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어려운 수능, 좌절보다는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길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기사입력 2025.11.19 09:00
  • 지난 주, 2026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난이도 높았던 수능 때문에 최저를 맞추지 못해 논술응시자도 전년 대비 뚝 떨어졌다고 한다. 논술전형은 대개 합격을 위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한다. 많은 학생이 1교시 국어문제를 풀면서 ‘망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올해 수능은 국어가 고난도로 출제됐고 절대평가인 영어 역시 어렵게 출제돼 학생들의 등급확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짧게는 3년, 길게는 초등시기부터 12년간 준비해온 노력에 비해, 어려운 수능으로 좌절감을 맛볼까 걱정이다.

    앞으로 수년 후에 수능을 보게 될 현재의 초등학생과 중학생 대부분은 위인전이나 동화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접했을 때는 김유신, 신사임당, 베토벤, 페스탈로치의 천재성이나 흥미로운 일화를 즐거워하며 읽었던 것 같다. 베토벤의 아버지가 신동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어린 베토벤을 혹독한 연습의 세계로 이끈 이야기라든지, 오성 이항복이 재치로 지켜낸 감나무 일화, 김유신의 여동생 ‘보희’가 부끄러움이 많아 ‘문희’가 대신 김춘추의 옷을 꿰매 줬다가 태종무열왕의 왕비 자리에 오른 이야기 같은 것들은 동화책만큼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이들과 책읽기, 글쓰기 수업을 하며 위인전들을 다시 읽었을 때는 다른 부분에 주목하게 됐다. 시각, 청각, 말하는 능력이 막힌 삼중고의 어려움을 겪고도 제 삶을 지켜낸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인생을 살았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 가난과 신분의 한계 앞에서 책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그의 곁을 벗들이 지켜주었다는 이덕무의 삶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조금 더 인생을 살아보니, 위인들이 겪은 고난들이 가벼이 여겨지지 않게 되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 위인들이 슬픔과 좌절과 고난을 묵묵히 겪어낸 이야기를 읽을 때면 마음에 힘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힘이 수업을 통해 만난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에게도 길러지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생겼다. 더욱이, 6년이라는 중·고등학교 기간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해내며 쉽지 않은 도전을 계속해야 하는데 크고 작은 실수, 좌절, 실패를 통해 단단해지는 학생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제공.
    ▲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제공.

    첫째, 모든 문제를 어른이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넘어지고 시행착오를 겪어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래끼리의 갈등이 있을 때 직접 나서서 해결해 준다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학습 계획을 다 세워주는 등 좌절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단단해질 시간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을 아이에게만 미루어두지 않되, 독립된 인격으로서 작은 좌절 앞에 서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앞날을 감당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둘째, 문제를 만났을 때 긍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연습’을 해보면 좋다. 코넬 대학의 앨리스 아이센 교수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둘 중 한 그룹에게는 5분 동안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를 보여주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논리적 사고를 자극하지만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수학적 내용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후 이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도록 했는데, 깔깔대며 즐겁게 코미디 영화를 본 그룹에서 더 빠른 시간 내에, 더 많은 비율로 문제를 푼 사람이 나타났다. 두 학생 그룹 사이에 지능, 학력 수준에 차이는 없었는데 다만 코미디 영화를 보며 잠시 웃고 긍정적 정서를 유발했다는 것이 큰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긍정적 정서는 사고의 유연성, 집중력, 기억력, 창의성을 가져온다는 것을 증명해 준 사례다.(김주환, <회복탄력성>, 위즈덤하우스 참고)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긍정적인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문제를 부드럽게 이해하고 극복해나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셋째, 놀고 싶은 마음을 견디고 노력하는 힘은 ‘자율성’과 ‘성장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힘들어도 참고 졸려도 참는 고통 속에서 중고등학교 6년을 버텨야 한다는 마음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더 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힘은 자율성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가는 삶, 자기가 하는 공부일 때 즐거움도 의미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나만의 속도를 찾을 때 비로소 자기 조절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비유법, 품사와 문장성분, 어휘력, 독해 습관, 글쓰기를 지도하는 일을 하면서 학생들이 세부 지식을 잘 습득하고 적용하는 것도 참 고맙고 기쁜 일이겠으나,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좌절을 딛고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면, 벅차게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난주 치러진 수능국어가 매우 어려워 수시지원 학생들의 경우 수능최저점수를 맞추지 못해 낙담한 학생들이 예년에 비해 매우 많은 만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늘 변화무쌍한 시험과 환경에서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잘 극복해나가는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