 ‘실검’이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2005년 시작해 2021년 종료된 이 서비스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체온계 같은 존재였습니다. 매일 연구 소재를 찾는 처지에서 실검은 사회적 이슈와 흐름을 읽기에 꽤 유용한 도구였죠.

    2021년 7월, 실검 1위를 차지한 단어 하나가 큰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바로 ‘사흘’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광복절이 일요일과 겹치면서 월요일을 대체 공휴일로 지정했고, 그 결과 연휴가 ‘사흘’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청소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번 연휴가 ‘4일’이라고 해석하면서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사흘은 3일이다”라는 주장과 “4일 아니냐”라는 반박이 이어지면서 온라인에서는 세대 간 문해력 논쟁이 벌어졌죠.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한국 사회에는 청소년 문해력 저하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적 논쟁으로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OECD가 실시하는 ‘국제 학업 성취도 조사(PISA)’에서도 한국 청소년의 읽기 능력은 예전보다 하락하는 흐름이 확인됐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한 교사는 이런 ‘웃픈’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넌 너무 고지식해.”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네, 제가 좀 똑똑하긴 하죠.”

    또 다른 학생에게 “넌 너무 이지적이야”라고 했더니 학생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쉬워 보이세요?”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는 금세 어긋나는 법입니다. 최근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숙제하는 데 누가 읽고 쓰나요”라는 말이 유행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챗지피티(Chat GPT)와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이라는 옵션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걸 당당하게 말하고 있죠. 

    문해력의 문제는 단순히 국어 성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소통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문해력의 문제는 과연 아이들만의 문제일까요. 몇 해 전 한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한 부모가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을 읽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왜 아이들에게 중국 음식을 먹이냐”라는 항의였습니다. 알고 보니 가정통신문에 적힌 ‘중식 제공’이라는 표현을 ‘점심 급식’이 아니라 ‘중국 음식’으로 오해했던 거죠. 웃어넘길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갈수록 학교 공지나 안내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뜻이겠죠.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영국의 시사 주간지 The Economist는 “성인들은 읽는 법을 잊고 있는가(Are adults forgetting how to read?)”라는 기사를 통해 성인 문해력 저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이 보도는 OECD 성인 역량 조사(PIAAC) 결과를 인용해 성인 5명 중 1명은 초등학생 수준의 읽기 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다음 세 가지 이유를 언급합니다. 첫째, 어른들이 더 이상 글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글을 영상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글을 읽지 않아도 일상이 유지되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즘 사람들의 하루는 긴 글보다 짧은 영상 콘텐츠로 채워집니다. 스마트폰과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Reading(읽기)보다 Watching(보기)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긴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결국 사용하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문해력의 문제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겪는 문제가 됩니다. 특히 문해력은 단순히 학업성취도로만 연결되는 능력이 아닙니다. 아이의 안전과도 깊이 연결된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메시지와 정보가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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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해력이 높은 아이는 이런 문장을 읽고 의심해야 할 메시지인지, 위험한 정보인지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문해력이 부족하면 사기성 메시지나 범죄성 콘텐츠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문해력이 높은 아이는 온라인에서 접하는 문장을 읽고 정보의 진위, 위험성, 폭력성을 구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문해력이 부족하면 사기 메시지나 범죄성 콘텐츠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아이의 문해력은 부모의 삶과도 연결됩니다. 지금 부모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문해력은 괜찮나요?” 이 질문에 선뜻 “괜찮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아이의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하나입니다. 부모가 먼저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The Economist는 성인 문해력 회복을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한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읽기 시작하라.” 문해력은 잊힌 능력이 아니라 녹슬어 가는 능력입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글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문해력은 결국 아이를 안전하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부모의 문해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