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의 우리 아이, 이슈&저널] 자녀의 방 ‘문짝’을 뜯어주세요
서민수 경찰관
기사입력 2026.03.04 09:00
  • 2025년 3월, 넷플릭스는 영국에서 제작한 청소년 범죄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공개했습니다. 공개 직후 이 작품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를 시청한 부모들은 한결같이 “끔찍하다(terrifying)”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드라마는 평범한 13세 소년이 같은 학교에 다니던 또래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화목했던 가족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극 중 살인의 동기는 소녀가 소년에게 ‘인셀(Ince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인셀(Incel)’은 ‘비자발적 순결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입니다. 쉽게 말해, 이성 관계 및 성적 경험이 없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일부 남성들이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한 문화에서 비롯된 표현이죠. 원래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말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에 대한 분노,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 공격적인 조롱과 결합하며 하나의 온라인 하위문화로 변질됐습니다.

    문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 단어가 훨씬 가볍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넌 인셀이야”라는 말은 듣기에는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넌 인기 없고, 매력 없고, 연애도 못 할 사람”이라는 낙인이나 모욕으로 작동하고 있죠.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셀 문화를 공유하거나 즐기는 청소년 집단이 점차 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이 표현을 단순한 유행어처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성(性), 관계, 서열, 조롱 문화가 뒤섞여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오늘날 자녀 세대에게 ‘성(性)’과 관련된 표현과 문화, 농담은 훨씬 개방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죠. 정작 문제는 부모가 이러한 문화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작품을 연출한 필립 바란티니(Philip Barantini)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갱단이나 흉기 범죄를 다룰 수도 있었지만, 최근 어린 청소년들의 범죄 뉴스를 보며 ‘아이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공간과 SNS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결코 강력 범죄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대사였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잖아. 아이가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았겠어.” 이 절규는 극적인 장치라기보다 최근 실제 부모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과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유사한 장면은 실제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5년에는 싱가포르에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아모스 이(Amos Yee) 소년이 있었고, 2024년에는 영국에서 르완다 이민 가정의 평범한 한 고등학생 루다쿠바나(Rudakubana)가 키즈클럽에서 무차별 살해 행각을 벌여 충격을 줬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모스 이 사건에서 그의 어머니 메리 토는 법정에서 “우리 아이는 착하고 순수했다. 하지만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라고 말해 부모의 양육 과정에서 자녀가 ‘사라지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걸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국내 연구에서도 이를 중요한 위험 지점으로 인식합니다. 아이가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부모와 학교의 관찰 영역 밖으로 벗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를 연구 과정에서 ‘투명 인간 효과(Invisible Man Effect)’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투명 인간 효과 때문에 최근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면, 가장 먼저 놀라는 사람이 부모님이고 다음으로 학교 선생님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님과 선생님이 봐왔던 착한 아이와 문제행동이 매칭되지 않아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의 디지털 활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다음 원칙부터 점검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가 스마트폰을 들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미 방문이 닫혀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열어두는 규칙을 고민해야 합니다. 자녀와의 갈등이 두렵다면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가정의 원칙’을 먼저 세우는 접근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다면 자녀가 집을 비웠을 때 문짝을 뜯는 방법까지도 고민해 주세요.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가시성(Visibility)’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물론 이 지점에서 자녀의 사생활 침해와 자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율성과 프라이버시 존중이 청소년 발달에 긍정적이라는 연구도 꽤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안전이 확보된 환경’입니다. 안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율성만 강조하는 것은 균형 잡힌 접근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디지털 기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의 정서·관계·가치관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는 강력한 환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최종 질문은 이렇습니다. “자녀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자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정 부분 개입할 것인가?”. 부모마다 선택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디지털 기기 사용 환경에 대한 원칙만큼은 분명해야 합니다. 자녀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공간, 가정에서 디지털 기기가 놓이는 위치, 이 모든 중심은 ‘거실’이 되어야 한다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만약 거실 중심 원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자녀의 방문은 언제든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고요. 분명한 건, 이것은 ‘통제’가 아니라 보호 체계이며, ‘불신’이 아니라 책임의 표현입니다. 

    연구자의 시각에서 볼 때, ‘소년의 시간’은 낯선 드라마 속 이야기라기보다 이미 우리 현실 가까이 와 있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공포나 불신을 기반으로 자녀를 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태도는 극단적인 감시도, 무조건적인 방임도 아닌 ‘신중한 관여’입니다. 자녀의 공간을 존중하되, 디지털 환경만큼은 예외 없이 안전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방문을 열어두는 문제 역시 처벌이나 강압이 아니라 가족 간 합의와 규칙의 형태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