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두 번째 청춘을 시작합시다] 우리 사회는 함께 늙을 준비가 되었는가?
조수현 샛별학교 대표
기사입력 2025.11.20 09:00
  • 청년 교사·졸업생·가족 등 150여 명 참석한 2025학년도 서울샛별학교 졸업식
현장. / 서울샛별학교 제공.
    ▲ 청년 교사·졸업생·가족 등 150여 명 참석한 2025학년도 서울샛별학교 졸업식 현장. / 서울샛별학교 제공.

    ◇ 시니어 교육, 공존을 위한 사회 기반

    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국민이 오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축복이지만, 누구도 “어떻게 함께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고령화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가를 가르는 공동의 과제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니어 교육을 더 이상 복지나 시혜의 영역으로 둘 수 없습니다. 시니어교육은 미래 사회를 위한 공동 기반(infrastructure) 이기 때문입니다.

    초고령사회에서는 단순히 장년층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관점을 넘어서, 그들이 미래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기여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 세대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함께 시니어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2025 고령자 통계. / 국가데이터처 제공.
    ▲ 2025 고령자 통계. / 국가데이터처 제공.

    ◇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워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된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이 지난 9월에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 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UN(국제연합)은 고령 인구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어가면 고령사회, 그리고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사회로 규정합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뒤 17년이 지난 2017년에 고령사회가 되었고, 이후 다시 8년 만에 초고령사회 단계에 올라섰습니다. 이는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고 평가됐던 OECD 국가인 일본·캐나다가 각각 10년, 14년이 걸렸던 점과 비교해도 한국의 변화가 매우 급격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고령사회’라는 말은 숫자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세대와 살아갈 세대가 공존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산업화와 압축성장의 시대를 살았지만, 평균수명이 90세를 향하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삶의 구조가 요구됩니다.

    단절·은퇴·고립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노년 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30년 가까운 노년기를 어떻게 채울지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지역과 국가의 활력이 달라집니다.

    결국, ‘함께 늙어가는 법’을 고민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미래 사회의 생존전략입니다.

    ◇ 2026년 시니어 정책의 현주소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6년 예산안에서도 현재 노년 정책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체부의 ‘어르신 스포츠 강좌 프로그램 지원’ 사업은 65세 이상 어르신 100만 명에게 스포츠 강좌를 제공하겠다며 75억 원을 배정했습니다. 신체 활동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규모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100만 명에게 나누어 적용될 때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커 보이지만, 100만 명에게 나누면 1인당 연간 750원, 한 달로 나누면 사실상 정책이라부르기 민망할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핵심 가치는 예산의 많고 적음보다, 정부가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다만 초고령사회가 본격화되는 지금, 노년 정책은 운동·건강 중심의 지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신체 활동은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축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디지털 소외, 사회적 고립, 지역사회 참여의 단절과 같은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확대가 아니라, 운동·교육·참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형 노년 정책’으로의 전환입니다. 디지털·문해·시민교육을 통해 시니어가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이 더해질 때, 비로소 ‘함께 늙어가는 사회’의 실질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 받는 청년 교사와 시니어 학생. / 서울샛별학교 제공.
    ▲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 받는 청년 교사와 시니어 학생. / 서울샛별학교 제공.

    ◇ ‘권리’를 넘어 미래의 열쇠로

    ‘배움’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지만, 초고령사회에서는 이 권리가 더욱 큰 의미를 갖습니다. 시니어 교육은 흔히 복지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청년 세대가 시니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세대 연대의식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의 시니어는 곧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며, 더 나은 노년기 모델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청년 세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니어와 청년이 같은 공간에서 배우고 가르치며 연결될 때, 디지털·언어·문화 역량을 가진 청년 세대와 경험·지혜·네트워크를 가진 시니어 세대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냅니다. 배움의 장은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는 가장 안전한 사회적 접점입니다. 교육을 매개로 하는 교류 공간이 열려 있기만 해도 오해와 갈등은 줄어들고,자연스럽게 세대 간 협력의 가능성이 확대됩니다.

    결국 시니어 교육을 지지하는 것은 현재를 위한 지원을 넘어, 미래의 나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지식과 경험이 자유롭게 흐르는 구조, 세대가 단절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서울샛별학교 2025학년도 졸업식에서 생애 첫 학사모를 쓴 시니어 학생들. / 서울샛별학교 제공.
    ▲ 서울샛별학교 2025학년도 졸업식에서 생애 첫 학사모를 쓴 시니어 학생들. / 서울샛별학교 제공.

    ◇ 샛별학교가 만든 5년의 변화, 그리고 다음 단계

    지난 5년간 서울샛별학교는 시니어·만학도·이주민 등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시민 300여 명이 다시 ‘학습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300명 이상의 청년 교사단이 참여해 세대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상호배움의 모델을 만들었고, 디지털 문해력과 검정고시 교육을 통해 누구나 배움의 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시니어 학습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병원을 예약하고, 손주와 소통하며, 지역 활동에 참여하는 변화는 교육이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배움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자존감은 다시 공동체 참여로 이어집니다.

    앞으로 샛별학교는 시니어 교육을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평생학습의 표준 모델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지역과 대학, 청년과 시니어가 함께 만드는 교육 생태계를 정착시키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며, 나아가 전국 단위의 맞춤형 시니어 교육 체계를 구축하려 합니다. 세대 간 지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누구나 언제든 ‘두 번째 청춘’을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샛별학교가 그리는 다음 5년의 비전입니다.

  • 환하게 웃는 청년 교사·졸업생 및 수료생·가족. / 서울샛별학교 제공.
    ▲ 환하게 웃는 청년 교사·졸업생 및 수료생·가족. / 서울샛별학교 제공.

    ◇ 함께 늙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 우리 모두의 ‘두 번째 청춘’을 위하여

    한국 사회는 ‘누가 늙어가는가’를 고민할 때를 지나, ‘어떻게 함께 늙어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시니어 교육은 그저 따뜻한 복지가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사회 인프라입니다.

    특히 지방소멸, 고독사, 사회적 배제 등 심화되는 사회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시니어 교육을 통해 전 세대의 공존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든 다시 능동적으로 배우고, 새롭게 연결되고, 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함께 늙어갈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두 번째 청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