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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이 끝났다. 올해 수능은 불수능이고, 국어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국어의 경우 표준점수가 작년보다 5점 정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1교시 국어’로 멘붕을 겪은 학생들은 어려운 지문을 독해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부족함을 하소연했다. 국어에 할당된 시간은 ‘80분’이다. 80분 동안 총 45문항을 풀어야 한다. 1분~2분당 1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독서영역의 4개의 지문을 읽고 해석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독서를 통해 배경지식을 쌓아놓은 수험생은 텍스트를 보고 금방 어떤 내용인지를 파악한 후, 지시문을 보고 답을 찾아내는 문해력과 독해력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을 것이다. 시간이 부족해 당황하는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2022년 학교도서관 저널에 실린 <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해력>(박찬선)은 시험을 볼 때 시간에 쫓기는 경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느린 학습자’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문해력은 일종의 사고력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궁극적으로는 글쓰기로 표현되며 나아가 주변에 있는 각종 글과 기호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학습과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 범주가 확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느린 학습자’ 즉, 생각이 느리고 학습이 더뎌 한 번에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별도의 지도를 받지 않는 한 문해력을 스스로 갖추기가 매우 어렵다. 느린 학습자들은 스스로 배우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문해력을 갖추는 데 또래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느린 학습자에게 문해 지도가 중요한 이유는 이 아이들이 문해력 부족이라는 큰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느린 학습자도 다른 친구들처럼 열심히, 마음껏 공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글을 소리 내어 읽어도 하나하나의 낱말들이 의미있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문단으로 구성된 글들이 도무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정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해력의 벽은 혼자 힘으로는 넘기 힘든 커다란 장애물과 같다. 이 벽을 제대로 넘지 못하면 더 나은 학습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인지적인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해력을 향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다. 느린 학습자에게 글쓰기는 특히 유의미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느린 학습자들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소근육의 협응력도 약해 글씨 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쓰기는 머릿속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으로, 말보다 속도가 느려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하게 만든다. 따라서 꾸준한 글쓰기 훈련을 통해 느린 학습자가 생각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느린 학습자들에게는 오히려 말보다 글이 쉬운 면이 있다. 글쓰기를 하면 느린 학습자들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좀 더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느린 아이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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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말하기는 생각과 말하기가 함께 일어나는 일종의 동시처리과정이다. 하지만 느린 학습자에게는 생각하는 것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데, 말하기를 동시에 하라는 것은 정말 버거운 일이다. 글쓰기는 생각할 시간을 먼저 주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들이 생각하고 글로 정리한 다음, 말하기를 해보는 과정을 연습한다면 도움이 된다. 반복적인 글쓰기 훈련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쓰지 않아도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둘째, 문장 표현의 부족한 점을 고칠 수 있다. 느린 학습자들은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거나 앞뒤 문장이 연결되지 않는다. 적절하지 않은 조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나 서술어 등의 문법적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어색한 부분을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각 문장 요소의 쓰임을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하면 점차 올바른 문장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글로 정확한 문장을 쓰는 훈련은 일상생활에서도 정확한 표현을 구사하고 맥락에 맞게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쓰기 능력이 말하기 능력으로 확장되고 언어표현 전반에 걸쳐 어색함이 사라지는 효과가 발현되는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의 좋은 표현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내용만 조금 바꿔서 쓰는 연습을 하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지 학습할 수 있다. 글의 구조도 배우고 문장 표현 방법도 배우게 된다. 주제나 글의 흐름도 모방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사실 느린 학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좋은 글을 보고 그대로 적어보는 필사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좋은 언어 감각을 보고 듣고 배우는 일종의 ‘모방하기’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생각하는 양이 많아진다. 느린 학습자들은 처음에는 한 줄 쓰기도 힘들어한다. 한 줄인지 두 줄인지 모를 애매한 길이의 글을 두서없이 써놓곤 한다. 그러나 힘들어도 자기 생각을 자꾸 써보도록 하면 어느새 10줄 이상의 긴 글을 거뜬하게 쓸 수 있게 된다. 느린 학습자들이 글을 길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을 길게 할 수 있다는 말이며, 그만큼 생각하는 양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글을 읽으면서도 중요한 일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으며, 글 내용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책만 펼치면 한숨 쉬거나 기가 죽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읽기를 친숙하게 느끼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은 생각이 느린 아이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학생이 느리면 가르치는 사람도, 응원해 주는 사람도 발걸음을 맞춰 같은 속도로 천천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새 배움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조금씩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마침내 느린 학습자들 역시 진정한 독립된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이번 수능에서 ‘법 해석 방법과 보증계약’을 주제로 한 사회 주체 통합지문, ‘열팽창 현상과 엑추에이터 설계’를 내용으로 하는 과학기술 지문, ‘인격의 동일성에 관한 다양한 관점“ 인문지문이 출제되었는데, 이러한 지문을 접한 느린 학습자들의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시기에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글쓰기’ 방법을 통해 해결해나가길 기대해 본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느린 학습자’에게 수능 국어 45문항을 80분에 풀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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