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잘 읽는 아이들, ‘누가 말했는지’는 헷갈린다
권준혁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6.02.25 09:00
  • “다음 문장이 어떤 등장인물에게서 나온 대사인지 알겠니?”

    수업 중 던진 질문이었다. 평소대로 아이들이 곧바로 답을 찾아낼 것이라 생각했다. 독서를 꺼려하지 않고, 이야기의 내용도 제법 정확히 기억하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교실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은 책을 다시 펼쳐 들고도 선뜻 답하지 못했다. ‘누가 말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대사 주변에서 맴돌게 할 뿐이었다. 각자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천천히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스스로도 답답한지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답에 조금씩 접근해갈 때, 혹시나 못 알아차리고 지나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저학년 도서에서는 대개 “○○는 웃으면서 말했다.” “△△가 조용히 물었다.” 같은 문장이 먼저 등장하고, 그 뒤에 대사가 이어진다. 말의 주인이 친절하게 표기되어 있으니, 독자는 장면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도서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이런 안내 문장은 점차 줄어든다. 인용부호가 이어지고 대화가 빠르게 오가며, 화자를 직접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주는 표현(말했다/물었다/소리쳤다)은 적어진다. 작가는 독자에게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장면을 ‘구성’하도록 맡긴다. 그때부터 독서는 단순한 내용 이해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장면을 시각화하고 대화의 흐름을 추적하는 작업이 된다. 

    아이들이 어려워한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내용은 이해한다. 사건의 전개도 안다. 그런데 “이 대사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를 묻는 순간, 머릿속에서 인물들이 자리를 바꿔 앉아 버린다. 특히 등장인물이 둘 이상이고,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일수록 혼란은 커진다. 대화 자체는 생생한데 화자는 흐릿하다. 이것은 ‘독해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한 아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에 가깝다.

  •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첫째, 대사는 ‘눈에 잘 띄는 정보’인 반면, 화자는 ‘흩어져 있는 단서’를 모아야 한다. 인용부호 안 문장은 또렷하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대사 앞뒤의 행동, 시선, 감정, 사건 흐름을 종합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은 대화를 실제처럼 “말의 내용”으로만 듣는 경향이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까지는 잘 따라가도, ‘그 말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인지 논리적으로 고정하는 연습이 부족하다. 셋째, 익숙한 독서 습관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빠르게 읽고 큰 줄기를 잡는 데 능숙한 아이일수록, 화자가 누군지 확인을 위해 앞뒤 문장을 되돌아보는 일을 번거롭게 느낀다. 이해는 했는데, 확인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핵심은 ‘대사를 읽는 기술’을 따로 가르치는 데 있다. 대사는 감상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보를 찾는 단서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전략은 초등학교 수준에서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첫째, 대사 주변 2~3문장을 ‘의무적으로’ 함께 읽게 하기다. 화자는 대개 인용부호 바로 옆이 아니라 앞뒤에 숨어 있다. “그가 말했다” 같은 문장이 없으면, 인물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앉아 있었는지, 뛰었는지, 화가 났는지)를 먼저 찾게 한다. 아이들에게는 간단한 규칙이 효과적이다. ‘대사만 읽고 넘어가지 말고, 앞 문장 1개 + 뒤 문장 1개를 붙여 읽기.’

    둘째, 인물별 표시(색/기호)를 도입해 ‘말의 주인’을 고정하기다. 등장인물이 둘이라면 A는 파란색, B는 초록색처럼 약속을 만들고, 대사 옆에 동그라미나 별표로 화자를 표시하게 한다. 여러 색깔의 펜을 가지고 밑줄을 쳐보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번거로워 보이지만, 이 과정이 장면의 구조를 뇌에 각인시킨다. “누가 말했지?”를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말의 흐름을 지도처럼 그리는 작업이 된다.

    셋째, ‘대사—근거’ 짝짓기 활동을 한다. “이 말은 누가 했니?”에서 끝내지 않고 “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를 반드시 붙인다. 근거는 아주 단순해도 된다. “바로 전에 ○○가 화가 났다고 나와요.” “방금 ○○가 ‘미안해’라고 했잖아요.”처럼, 도서 안에서 근거 문장을 찾게 하는 것이 목표다. 화자 추론은 감이 아니라 근거에 기하여 판단하는 것이라는 감각을 심어준다.

    넷째, 역할극(낭독)으로 ‘목소리’를 만들어 주기다. 실제로 두 아이가 각 인물 역할을 맡아 읽게 하면, 대사의 온도와 리듬이 달라지고 화자가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특히 감정이 급변하는 장면은 몸으로 읽을 때 훨씬 선명해진다. 낭독 후에는 반드시 확인 질문을 덧붙인다. “지금 이 말은 누가 했지?” “왜 그렇게 읽었지?” 말의 주인과 말의 의도를 함께 묶어준다.

    다섯째, 작가의 ‘생략’을 설명해 주기다. 아이들은 종종 “왜 누가 말했는지 안 써요?”라고 묻는다. 이때 “작가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 장면을 스스로 떠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면,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독서 수준이 올라간다는 건 어려운 단어를 만난다는 뜻만이 아니다. 독자가 작가의 생략을 메우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지도는 단순히 ‘문제 풀이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화자를 추적하는 일은 결국 이야기의 윤곽을 더 정교하게 잡는 일이다. 누가 말했는지를 알면, 그 말이 왜 나왔는지(의도), 그 말이 어떤 관계에서 가능했는지(관계), 그 말이 이후 사건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인과)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즉, 대사 추적은 이야기 이해의 바닥을 단단히 다지는 작업이다.

    수업에서 아이들이 헤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고민한다. “이 정도는 그냥 읽다 보면 되지 않을까?” 혹은 “이 부분이 어려우면 책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아이들은 막연히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자신감을 잃는다. 반대로, 작은 규칙 하나와 근거 찾기 연습만 더해도 “아, 이렇게 보면 되는구나” 하고 빠르게 안정된다. 독서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어려운 책만이 아니라, ‘잘 읽는 방식’을 습득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일이다. 

    잘 읽는 아이들이 ‘누가 말했는지’에서 흔들리는 순간은, 독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신호일지 모른다. 이제부터는 글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면을 스스로 세우고, 목소리를 구분하고, 근거를 확인하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누가 말했는지 헷갈려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문턱이다.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우리는 대사 한 줄을 더 천천히, 더 정확하게 읽는 법을 함께 연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