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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집단은 두려움이지만, 눈앞의 개인은 이웃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초기, 벨기에 서부전선에서 마주한 영국군과 독일군은 서로를 겨누며 싸우던 적군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되자 양측 군인들은 잠시 총을 내려놓고 노래를 부르며 기념품을 교환했습니다. 막연히 ‘적군 집단’으로만 인식될 때는 적대감이 극대화됐지만, 눈앞의 실존하는 개인으로 마주했을 때는 오히려 친밀감과 라포가 형성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를 ‘집단’으로만 바라볼 때 갈등은 확대되지만, 개인으로 만나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순간 편견은 허물어지고 신뢰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 세대 갈등이 청구하는 사회적 비용
세대 갈등이 우리 사회에 청구하는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정치적 양극화, 노동시장 내의 세대 경쟁, 돌봄 공백, 가족 내 갈등까지 세대 간 불신과 대립은 사회적 합의 형성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연금을 내는 청년 세대와 수령하는 기성 세대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면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세대 간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대 갈등은 정치나 제도 차원에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입니다. 사회적 부양부담의 증가는 청년 세대의 자원 배분 몫을 줄이고, 일자리 경쟁 심화를 낳습니다. 반면 노년세대는 빈곤과 소외, 그리고 복지 재원 고갈 우려라는 불안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나 정년 연장 논의 또한 세대 간 자원 배분의 갈등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그러나 어느 세대의 고통이 더 무겁다고 단순 비교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갈등의 초점을 ‘누가 더 힘든가’에 맞추는 순간, 공존의 가능성은 줄어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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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 너머의 해법, 상호 보완적 배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 경험되는 상호 이해와 존중이야말로 갈등을 해소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세대 간 학습은 주목할 만합니다. 세대가 함께 호흡하며 배우는 작은 교실에서 우리는 상호 이해와 신뢰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울샛별학교의 교실에서는 청년이 교사가 되고 시니어가 학습자가 되지만, 그 관계는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배움으로 이어집니다. 청년 교사는 시니어에게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사회적 언어를 가르치며 동시에 인생의 태도와 연륜을 배우고, 시니어는 청년에게서 배움의 즐거움과 도전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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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침과 배움이 교차하는 교실
실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우던 한 시니어 학습자가 “비록 늦게 배우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젊은 날 같아진다”고 말했을 때, 청년 교사는 도리어 용기를 얻었 습니다.
반대로, 수업 중 실수를 한 청년 교사에게 시니어 학습자가 “살아보니 처음 실수했던 일이 되려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오더라”고 격려한 순간, 배움의 공간은 세대를 뛰어넘은 동료애로 채워졌습니다.
이처럼 교실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 공간이 아니라 편견과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돌봄과 존중이 동시에 작동하는 배움의 공동체가 됩니다. 샛별학교의 철학은 이를 잘 압축합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선생님이 된다.” 나이나 지위가 아니라 경험과 태도가 곧 배움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철학은 세대 간 갈등을 소모적 경쟁으로 치부하는 대신, 상호 성장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토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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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고령화, 낮은 출산율의 그늘
한국 사회에서 세대 화합이 유독 절실한 이유는 구조적 조건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 OECD 최저 수준의 출산율, 그리고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심화되는 세대 대립은 공동체의 존속 가능성을 위협합니다. 특히 연금, 무임승차, 정년 연장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논의는 “누가 더 부담하고 누가 더 혜택을 받는가”하는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세대 간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공동체적 신뢰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호 신뢰와 존중 없이는 지속 가능한 사회적 합의도 불가능합니다.
◇ 선배 세대의 희생, 청년 세대의 도전
오늘날의 기성 세대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사회적 기반은 중장년과 노년 세대가 산업화 시기 국가의 발전을 위해 흘린 땀과 희생 위에서 세워졌습니다. 동시에 청년 세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전환기 속에서 완만한 성장, 고용 불안정, 높은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성 세대는 청년 세대의 시대적 조건을 존중하고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청년 세대 또한 ‘선배 세대’의 헌신과 공헌을 기억하며 사회적 연속성 속에서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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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을 넘어 상생의 모델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세대 간 상호 비교와 갈등이 아니라 상생의 모델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노년과 청년이 교류를 넘어 서로에게 기회와 자원이 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세대 공존을 산업 발전과 연결할 수 있는 정책과 연구가 뒷받침될 때, 세대 간의 이해는 일시적 교류를 넘어 제도적·사회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세대 공존은 추상적 이상이 아닌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를 풀어갈 열쇠입니다.
[조수현의 두 번째 청춘을 시작합시다]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배우는 교실
- ‘세대공존’이 이루어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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