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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회에 발의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레벨테스트 금지법)은 유아영어학원 등에서 입학을 위한 선발시험뿐만 아니라 수준별 반배정 평가까지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4세 고시’ 논란을 계기로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어린 나이에 시험 경쟁을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입학 선발시험과 반 배정 진단평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금지할 경우,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안전을 고려한 교육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 의견 수렴에는 총 1만564명이 참여했으며, 비공개 의견과 찬성 11건을 제외한 99.9%가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에는 “수준 차가 큰 아이들을 한 반에 두면 학습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다수 포함됐다.
유아영어학원들은 이미 한국학원총연합회 전국외국어교육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자정 결의에 따라 입학시험을 대부분 폐지한 상태다.
교육부가 지난 9월 전국 728개 유아영어학원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선발시험을 시행한 곳은 3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학원은 반 배정을 위한 간단한 수준 확인만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입학시험은 사실상 사라졌으며, 현재는 아이의 수준을 파악해 반을 정하는 진단평가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일부 학부모와 학원들은 이러한 진단평가마저 전면 금지될 경우,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한 반에서 수업받게 돼 학습 효과가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영어에 익숙한 아동과 이제 막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동이 함께 수업받을 경우, 수업 집중도나 흥미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 학원은 놀이와 관찰 중심의 간단한 평가를 시행해 아이의 언어 능력과 성향을 파악하고,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과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반을 구성하고 있다.
협의회는 “반 배정 평가를 운영할 때 선발 목적이 아닌 적응 목적임을 명확히 하고, 평가 최소화, 학부모 사전 동의, 점수 서열 공개 금지 등의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은 최교진 교육부 장관 질의에서 “전국에 67개 분점을 둔 A 학원이 입학시험에 이름까지 붙여 홍보한다”라며, “또 B학원은 레벨테스트 명칭을 CMC로 바꿔 사실상 입학시험을 유지한다”라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관련 사례를 확인한 결과, 해당 학원들은 현재 선착순 모집으로 전환했으며, 관찰 중심의 반 배정을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른바 ‘CMC 평가’를 실시하던 B 학원 역시 “이전에는 관련 정보를 알지 못했을 뿐이며 이후 정부 방침과 다른 학원들의 변화 흐름을 참고해 입학시험 없이 선착순으로 학생을 모집하고, 학생들의 수업 참여 관찰을 통해 반 배정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라고 밝혔다.
교육부 조사에서도 입학 선발시험을 실시한 학원은 단 3곳으로 밝혀졌다. 이들조차 현재는 협의회 설득으로 시험을 폐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협의회는 “법안 논의가 최근 현장의 변화와 개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만약 여전히 입학시험을 보는 곳이 있다면 적극 제보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협의회는 “유아영어학원의 상당수는 학령인구 감소로 원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선발시험 과열보다는 지역별 교육 여건에 맞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영어뿐 아니라 미술·음악·체육 등 유아 대상 학원에서도 수준별 반 편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학 전 수준을 확인할 수 없으면, 수업이 맞지 않을 때 반 이동이나 환불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 모두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수영·태권도 등 안전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수준 차이가 큰 아이들을 한 반에 두는 것이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협의회 관계자는 “입학시험은 이미 사실상 폐지된 상황이며, 반 배정을 위한 최소한의 관찰 평가까지 금지된다면 학습 효율 저하나 안전 문제 등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영유아의 학습권과 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고려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황혜련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학부모의 필요나 요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준별 배정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 또는 평가를 전면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곧, 헌법상 기본권인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유아의 학습 수준과 능력을 제대로 진단하고 파악할 수단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학원 등의 일방적․획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경우, 해당 수업은 그 자체로 유아에게 고통과 스트레스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으며, 생전 처음 접한 배움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은 초·중등교육, 더 나아가 대학교육과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른 모든 분야의 학습에 정신적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무분별한 규제가 오히려 등록되지 않은 프렙업체나 고액 과외 등 비공식 교육시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국회와 교육 당국은 과열 경쟁을 완화하되, 현장의 의견과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한 균형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아영어학원 레벨테스트 금지법 발의… 국회 국민 의견 수렴 1만564건, ‘반대 99.9%’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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