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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AI 교육을 받고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기업은 교육 후 AI 활용이 조직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또 다른 기업은 한 달 뒤 원점으로 돌아갔다. 차이를 만든 건 ‘무엇을 배웠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학습했는가’였다. AI 기업교육 시장에서 경쟁의 축이 바뀌고 있다.
AI교육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AI 리터러시 교육 전문기업 에이블런의 경우 2022년 월평균 21건에 불과했던 문의가 2025년에는 1054건으로 증가했다. 업계 전반적으로도 최근 3년간 교육 문의가 10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ChatGPT 등 생성형 AI가 일상화되면서 기업·기관·학교 모두 AI 교육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시장 성장과 함께 새로운 과제도 드러났다. 박진아 에이블런 대표는 “AI 교육을 받은 기업 중 95%가 성과 측정을 못 하거나 효과를 모른다는 매킨지·MIT 조사 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기관·학교의 교육 담당자들은 “교육을 진행했는데 구성원들이 실제로 AI를 활용하지 않는다”, “단발성 교육으로 끝나 조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고민을 공통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AI교육의 양적 확대는 이뤄졌지만, 질적 성과는 여전히 숙제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기존 AI교육의 ‘콘텐츠·커리큘럼 중심 접근’에서 찾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 업체들이 “우리는 이런 내용을 가르칩니다”, “몇 시간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를 내세우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만 집중해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여러 조직에서 유사한 AI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았음에도 성과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사 S사는 팀장급 특강 이후 그 효과를 확인하고 아산·울산 공장 사무직까지 교육을 확대해 8시간 실무 과정을 진행했다.
반면 일부 기업은 전 직원 대상 일괄 교육을 진행했지만, 한 달 뒤 AI 도구 사용률이 교육 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가 좋다고 해서 학습 효과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 업계에서는 맞춤형 학습경험 설계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강의 콘텐츠 제공은 기본이고, 조직의 특성과 학습자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학습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방향 강의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다양한 학습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집중 학습이 필요한 경우 강의형 교육, 지속적인 학습 환경이 필요하면 정기적인 콘텐츠 제공, 실무 적용을 유도하려면 프로젝트 기반 학습, 심화 학습이 필요하면 워크숍 형태 등 목적에 따라 학습 방식을 달리하는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교육에서 드물게 시도되는 챌린지 방식도 등장했다. VOD 강의 수강 후 챌린지 형식의 미션을 제공하고, 직접 실습한 결과물을 인증하면 강사가 피드백을 주고 교육생 간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무조건 정답을 알려주는 일방향 강의가 아니라 경험하면서 자신의 실무에 적용해보는 것이 핵심이다. 에이블런은 이러한 챌린지 방식을 최근 개발해 기업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성인교육 전문가들은 “성인 학습은 즉각적인 업무 적용 가능성이 중요하다”며,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식보다는 직접 실습하고, 동료와 경험을 나누고,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는 다층적 접근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조직별 맞춤형 학습 설계 방식은 이미 확산되고 있다. 초기 이해도 형성을 위한 강의, 지속적인 학습을 위한 콘텐츠 제공, 실무 적용을 촉진하는 프로젝트, 심화 학습을 위한 워크숍 등을 단계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이다.
종합 미디어 기업 C사 커머스 부문은 승진자 교육에서 시작해 그 효과를 검증한 후 전사 임직원으로 확대했다. 식품 제조업 B사는 전사 교육 이후 팀장급과 전략 직군을 대상으로 한 심화 과정을 별도로 운영했다. 이들 조직의 공통점은 한 번의 교육이 아니라 단계적 학습 경험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맞춤형 학습 설계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업계 관계자는 “조직마다 문화, AI 성숙도, 학습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사전 진단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에이블런은 최근 국내 교육업계 최초로 ‘AI 리터러시 역량평가도구’를 개발해 공개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 평가도구는 UNESCO의 AI 역량 기준과 독일 본 대학병원 의학교육연구소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삼았다. 글로벌 AI 교육 전문가 53명의 다단계 검토와 델파이 기법으로 도출된 문항 체계를 국내 환경에 맞게 재구성했으며, 현장 교수진과 실무진이 참여해 문항의 적합성과 실효성을 높였다. 특히 기술적 숙련도보다 AI에 대한 태도와 활용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AI를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는지를 묻는 구성으로, AI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에이블런은 이 진단 결과를 통해 학습 출발점 확인, 역량 수준별 맞춤 설계, 조직 구성원 분석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항목별 분석과 시각화 자료를 함께 제공한다. 현재는 자사 수강생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되고 있으며, 기업 및 공공기관 요청 시 공동 활용도 가능하다.
진단 기반 설계의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에이블런은 최근 3년간 교육 문의가 1,088% 증가했으며, 상반기 기준 참여 기업·기관의 70% 이상이 후속 과정을 요청하는 등 높은 재참여율을 기록했다. 교육 만족도 역시 5점 만점에 4.8점을 나타냈다.
박진아 대표는 “교육 담당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콘텐츠는 다 비슷한데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중요한 건 콘텐츠가 아니라 우리 조직에 맞는 학습 방식을 찾고, 그 성과를 측정하며, 지속적으로 AI 리터러시를 높여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AI교육 시장의 경쟁 구도가 앞으로 더욱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히 좋은 강사,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업체와 조직별 맞춤형 학습경험을 설계하고 그 성과를 측정·개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업체로 나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2024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에듀테크(AI 교육 포함)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약 15% 성장해 8000억 달러(한화 약 100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시장조사기관은 AI 교육 시장만 따로 집계해 2025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28.5%의 성장률을 제시하기도 한다.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HRD 담당자는 “AI 도구 자체는 계속 진화하고 있어 콘텐츠는 금방 진부해질 수 있다”며 “반면 조직의 특성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학습 경험을 설계하며, 그 성과를 측정하고 개선하는 컨설팅 역량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AI 기업교육, ‘무엇을 가르치는가’에서 ‘어떻게 학습시키는가’로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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