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두 번째 청춘을 시작합시다] 부양 대상이 아닌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조수현 샛별학교 대표
기사입력 2025.10.16 09:00

- ‘생산가능인구’ 재정의와 평생교육의 중요성

  • 함께 걷고 있는 70대 시니어와 20대 청년들. / 샛별학교.
    ▲ 함께 걷고 있는 70대 시니어와 20대 청년들. / 샛별학교.

    ◇ 근본적 인구 지형 변화, 70대 인구 20대 인구 추월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따라 한국 사회의 인구 지형이 근본적으로 뒤집히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70대 이상은 약 654만 명, 20대는 약 630만 명으로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크게 앞지르는 것은 100년 통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동시에 고령층이 소비 시장에서 핵심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건강과 여가를 중시하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소비의 중심축 역시 청년층에서 고령층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한국의 변화는 단순한 인구학적 현상이 아닌 경제 구조의 전환 신호이기도 합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한 ‘노인’의 정의를 넘어, 현실 속에서 일하고 배우며 소비하는 이들의 삶에 맞게 정책과 통계의 언어를 새로 써야할 때입니다.

  • OECD '2025 고용전망(Employment Outlook2025)’ 표지. / OECD.
    ▲ OECD '2025 고용전망(Employment Outlook2025)’ 표지. / OECD.

    ◇ 60년째 그대로인 고시대적 ‘생산가능인구’ 기준, 재검토 필요

    ‘생산가능인구 15세~64세’, 이 익숙한 숫자 조합은 60여 년 전, 한국 산업화 초기의 노동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1960년대 초, 한국은 경제활동인구조사 제도를 도입하며 ‘15세 이상이면 일할 수 있다’라는 기준을 세웠고, 이후 OECD가 제시한 15~64세 연령 구간이 그대로 통계의 표준으로 굳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짧은 평균수명과 육체노동 중심의 산업 구조로 인해 ‘65세’는 완전한 은퇴의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그 경계를 명백히 넘어섰습니다. 기대수명은 83세를 넘어섰고, 70대 중에도 활발하게 직업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전, 노동 형태의 변화, 산업 구조의 고도화, 디지털 경제의 확산 속에서 생산 가능성은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개인의 의지와 역량’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언어는 65세 이상 인구를 부양과 복지의 대상으로만 한정하며 오늘날의 고령층이 얼마나 활발히 일하고 배우고 소비하는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부양 대상’이 아닌 소비·납세 ‘큰손’이 된 고령층

    ‘은퇴세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노년층은 이제 소비와 납세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의 소비 총액은 243조 8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년보다 12% 증가한 수치로, 전체 소비 증가율(6.3%)의 두 배에 달합니다. 고령층의 지출 항목 또한 의료비보다는 여가, 문화, 외식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소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생계형 소비가 아니라 자기계발과 만족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등장이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시니어 세대는 이제 ‘부양 대상’이 아닌 핵심 납세 인구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종합부동산세 납세자의 절반 이상이 60대이며, 이들이 낸 세액은 전체의 57%를 차지하며 불과 몇 년 전보다 빠르게 늘어난 수치를 보였습니다. 이제 고령층은 소비뿐만 아니라 납세의 주체, 경제의 실질적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노년층을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생산적 시민으로 바라보아야 할 시대적 전환점임을 보여줍니다.

  • 헌법 제31조(평생교육 조항).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헌법 제31조(평생교육 조항).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수혜자에서 주체로, 변화의 핵심은 평생교육

    이 거대한 전환의 축을 잇는 것은 다름 아닌 ‘평생교육’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 5항은 국가의 평생교육의 진흥을 의무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 전체에서 유일하게 진흥이라는 적극적 표현이 사용된 영역으로, 단순히 교육 기회의 보장을 넘어 모든 세대가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함을 천명한 조항입니다.

    고령층을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로만 상정하는 방식으로는 초고령사회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은퇴 이후에도 학습과 경력의 재설계를 통해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이어가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국가는 부양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선민국은 평생교육을 인구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성인 학교(Volkshochschule)나 일본의 시민대학(しみんだいがく)은 고령층이 지역 내에서 재교육을 통해 소득과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  ‘평생교육’을 매개로 교류 중인 20대 청년과 70대 시니어들. / 샛별학교.
    ▲ ‘평생교육’을 매개로 교류 중인 20대 청년과 70대 시니어들. / 샛별학교.
  •  ‘평생교육’을 매개로 교류 중인 20대 청년과 70대 시니어들. / 샛별학교.
    ▲ ‘평생교육’을 매개로 교류 중인 20대 청년과 70대 시니어들. / 샛별학교.

    ◇ 생산의 권리를 회복하는 통로

    우리 역시 평생교육을 복지의 부속 개념이 아닌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생교육은 단지 은퇴 후 여가를 채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산의 권리를 회복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며, 삶의 경험을 재해석해 사회적 가치로 환원하는 ‘두 번째 기회’의 과정이 바로 학습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노년을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경제주체이자 시민으로 복귀시키는 인프라입니다. 또한, 디지털 문해력을 갖춘 고령층은 소비·금융·문화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합니다. 배움이 단순히 개인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쟁력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평생교육 체계는 여전히 복지 프로그램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노년층의 강의는 대부분 취미·교양 중심이며, 역량 재개발이나 직업전환 교육은 미비합니다. 이제는 여가로서의 교육을 넘어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학습 생태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대학,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이 연계한 지역 기반 학습 플랫폼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70대 학생들과 20대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 / 샛별학교.
    ▲ 70대 학생들과 20대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 / 샛별학교.

    ◇ 배움이 가능한 모두가 생산가능인구

    한 사회의 정의는 ‘누구를 주체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노인은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사회를 함께 만드는 시민이자 생산자, 활발하게 소비하고 납세하는 대한민국의 핵심 계층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그들을 다시 무대 중앙으로 이끌어내는 열쇠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구 구조의 불균형을 출산율만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배우고 일하는 생애 주기의 확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15–64세라는 낡은 통계의 틀을 벗어나 배움이 가능한 모두가 생산가능인구인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노년의 학습은 복지 예산의 소모가 아니라, 생산 가능 인구의 재편이며, 사회적 자본의 재투자입니다.

    ‘누가 부양할 것인가’의 시대에서, ‘모두가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평생교육의 진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