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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이 문장을 새로 만들도록 지도해야 하는 경우를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면 학생들도 문제를 읽고, 답을 완성하려고 나름의 궁리를 한다.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 그때그때 적절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사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어휘의 뜻을 알고 있는데도, 막상 문장을 만들어야 할 때는 오리무중에 빠진 것처럼 유난히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흔히 “문장을 잘 써야 한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대부분 문법이나 맞춤법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문장력이란 단순히 올바른 문법 지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장은 사고의 형태이며, 그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바로 ‘활용’이다. 여기에 더해 그 활용을 풍성하게 체득하는 길은 독서다. 문법이 언어의 뼈대라면, 독서는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일이다.
활용은 독특한 문법 특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활용을 “동사, 형용사, 서술격 조사의 어간에 여러 가지 어미가 붙는 형태를 이르는데, 이로써 시제·서법 따위를 나타낸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다’가 ‘가고’, ‘갔다’, ‘가겠지’로 변할 때, 우리는 시간과 의지, 태도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단어의 형태 변화가 문장의 의미를 바꾸고, 의미의 미세한 차이가 사고의 흐름을 바꾼다. 이처럼 활용은 문장 구성의 핵심이자 사고의 형식이다.
우리가 문장을 겉핥기식으로 읽고 넘기다가 잘못 이해하는 일이 있다면, 대개는 그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변화 속에 담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의 결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휘력만큼이나, ‘활용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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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을 느끼는 감각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독서다. 다양한 문체와 표현을 접하며, 학생은 ‘문장 속의 활용’을 무의식적으로 익힌다. 예를 들어, “그는 웃었다.”와 “그는 웃고 있었다.”는 시제 차이 이상의 정서적 뉘앙스를 전달한다. 문법책에서는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지만, 문학작품에서는 독자가 그 차이를 ‘체험’한다. 문법의 규칙은 머리로 배우지만, 활용의 감각은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독서는 문장의 다양성을 체득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훈련이다.
글쓰기를 지도하며, 많이 읽은 학생이 문장을 상황에 따라 변형하여 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했다. 많이 읽은 학생은 활용의 변화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안다. ‘-지만’, ‘-는 데도’, ‘-으니까’ 같은 연결 어미가 문장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어떤 어미가 감정을 더 부드럽게 전달하는지 감으로 안다. 그 감각은 문법 교재가 아니라 수백 줄의 문장 속에서 몸에 밴 것이다. 문장은 읽은 만큼 유연해지고, 문체는 접한 만큼 넓어진다.
독서의 또 다른 힘은 활용의 문맥적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문법 공부에서는 형태 변화만 남지만, 책에서는 그 변화가 ‘상황’과 결합한다. 예컨대, 소설 속 인물이 “사랑했다”라고 말할 때, 그 어미 하나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거리까지 품는다. ‘사랑한다’와 ‘사랑했다’의 차이는 문법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언어의 결을 느끼는 훈련이 바로 독서다.
가끔 문제 해결 능력도 좋고, 성실한 학생이 지문을 잘못 해석하거나 어색한 문장을 쓰는 경우를 보게 될 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어휘는 많이 습득했지만, 활용을 느끼는 감각이 아직 형성 중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읽어보니 알겠다고 스스로 깨닫는 아이들도 많지만, 여러 번에 걸쳐 다시 읽어보는 일을 번거롭다고 여기는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해설을 보고는 이해가 잘 되니, 다음에 문장을 만들 때 자세히 보면 안 틀릴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국어 교육의 목표는 틀리지 않게 문장을 만드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즉 문법을 통해 사고의 틀을 세우고 독서를 통해 그 틀을 채우는 것이 진짜 언어 교육이다. 문장은 생각의 그릇이고, 활용은 그 그릇의 형태를 빚는 손이며, 독서는 그 손의 감각을 길러주는 경험이다.
활용을 아는 학생은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을 쓸 수 있고, 독서를 꾸준히 하는 학생은 ‘살아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다. 전자가 정확함이라면, 후자는 생동감이다. 정확한 문장 위에 생동감 있는 표현이 더해질 때, 언어는 사고를 확장 시키고 세상을 설득하는 힘을 가진다. 문법과 독서, 이 두 축이 함께할 때 비로소 학생의 언어는 깊이를 가진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언어는 사고를 확장시키고 세상을 설득하는 힘
- 고급 독서와 글쓰기로 업그레이드 원한다면 국어문법 ‘활용’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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