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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 수업에서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쯤 놀이 삼아 했던 활동이 있다. ‘윔피키드 내 맘대로 DIY 일기’라는 책이었다. 원래 이 시리즈는 ‘학교 생활 일기’ ‘시간 탐험 일기’ ‘완벽한 여름방학 일기’ 등 주제별로 쓰인 창작 동화인데, 그중 하나인 ‘윔피키드 내 맘대로 DIY 일기’는 ‘내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나의 자서전 대망의 제1장, 무인도에 뭘 가져갈래?’ 등의 제목만 있고 빈칸은 스스로 채워 책을 완성시켜 보는 형태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5분 정도의 활동일 뿐이었지만 이 시간이면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형형한 눈빛을 보여주었던 것이 떠오른다. 자신이 창조해내는 책에 보여줬던 그 열정이 아직도 눈에 선연하다. 진로에 관련된 칼럼을 쓰자고 마음먹은 후 이 장면이 생각났던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창조력’과 ‘없던 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기’가 진로 탐색의 열쇠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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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길을 만들어갈 용기,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진로는 혼자서 마음껏 그리는 나만의 도화지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내야 하는 합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로를 찾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아는 점이 있다. 합주를 하기 전 자신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세상의 사람들은 정말로 모두 다르다는 게 그 까닭이다. 가족은 물론, 같은 직종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더라도 각각의 가진 특색과 장점은 놀랄 만큼 제각각이다. 따라서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내’가 제한된 몇 가지의 직업 범주 중에서 ‘맞는 곳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우연히 그 범주를 일찍 찾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흔하지 않은 흥미와 열정을 가진 데다 자신의 특장점이 무엇인지 아직 발견을 못한 학생이라면 ‘길이 없는 사막 위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기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몇 가지 범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에 대해 고민하고, 없던 길이라도 만들어가겠다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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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감히, 자신의 장래 앞에 진지하게 선 청소년들이 있다면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설사 그 일이 나의 장래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열정을 다해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진 크고 작은 과제들 앞에 ‘최선’을 다해 본 사람만이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세밀하게 가슴이 뛰는지 알 수 있다.
둘째,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진로를 찾는 일이 먼 미래의 일이니 미루어두고 여유를 부리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 ‘게임 말고는 좋아하는 일이 없어’, ‘학교 과목 중에는 가슴 뛰는 내용들이 없네’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 직업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 흥미가 생기는 일이 눈에 띄면 살짝 알아보기도 하고, 실제로 알아보니 내 예상과 다르다면 옆으로 미루어두기도 하면서 마음속에 집을 쌓아가라는 것이다. 몇 주, 몇 개월, 몇 년 차곡차곡 집을 쌓으면서 집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힘껏 달려가면 된다.
셋째, 진로 찾기는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다. 최근 학교에는 ‘진로’ 과목이 있어서, 적성 검사를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직업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기도 하고, 참고할 만한 사이트도 많이 공유된다고 들었다. 좋은 정보들을 얻되 나의 본질을 직업에서 찾으려 하기보다, 세상 그 누구와도 다른 ‘나’를 발견해 가는 힌트로 삼으면 좋겠다.
1964년 토오꾜오 올림픽을 앞두고 지은 지 삼 년밖에 안된 집을
부득이 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지붕을 들어내자 꼬리에 못이 박혀 꼼짝도 할 수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동료 도마뱀이 그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날라다주었기 때문이다.
- 이시영, <산다는 것의 의미>
마지막으로, 직업이란 이 사회 속에서 ‘유용한 활동’,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기도 한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원동력 되어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더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꿈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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