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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세계백화점 폭파 안내’라는 협박 글이 올라왔습니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약 300만 명인 커뮤니티이다 보니 경찰 신고는 빗발쳤겠죠, 특히, 글 아래에는 ‘나도 내일 폭파’라는 댓글까지 달리면서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4천여 명의 고객들이 뛰쳐나왔고, 폭발물 수색을 위해 200명이 넘는 경찰·소방 인력이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1시간 반 동안의 수색 끝에 협박 글은 장난 글로 확인됐고, 범인은 한 중학생과 20대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황당한 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중학생은 범행 이유에 대해 “심심해서요”라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한 아이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는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많이 받았던 질문은 ‘공중 협박죄’였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허위 글을 올리면 반성문 몇 장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25년 3월, 형법 개정으로 ‘공중 협박죄’가 신설되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허위 글을 올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장난 글’이 더 이상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법입니다.
해외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2025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무장 남성에게 납치됐다”라는 허위신고 문자를 보냈다가 소년원에 수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이는 범인의 인상착의와 차량 정보까지 꾸며내며 신고를 이어갔지만, 대규모 수색에도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은 신고자의 위치를 추적해 허위신고임을 밝혀냈습니다. 이 아이 역시 SNS에서 본 ‘챌린지’가 재미있어서 장난치고 싶었다고 진술했죠.
부모님들은 “요즘 아이들이 참 심심해한다”라는 말에 공감하실까요. “스마트폰도 있고, SNS도 하고, 유튜브와 게임까지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왜 심심하죠?”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청소년을 조금이라도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요즘 아이들이야말로 ‘중독된 일상’ 속에서 가장 심심한 세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자극 환경을 지목합니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경험하다 보니, 더 새롭고 더 센 자극을 찾아 헤매는 현상, 이른바 ‘노벨티 신드롬(Novelty Syndrome)’에 빠지기 쉽다는 겁니다. 또, 최근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강한 자극에는 반응을 보이지만 일상적인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게 되는 이른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현상이 화제가 되면서 ‘청소년’과 ‘도파민’을 연결해 분석하는 연구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뇌 과학에서 말하는 ‘도파민(Dopamine)’은 뇌의 보상회로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쾌감과 동기, 목표 설정과 성취 의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집중력과 기억력 같은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청소년기에는 특히 중요한 물질이죠. 문제는 이 도파민이 적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학계는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뇌의 보상 체계가 무너지고, 그 결과 우울감, 무기력, 의욕 저하뿐 아니라 스마트폰, 게임, 도박 등 각종 중독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도파민 설정값을 과도하게 끌어올리는 주범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스마트폰’과 ‘SNS’를 지목합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같은 생각을 하게 됐고요. 특히,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하루는 마치 ‘중독 생활’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숏폼 영상, 자동 재생 콘텐츠, 게임의 연속 보상 구조는 아이들의 도파민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이렇게 되면 뇌는 기존 자극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한 자극과 더 새로운 경험을 요구하게 되겠죠. 실제로 공식 통계에서도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과 게임에 과의존을 보이고, 10명 중 9명은 숏폼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약물, 도박, 음란물 시청 같은 중독성 문제행동도 청소년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어, 도파민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양육 갈등의 영역이 아닙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24년 올해의 단어로 ‘Brain rot(뇌 썩음)’을, 2025년에는 ‘Rage bait(분노 유발)’를 선정했습니다. 두 단어는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SNS 자극이 뇌를 피로하게 만들고 다시 더 강한 분노 콘텐츠를 소비하게 하는 악순환 자체를 의미합니다. 스탠퍼드대의 애나 렘키(Anna Lembke) 교수는 ‘도파미네이션’이라는 책에서 스마트폰과 SNS는 중독을 전제로 설계됐으며, 이를 증명할 연구는 이미 충분하다고도 말합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자녀의 도파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가정에서부터 ‘도파민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역할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먼저 지역에 있는 ‘학부모 지원센터’나 ‘인터넷중독 예방 상담 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 관리 통합 지원센터’ 등을 직접 방문해 보거나 아니면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디지털 디톡스’ 정보를 수집해 주세요. 그다음 아이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작은 즐거움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거나 또, 평소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보이고 충동적인 행동이 잦아진다면 지역 센터를 찾아 자녀의 도파민 설정값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면, 현재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어떤 ‘즉각적 보상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살펴주세요. 즐겨 보는 숏폼 영상, 자동 재생 SNS, 유튜브, 게임의 연속 보상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하루 30분’, ‘타이머 켜고 보기’, ‘침대와 식탁에서는 사용 금지’처럼 구체적인 규칙을 세우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되도록 행동 변화가 가능한 것부터 대화해 주세요. 동시에 ‘즉각적 보상’에 맞설 수 있는 ‘느린 보상 경험’도 제공해 주세요. 저녁 식사 후 스마트폰 대신 퍼즐이나 레고를 해보거나, 악기 연습, 그림 그리기, 요리를 돕는 활동도 자녀의 도파민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이 단순한 행동 통제로 끝나지 않고 대화나 기록을 통해 그때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애나 램키 교수는 건강한 도파민 유지를 위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집 안에서는 이미 도파민 자극이 과도해 시작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파민 디톡스의 기본 원칙은 어쩌면 단순합니다. “집 밖이 답이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 가족만의 ‘디지털과 거리 두기’ 문화를 한 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서민수의 우리 아이, 이슈&저널] 자녀의 ‘도파민’ 설정값을 낮춰 주세요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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