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스의 EDU톡] 5등급제 시대, 왜 유창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가
김지혜 닥터윤 플래너스어학원 불당본원 원장
기사입력 2025.12.04 09:00
  • 김지혜 닥터윤 플래너스어학원 불당본원 원장.
    ▲ 김지혜 닥터윤 플래너스어학원 불당본원 원장.

    수능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이것이다. 과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오롯이 수능 준비에만 몰두하며 보내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많은 학생이 그 길이 가장 효율적이며 필수적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변화된 교육 방향성을 살펴보면, 이제는 단순한 점수 경쟁이 아닌 학생들의 실제 역량을 평가하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화두는 단연 내신 5등급제다. 기존의 상대평가·9등급제에서는 지필고사 비중이 높아 ‘오답을 만들지 않는 능력’, 즉 정확성이 등급 관리의 주요 기준이었다. 그러나 5등급제로 전환된 후 등급 구간이 넓어지면서 9등급 체제에서 2등급이었던 학생들까지 1등급을 받게 됨에 따라 기존 방식만으로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평가의 기준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중·고교 영어 교육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서술형 평가 확대’ ‘발표·토론 중심 수행평가 증가’ ‘말하기 중심 활동 강화’를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유창성은 더 이상 부가적인 능력이 아닌 성적을 직접 좌우하는 중심 요소가 됐다. 특히 영어의 유창성을 확인하는 수행평가에서는 Writing에서의 주제의 적합성, 아이디어 구성 능력 및 문장의 논리적 흐름 과 Speaking에서의 말을 끊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능력, 정확한 의미 전달 등이 평가의 핵심 요소이다. 물론 일부 학교는 여전히 문법적 정확성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문법이 조금 틀리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쓰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확성을 유지하며 어떻게 유창성을 키울 수 있을까?

    ◇ 언어학적으로 검증된 Paul Nation의 fluency development routine(FDR)을 기반으로 한 유창성 향상을 위한 로드맵

    1. 다양한 콘텐츠로 체화(Input) 하기 : Shadowing

    모국어 습득 방식을 떠올려 보라. 어린아이가 말을 내뱉기까지는 부모의 말을 한 단어, 한 문장 따라하며 몸으로 익히는 ‘체화의 시기’를 반드시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외국어 학습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된다. 즉, 부모의 언어 입력(Input)을 대신해 줄 다양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외국어를 익히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언제·어디에서나·저 비용으로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영어 콘텐츠를 활용하려면 DVD를 구입하거나 원서를 직접 구매해야 했지만, 이제는 여러 OTT 플랫폼과 온라인 라이브러리를 통해 관심 분야의 영어 자료를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이처럼 접근성이 높아진 디지털 환경 덕분에 학생들은 이제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주제의 콘텐츠를 선택해 쉐도잉(shadowing)을 반복하며 영어를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다. 영화, 다큐멘터리, 강연 영상, 북리딩 콘텐츠처럼 학생들이 실제로 관심을 갖는 주제를 다룬 자료들은 집중도를 높여 주고, 원어민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 말하는 과정(Shadowing)은 자연스러운 억양·리듬·속도를 익히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꾸준한 쉐도잉은 단순한 듣기를 넘어서 따라 말하기까지 병행하는 듣기-말하기 통합 훈련으로, 문장 구조와 표현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몸에 스며들어 유창성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학습 방식은 꾸준히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하게 하고, 학생들이 말하기 평가나 수행평가에서 보다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는 발화를 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줄 것이다.

    2. 체화(Input)를 발화(Output)로 바꾸기 : Retelling

    ‘Retelling’이란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본 뒤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표현으로 재구성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말한다. 리텔링은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해 → 정리 → 재구성 → 말하기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언어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원어민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 말하며 소리를 익히는 과정을 거친 뒤, 이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풀어 설명하는 리텔링은 영어를 ‘이해하는 언어’에서 ‘즉시 말해내는 언어’로 전환시키는 핵심 훈련이다.

    결국 영어 말하기는 한국어로 생각한 뒤 영어로 번역해 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곧바로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리텔링은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유창성을 위한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며 학생들이 실제 말하기 상황에서도 막힘 없이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3. 문장 확장 : Sentence Expansion

    자신만의 표현으로 문장을 다시 말하다 보면 한정된 어휘 사용, 단순한 문장의 반복, 아이디어 연결의 부족 등 여러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문장 확장 훈련이다. 문장을 확장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문장을 길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덧붙이고, 예시를 추가하고, 생각을 연결하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다양한 연결사를 활용해 관계하는 문장들을 붙이면 문장 구조가 훨씬 더 풍부해진다. 예를 들어 “Teenagers have many responsibilities.”라는 단답형 문장 대신, 예시를 덧붙여 “Teenagers have many responsibilities, for example, doing homework and helping their families.”와 같이 말하면 내용이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이러한 문장 확장 훈련은 학생들이 단순한 말하기를 넘어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발화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더 나아가 문장 확장은 생각의 구조를 다듬고 논리적 흐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때문에, 말하기뿐만 아니라 쓰기 능력 향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능력은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즉, 문장 확장은 단순한 언어 기술이 아니라 사고력과 표현력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5등급제 시대의 새로운 목표 : 정확성과 유창성의 균형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교육 방향성의 변화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결국 학교 현장의 학생들일 것이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평가 방식과 교육 정책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영어 교육의 핵심 목표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 목표는 정확성을 기반으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면서도 유창성을 함께 길러 가는 학습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정확성은 지필평가에서 직접적인 점수 향상으로 이어지고, 유창성은 글쓰기와 발표형 수행평가에서 학생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영어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정확성과 유창성의 균형, 그리고 이 둘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학습이 앞으로의 영어 학습과 평가에서 있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