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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명 강의실에서 마주한 현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딜레마가 있다.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지만, 어떤 학생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어 지루해하고, 어떤 학생은 기초가 부족해 따라오지 못한다.
간호학과에서 의학용어는 전공 진입을 위한 필수 관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 문과 출신 학생, 재수강생까지 학습자의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50명 이상 함께 듣는 강의에서 이들 모두에게 적절한 수준의 수업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강의 수준을 중간으로 맞추면 상위권은 시간 낭비를 하위권은 학습 포기를 경험한다.
“교수님, 저는 고등학교 때 생물을 안 배워서 의학용어가 너무 어려워요.”
“교수님, 이 내용은 고등학교 때 다 배웠는데 또 듣는 게 좀 지루해요.”
매 학기 반복되는 이 정반대의 하소연을 들으며, 솔직히 그동안은 중간 수준에 맞춰 가르치고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했다. 그런데 2025학년도 2학기, 한림대학교 에듀테크 소프트랩 사업의 일환으로 ‘AI코치헬스케어용어’와 ‘AI와수학활용하기’ 두 교과목을 프리윌린의 풀리캠퍼스 플랫폼을 활용해 운영하며, 이 오랜 고민에 대한 실질적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 기술이 아닌, 교육 철학의 문제
처음 AI 플랫폼 도입을 제안받았을 때 가장 경계했던 것은 기술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이었다. AI가 교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AI는 교수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자가 진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여야 한다.
이에 따라 ‘High-Tech(AI 기반 맞춤형 학습)’와 ‘High-Touch(교수자의 처방적 지도)’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설계했다. AI는 진단, 반복 연습, 즉각적 피드백을 담당하고, 교수자는 개념 설명, 학습 동기 부여, 정서적 지원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다.
실제 수업은 이렇게 운영했다. 매주 초에는 학생들이 풀리캠퍼스에서 사전평가를 실시해 현재 수준을 진단한다. 시스템은 이를 바탕으로, 자동으로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Cardio-(심장)’와 관련된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어근 분석부터 시작하는 기초 콘텐츠를 제시해 줬으며, 이미 이해한 학생에게는 ‘Cardiomyopathy(심근병증)’ 같은 복합 용어 등 고난도 용어를 학습하도록 했다.
대면 수업에서는 AI 데이터 대시보드를 통해 분석된 학생들이 공통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개별적인 학습의 애로사항을 청취하여 학습 동기를 촉진했다. 1주일 이상 접속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개별 연락과 상담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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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가 증명한 변화
계명문화대학교와 공동으로 운영한 ‘AI코치 헬스케어용어’ 교과목의 15주간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93명의 학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학습자 수준별로 차별화된 성장 패턴’이었다.
성적 상위 그룹은 평균 28.17점 향상되었으며 사후평가에서 44%가 만점을 받았다. 중위 그룹은 평균 25.27점 향상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학습 전 학생 간 편차(표준편차 15.10)가 학습 후(6.50)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AI 맞춤형 학습이 학습 격차 해소에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하위 그룹도 평균 22.04점 향상되었지만, 역 향상(성적이 오히려 하락) 사례가 4.9%로 높게 나타났다. 이 학생들 케이스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단순히 AI 시스템만 제공해서는 부족하며, 하위 학습자에게는 교수자의 적극적 개입이 더욱 중요함을 확인했다. 실제로 8주 차, 9주 차에 따로 불러서 1:1 튜터링과 학습 방법 코칭을 병행한 학생들의 성과가 더 좋았다.
성적 향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습 역량의 전방위적 성장이었다. ▲디지털 리터러시(5.35점↑) ▲자기주도학습능력(7.95점↑) ▲학습몰입(4.76점↑) ▲학업적 자기효능감(2.67점↑) 등 모든 영역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향상이 나타났다(p<.001).
◇ 교수자 역할의 재정의
풀리캠퍼스라는 AI 플랫폼을 활용하며 교수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체감했다. 과거에는 50명 학생 모두에게 같은 강의를 제공하며 체념했다면, 이제는 각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보며 ‘이 학생은 어디서 막혔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근거로 지도할 수 있게 됐다.
학생 1인당 평균 1062건의 문제를 풀이했고, 어떤 개념에서 정답률이 낮은지, 누가 1주일 이상 접속하지 않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관리의 편의성을 넘어 데이터에 기반한 교육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학생들의 변화였다. “저는 수학을 포기했었는데, 그래도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고 개념학습 영상을 통해 자세히 배우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틀린 문제를 바로 다시 풀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교수님이 제 학습 상황을 정확히 알고 계셔서 신기했어요.”라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 기술을 넘어 본질로
AI 기반 맞춤형 학습을 운영하며 깨달은 것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 개개인을 이해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성장을 지원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다만 과거에는 50명을 한 번에 가르치며 이러한 개별화가 불가능했다면, 이제 AI의 도움으로 가능해졌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학습 지원을 담당하고, 교수자는 창의적이고 정서적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하위권 학생 중 5%의 역 향상 사례가 보여주듯 플랫폼만 깔아놓고 “알아서 해”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데이터를 보고, 학생을 부르고, 상담하고, 독려하는 교수자의 적극적 개입이 오히려 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대학 기초교육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학습 격차, 낮은 학습 동기, 자기주도학습 능력 부족. 이러한 문제들의 해법을 AI 기반 맞춤형 학습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교육 철학과 교수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할 때, 우리는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학생이 성장하는 교육’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AI 대학 혁신과 풀리캠퍼스] 백석문화대 : AI 기반 맞춤형 학습, 대학 기초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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