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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채점 결과가 공개되면서 영어영역 난이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은 3.11%로, 상대평가 기준 상위 4%보다도 낮은 결과다. 성취도 중심 평가라는 절대평가의 목적과 실제 성적 분포 간 격차가 드러나면서, 평가 체계의 안정성 및 제도 운용에 대한 불만이 수험생·학부모 단체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난이도 조절 미흡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오승걸 평가원장은 “영어영역이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는 난도를 목표로 했으나 일부 문항에서 기대했던 성취도 범위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설명하며, 절대평가 기조 자체는 유지하되 향후 세부 문항 난이도 조정과 출제 안정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올해는 영어뿐 아니라 국어 역시 고난도 출제로 확인되며, 상위권 학생들의 정시 전략 난도까지 동시에 상승한 상황이다. 특히 영어 반영 비율이 대학별로 크게 차이를 보이는 만큼, 정시 합격선 변동 폭과 지원자 이동 양상 등 실질 입시 영향은 전년도 대비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 영어 1등급 비율 3.11%… 상대평가 기준 4%보다도 낮아
2026학년도 수능 영어영역은 절대평가 체계가 적용되는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치며 최근 수년 중 가장 낮은 분포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절대평가 영어의 적정 난도는 1등급 6~8%대 안착으로 평가되지만, 올해 결과는 이 기준을 크게 하회한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원점수 기준 90점 이상을 받아 1등급을 취득한 수험생은 총 1만 5,154명으로, 상대평가 체계에서 상위 등급 비율로 간주되는 4% 기준치보다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영어 절대평가가 처음 도입된 2018학년도 수능 이후 최저치이자,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절대평가 전환 이후 영어 1등급 비율은 해마다 등락을 반복해왔다. 절대평가 이후 영어 1등급 비율은 ▲2018학년도 10.03% ▲2019학년도 5.30% ▲2020학년도 7.43% ▲2021학년도 12.66% ▲2022학년도 6.25% ▲2023학년도 7.83% ▲2024학년도 4.71% ▲2025학년도 6.22% ▲2026학년도 3.11%로 나타났다.
입시 업계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 난이도 조정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절대평가 체계의 난도 안정성 확보 과제로 해석하고 있다.
영어영역 절대평가 제도는 도입 당시, 과도한 변별력을 완화하고 사교육 부하 감소, 성취도 확인을 목표로 운영됐다. 하지만 올해처럼 1등급 비율이 급감할 경우, 변별 중심의 상대평가 체제와 유사한 부담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입시 업계는 “1등급 분포가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경우, 절대평가가 본래 지향한 성취도 판별 기능보다 변별력 강화 압력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다”며 “향후 표준 난도 범위 설정과 분포 관리 방식에 대한 제도적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 평가원 “절대평가 취지엔 공감, 다만 목표 난이도 달성엔 미흡”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 수능 영어 난도와 관련해 절대평가의 기본 취지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부 난도 조정 과정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승걸 평가원장은 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영어영역은 교육과정 성취도 평가라는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는 난도를 지향했으나, 일부 문항에서 의도했던 목표 수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설명은 영어 출제 과정에서 성취도 기준·평균 난도·점수 분포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절대평가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평가원은 난도 조정의 실패를 전면적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정답률 급락을 초래한 특정 유형 문항(예: 빈칸 추론)이 주된 조정 검토 대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평가원은 난이도 전체 재설계보다는 세부 문항 단계의 통제·조정 강화 필요성을 중심에 둔 개선 방침을 제시했다. 이는 절대평가 기조 유지와 함께 문항 조정을 정교화하겠다는 방향성을 내포한 것으로 해석된다.
◇ 수험생·학부모 “절대평가 취지 어긋나… 실질적 대책 마련하라”
채점 결과 공개 직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온라인 질의응답 게시판과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이번 수능은 난도 조절에 실패한 수능’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수시 최저학력 기준 여부가 영어 등급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난도 편차는 실질적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지난 4일 채점 결과 발표 이후, 현재까지 평가원 질의응답 게시판에는 20건이 넘는 항의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책임자 사퇴’와 더불어 ‘절대평가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학부모는 게시글을 통해 “평가원장의 ‘절대평가 취지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유감’이라는 말은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질책했다. 이어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였다면 1등급일 학생들이 사지로 내몰렸다”며 “재수학원 등 사교육과의 카르텔이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내년도 수능 영어영역의 1등급 비율을 6~10%로 맞추겠다는 발표는 평가원이 스스로 실책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번 수능 실책에 대해 책임지고, 아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수능 영어영역은 학교 교육과정 정상화를 목표로 지난 2018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됐다. 당초 등급별 성취 기준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별도의 사교육을 이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준비 가능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며 절대평가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평이다. 학생들은 수능 영어 등급을 잘 받기 위해 더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며, 이로 인한 교육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어영역이 최상위권을 가르는 수단으로만 이용되기도 한다. 특히 영어영역은 수시모집 최저학력 기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목으로, 난도가 높을 경우 최저학력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 2026 정시, 영어 등급 격차에 ‘쏠림·기피’ 뚜렷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에서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치며 절대평가 도입 이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6.22%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이로 인해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충족자가 크게 늘어 수시 이월 인원이 정시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상위권 내부에서 3등급대 비중이 확대되면서, 영어 등급 간 점수 차가 큰 대학을 기피하고 반영비율이 낮거나 격차가 작게 설정된 대학으로 지원이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번 영어 출제 결과가 정시 지원 구도 전체를 재편하는 메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종환 대치명인 입시센터장은 이번 영어 성적 결과를 두고 “올해 수험생들은 지원 전략을 세울 때 먼저 ‘내가 지원하는 대학이 1–2등급 차이를 핵심 변별 지점으로 놓는 대학인지, 아니면 2–3등급을 변별 구간으로 보는 대학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주요 대학들은 영어 반영 방식과 등급 간 점수 설정이 상이하다. 연세대학교는 영어 1·2등급 간 점수 차를 5점, 고려대학교는 3점, 서울대학교는 0.5점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종환 센터장은 “비슷한 상위권 대학군이라도 연세대의 등급 간 격차가 가장 커 부담이 높게 작용하는 반면, 고려대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올해 구조에서는 고려대 지원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는 1등급과 2등급 차가 미미한 데다가, 타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확보한 학생이 존재하는 만큼 영어 3등급까지도 실질 경쟁권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연세대 문과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가운데 유일하게 사회탐구 가산점을 적용한다. 여기에 영어 등급 간 격차까지 결합돼, 문과 지원자층이 좁게 형성되는 소위 ‘문과 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과거 영어 난도가 높았던 연도에는 연세대 문과가 예외적으로 합격선 변화를 겪은 사례도 있다. 이 센터장은 “올해는 영어 1등급 자체가 적고 사탐 가산점까지 적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세대 문과는 정시 커트라인 변동 폭이 가장 클 것”이라며 “최종 원서 마감일까지 눈치 싸움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중상위권 대학 역시 등급대 별 지원층이 명확하게 나뉠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동국대는 영어 2·3·4등급 대가 모두 포진할 가능성이 높은 다층 경쟁 구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경희대는 2·3등급 간 점수 차가 적어 해당 등급 대 대거 유입 전망됐다.
또한, 서강대는 영어 1·2등급 비중 감소로 1·2·3등급 동시 경쟁 구도가 예상된다. 서울시립대는 등록금 약 120만 원 수준과 장학 혜택 확대로 최근 합격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일부 학과는 이미 경희대 일부 학과보다 합격선이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숙명여대는 2·3등급 중심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성균관대는 수능 이후 영어 등급별 변환 표준점수를 별도로 발표하는 대학이다. 2024학년도 영어 1등급 비율이 4.77%에 그쳤을 때, 1–2등급 점수를 동일 적용했으며, 2025학년도에는 영어 1등급 비율이 6.2%로 상승하면서 점수 차가 재설정됐다.
올해처럼 1등급 비율이 다시 낮아지면, 1·2등급 동일 점수 적용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수험생 전략은 변환 점수표 발표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센터장은 “의학계열과 최상위권은 국어와 영어가 변별 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중상위권은 여전히 국어·수학·영어의 조합으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면서 “더불어 올해 정시는 영어 등급이 아니라 ‘어느 구간에서 점수가 벌어지는가’가 대학 선택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영어 1등급 급감했지만… 정시 지원 변수는 제한적
영어영역 성적 분포가 유례없이 출렁였음에도 정시 지원 전략에서는 과도한 불안이 필요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됏다. 대학별 반영 비율과 등급 간 점수 차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영어 난도 변화가 합격선 전반을 뒤흔드는 ‘주요 변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 역시 이번 수능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수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보다는 희망 대학이 영어영역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등급별 점수 차가 어느 정도인지 등 타 과목 성적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유성룡 소장은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을 7~8%대로 출제하겠다고 한 교육부의 발표에서 크게 벗어나며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면서 “많은 수험생이 영어영역을 최저 충족의 기준으로 삼고 대비해 왔기 때문에, 1등급의 비율이 적어짐에 따라 최저를 충족하지 못해 대학에 불합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정시 모집 지원 전략을 세우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내세웠다.
유 소장은 “정시 모집에서 대학들이 수능시험을 반영할 때 영어영역뿐 아니라 국어·수학·탐구 영역을 함께 합산해 반영하기 때문에 정시 지원 전략을 세우는 수험생들은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어영역은 등급을 점수로 환산해 반영하는데, 1등급과 2등급의 점수 차가 크지 않고, 대학에 따라 가산점 또는 감점으로 반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년도 합격생 수능 성적 결과 참고 시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유성룡 소장은 “정시 지원 전략에 참고하게 되는 ‘어디가’의 합격자 성적 결과를 확인할 때, 전년도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수험생들은 과년도 입시 결과를 참조할 때 등급별 누적 비율과 인원을 참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2026학년도 수능시험 영어영역 응시 인원은 48만7941명으로, 지난해 45만9352명이었던 것보다 2만8589명이 증원됐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덧붙였다.
◇ 단순 난이도 논란 넘어 ‘출제 안정성’이 핵심
2026학년도 수능 영어 결과는 단순 난도 논란을 넘어, 영어영역 절대평가 운영에 있어 안정성·일관성 확보라는 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평가원이 지난 4일 브리핑을 통해 난도 수준 검토 및 조정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2027학년도 수능에서는 문항 구성 안정성 강화가 주요 정책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난이도 조정 과정의 정확성·예측 가능성·소통 체계 보완이 요구된다. 시험 하나의 결과로 절대평가 전체를 성급히 평가하기보다는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 흐름 속에서 난도 관리 역량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입시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번 2026학년도 수능은 결과적으로 절대평가 안정화 정책이 한 단계 진화해야 할 시점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난이도 조정 실패라는 단일 차원을 넘어 향후 절대평가 운영 원칙과 난이도 조정 방식 논의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어 1등급 3.1%, 절대평가 신뢰 흔들… 대학별 등급 반영 방식이 승부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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