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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양보다 ‘생각하는 힘’이 중요한 시대다. 전 세계 160여 개국, 약 5900개 학교가 도입한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은 이제 한국 공교육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있다. 정답을 맞히는 학생보다 질문을 던지는 학생,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수업. IB가 그려온 변화의 흐름이 우리 교육 현장에도 퍼지고 있다.
최근 조선에듀는 국제 바칼로레아(IBO) 한국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홍정아 매니저를 만나, IB 교육의 철학과 프로그램 구조, 그리고 국내 확산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들을 들어봤다. 교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교육 현장을 지켜본 그는 “IB는 아이에게 정답을 주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라며 “배움의 주체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교실이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다.
─ 국제 바칼로레아(IB)는 어떤 교육 체계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IB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 IBO가 개발하고 운영하는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를 넘어 ‘학생이 스스로 배우는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알려져 있죠.
IB의 핵심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배우는 과정에 있어요. 그래서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호기심을 이끌어주는 촉진자(facilitator)로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역할을 합니다.
현재 IB는 만 3세부터 19세까지 네 가지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전 세계 160여 개국, 약 5900개 학교에서 200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IB 과정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만큼 IB는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교육이자, ‘미래형 학습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IB 교육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나 교육 목표는 무엇입니까?
IB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학생의 주도성이에요.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고,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힘을 기르는 거죠. 그래서 비판적 사고력, 탐구력, 그리고 국제적 감각을 함께 키우는 걸 교육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IB는 학생을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로 봐요. 그래서 교사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IB가 추구하는 목표는 지식을 많이 아는 학생이 아니라, 세상을 성찰적으로 바라보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전인적 인재를 길러내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이 단단한 자기 확신을 갖고, 동시에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IB의 교육 철학입니다.
─ IB는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프로그램의 특징과 연계 구조를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IB는 학생의 성장 단계를 따라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어요. 유아기부터 고등까지, 마치 하나의 긴 여정처럼 이어지죠. 이 네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학생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관을 넓혀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먼저 PYP(Primary Years Programme)는 3세에서 12세, 초등 수준의 과정이에요. 이 시기의 핵심은 ‘전인교육’이에요.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배움을 이끌어가면서, 생각하는 힘과 표현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 다음은 MYP(Middle Years Programme)예요. 중등 단계로, 여러 학문을 통합해 배우면서 비판적 사고력과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심화합니다. PYP에서 길러온 탐구력이 이 시기에 훨씬 깊어져요.
DP(Diploma Programme)는 16세에서 19세,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단계예요. 단순한 입시 준비가 아니라, 연구와 논문 작성, 토론과 발표를 통해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죠.
마지막으로 CP(Career-related Programme)가 있어요. 16-19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 엄정성과 직업 전문성을 통합한 교육 프로그램이죠. 단순한 직업 기술 습득을 넘어, 이론과 실무의 균형 있는 융합을 통해 학생들이 특정 진로 분야에서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윤리적 판단력을 함양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 기존 교육과 비교했을 때 IB가 제시하는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기존의 교육이 ‘정답을 외우는 공부’에 가까웠다면, IB는 ‘질문을 던지는 공부’에 가까워요. 학생이 스스로 궁금한 걸 찾아가고, 그 답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힘을 키우는 거죠. IB에서는 표준화된 시험 점수보다 학생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에세이, 프로젝트, 발표, 그리고 외부 평가자와의 협력 등을 통해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각도로 평가해요. 이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지 않는, 지속적이고 공정한 평가(continuous assessment) 방식이에요.
그리고 IB가 궁극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건 단지 성적이 아니에요. 비판적 사고, 창의력, 의사소통, 문제 해결력,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균형 잡힌 성장이에요. 이런 역량은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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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IB 도입 학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산의 배경과 국내 교육 현장의 변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요즘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미래 역량’이에요. 지식 자체보다, 그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이 중요해졌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IB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안이자 촉매가 되었어요. 공교육 안에서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도 의미가 있죠.
지난 2019년에 대구와 제주에서 처음 시작해 지금은 12개 교육청이 IB와 MOC를 체결했습니다. IB는 이제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실 문화를 바꾸고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색깔로 IB를 도입하면서, 우리 교육의 다양성이 점점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 IB 도입이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나요?
현장에 가보면 그 변화가 정말 뚜렷하게 느껴져요. 충청·경상·전라권 같은 지역에서는 도농 복합 모델로 IB를 도입했는데,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지역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가 교육 기회의 균등화에 분명히 힘을 보태고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 표선이에요. 초·중·고 전 과정에 IB를 도입했는데, 그 결과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타지역에서 전입한 학생이 눈에 띄게 늘었고, 학교가 지역의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죠. IB가 단순히 학교 안의 수업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지역 전체의 교육 생태계를 되살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 제주 표선학교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교육 체제 안에 IB 프로그램을 공식 도입한 지역이에요. 표선중학교(MYP)와 표선고등학교(DP)가 연계되면서, 지역 안에서 초·중·고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IB 학습체계가 만들어졌죠.
이 모델이 의미 있는 건 ‘함께 움직였다’는 점이에요. 제주도청은 재정 지원을, 제주도교육청은 교원 연수와 행정 지원을, 그리고 학교는 수업 혁신을 맡아서 3자 협력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말 모범적인 지역 협력 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20년 IB 도입 이후에는 눈에 띄는 변화도 있었습니다. 표선 지역 초·중·고 학생 수가 240명에서 430명으로 늘었고, 전입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을 전체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특히 표선고의 경우,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고 학생들이 제주를 넘어 다양한 지역으로 진학하는 흐름도 뚜렷해졌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IB는 단순히 학교의 교육 방식을 바꾸는 걸 넘어, 지역이 살아나는 교육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느껴져요.
─ IB 프로그램이 지역사회 재생이나 지역 교육력 강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IB의 가장 큰 힘은 ‘학교 안’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학교가 지역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제주 표선이 보여줬죠.
표선 IB 클러스터는 초·중·고가 하나의 배움의 흐름 안에서 이어져 있어요. 이 구조 덕분에 다른 학교들도 자연스럽게 IB 후보학교나 인증학교로 참여하게 되고, 지역의 교육 문화 전체가 학생 중심의 탐구형 학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대학과의 연계예요. 제주대학교가 IBEC 과정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예비교사와 현직 교사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IB 인증 교사가 늘어날수록 탐구 기반 수업이 학교 전반으로 확산되고, 결국 지역의 교육 생태계 자체가 한층 탄탄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이런 변화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효과를 넘어서 ‘교육이 지역을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주 소중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질문하는 아이, 탐구하는 교실”… IB 교육이 바꾸는 수업 (인터뷰①)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 홍정아 IB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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