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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영화를 보고 나서, 소풍을 마친 뒤에, 그리고 게임을 하고 나서 등. 어느 장면에나 어울리는 대화다. 글쓴이 역시 위 대화를 자주 듣는다. 바로 첫 수업을 마친 아이와 대면하는 부모 사이에서 말이다.
재미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 찾아보니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나온다. 사실 요즘은 재미보다 더 센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도파민 터졌다!”
도파민은 쾌락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데, ‘도파민 터지다’는 이런 뜻에서 나온 신조어로 자극적이고 짜릿한 콘텐츠를 접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야말로 자극 추구, 재미 추구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현장 역시 이와 같은 파도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업에서는 어떤 재미를 추구해야 할까? 어떻게 재미를 추구해야 할까?
재미라고 해서 쇼츠를 볼 때의 즐거움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재미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는 무언가에 감동했을 때도 느끼고,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할 때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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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책 읽기와 글쓰기 수업 장면에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재미를 줄 것인가? 이야기책을 다룰 때 주로 감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편이 좋다. 학생들과 함께 인상적인 장면을 나누는 것이다. <긴긴밤> (문학동네, 2021)을 다루는 시간이었다. 각자 나만의 최고의 장면을 꼽아 발표하기로 하였다. 교사가 먼저
“여러분도 선생님이 똥 좋아하는 거 알지요? 선생님은 똥이 나오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K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은 죄암죄암, 발은 동동 구르며 “헉, 저도요, 선생님. 새끼 펭귄이 코뿔소를 지키려고 똥을 싸는 장면이에요. 좀 어이없고 웃긴데, 새끼 펭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어요.”라고 신이 나서는 자연스레 순서를 이어갔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다. K의 나눔에 다른 학생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는 가운데 자신만의 명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업 주제인 ‘연대’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 재미는 깨달음이다. 누구나 한 번쯤 끙끙 거리며 고민하던 문제를 무릎을 탁! 치며 해결하는 아주 시원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짜릿함이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돈 가스 안 먹는 아이> (책읽는달, 2018) 수업 시간이었다. 외국인과 우리나라 사람 사이에 문화가 달라서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을 나누기로 하였다. 교사의 예상과 달리 학생들이 말하기 어려워하여 방향을 바꾸어 교사의 경험을 퀴즈로 제시하였다.
“선생님이 인도에 갔을 때의 일이에요. 과일가게 아저씨에게 ‘비싸요, 깎아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하셨어요. 선생님은 또 계속 깎아달라고 하고요. 사실 이 장면에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하고 퀴즈를 냈다.
인도는 깎아주지 않는다, 선생님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등 다양한 유추를 하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교사가 답을 알려주었다.
“우리나라는 알겠다는 표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잖아요. 아저씨가 계속 ‘노 프라블럼’ 하셨거든요. 알고 보니 인도에서는 알겠다는 표시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었어요. 한마디로 선생님은 ‘계속 깎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아저씨는 계속 ‘알겠어요.’라고 하셨던 거예요. 아마 과일가게 아저씨도 ‘깎아주겠다고 했는데 계속 깎아달라고 하는 이상한 손님이네.’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박장대소했다. 아이들이 직접 정답을 맞히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유레카의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공명의 재미다. 뮤지컬 장면을 떠올려 보자. 뮤지컬 배우의 멋진 노래가 끝나면 잠시 동안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다. 배우와 관객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뮤지컬에서 멋진 음악이라는 텍스트와 배우의 노래라는 퍼포먼스가 공명을 일으켰다면 교실에서는 수업의 내용이라는 텍스트와 교사의 전달이라는 퍼포먼스가 공명을 만든다. 교사와 학습자 간 공명이 일어나려면 교사는 그만큼 수업을 철저히 준비하고, 음색, 표정, 몸짓 등도 훈련하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마셜 매클루언이 괜히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한 게 아니다.
아참,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는 감동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 공명의 순간에 교사 역시 희열을 느낀다. 물론 모든 수업에서 희열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바로 교사의 재미 아닐까.
[리딩엠의 독서논술] 수업은 한 편의 교양 오락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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