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명 교수 “대학 입시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성장 단계에 따른 전인적 교육입니다”(인터뷰)
기사입력 2025.09.08 10:41
  • 4세고시, 7세고시, 초등 의대반 등 최근 이른 나이의 사교육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러한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정서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쏟아지며 이는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국회 교육위 소속 강경숙 의원은 36개월 미만의 영유아에게 영어교육을 제한하는 이른바 ‘영어유치원법’을 발의했으며, 교육부 또한 전국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전수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교육학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이해명 단국대 명예교수는 학자 생활 내내 이론적인 교육을 넘어 삶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교육을 지향했다. 올바른 아버지의 역할과 교육 과정에 대해 고민하며 숱한 어려움에 처해왔다는 그는, 인성과 재능을 모두 갖춘 아이로 키우기 위한 선현들의 지혜는 무엇인지 탐색해왔다.

    이해명 교수는 “대학 입시만이 자녀 교육의 전부가 돼버리며 오늘날 교육의 의미는 심각하게 퇴색했다”며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사람의 ‘지덕체’를 기르는 전인적인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에듀는 이해명 교수로부터 영유아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시기 동안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아이들의 발달단계별 교육법에 대해 들어봤다.

  • 이해명 교수.
    ▲ 이해명 교수.

    ─ 0세부터 초등생에 이르기까지의 연령대별로 성장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출생 시의 뇌는 성인 뇌의 4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출생 후 2년 동안 4분의 3이 될 정도로 급속히 성장합니다. 생후 2~3년 동안 아이는 뇌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익히게 되는데요. 따라서 영아기에는 뇌에 어떤 자극을 통해 발달을 촉진할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모는 이미 아이의 인지 발달이 시작됐다는 것에 유의해야 하고, 애착기인 이 시기에 계속 영아와 밀착해 교감을 주고받으며 각별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3~7세를 이르는 유아기에는 신체와 인지 능력이 아이의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라납니다. 아이들이 물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야말로 가만히 있을 때가 없는, 소위 ‘말썽꾸러기’가 되는 것이죠. 보고 듣는 능력은 언어 발달과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별것 아닌 주제로도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말수가 적은 아이를 대하더라도 부모가 수다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좋아요.

    7세 이후 초등학생 시기는 언어 발달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때인데요. 1학년 때는 1만 개의 단어를 이해하고, 3~4학년 때가 되면 4만 개 단어를 습득한다고 합니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폭발하는 시기기도 하죠. 이때의 아이들은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 하며, 과학책을 많이 읽게 됩니다. 학업 성적과 지능 발달의 70% 이상이 이 시기에 결정되므로, 부모는 아이의 관심사를 면밀히 살피며 그와 관련한 학습 활동을 유도해야 합니다.

    ─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교육 방향도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성장 시기에 따른 교육법을 영유아기와 초등, 중등, 고등 시기로 나눠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영유아기에는 놀이를 통한 학습이 강조됩니다. 다양한 물건을 만지고 다루는 과정에서 감각과 함께 인지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함께 참여해 아이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부모 없이 아이들만 따로 놀게 한다면 교육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초등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갖는 갖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해요. 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해 고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 좋습니다. 그밖에도 위인전, 과학책 등을 읽히며 기본적인 사고와 이해 능력을 증진해야 합니다. 아울러 기억력이 가장 왕성한 이 시기에 외국어를 익히면 좋은데요. 저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일 때부터 매일 아침 30분간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켰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한문 공부를 시켰습니다. 여러 동양 고전을 읽히며 한자어로 된 문장을 외우게 했더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한문 공부는 문해력과 글을 쓰는 실력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독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독서는 글을 빨리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죠. 책은 읽는 것에서 끝이 아닙니다. ‘독서, 토론, 논술’의 3단계 과정은 반드시 연계돼야 합니다. 그냥 ‘책을 읽어라’라고 잔소리만 해서는 전혀 소용이 없어요.

    중학교 때는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묻게 되는 시기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남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때죠. 제 아들이 중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지고 몹시 속상해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죠. 그 후부터 저는 아들을 다양한 교외 활동에 참여하게 하고, 이웃 아이들과의 관계를 쌓는 일에도 신경을 썼어요. 이때의 아이들은 자신을 대입할 수 있을 만한 영웅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삼국지’ 같은 소설을 읽히면서 삶의 포부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좋은 학교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급 구성원이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에서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수업에 임할 수 있다면, 비싼 사교육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아이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는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부모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대학 이름에 앞서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아이가 생각하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는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 훈육이나 학습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나요?

    옛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가정과 동네를 막론하고 아이에게 훈계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전통이 잊힌 지 오래됐죠. 위대한 선현 중 한 사람인 순자는 훈계도 중요한 지식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어떤 나이부터 훈육을 시작하기보다는,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부모의 옳은 말과 행동을 보며 자란다면 그 아이는 부모를 따라 훌륭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학습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초등학교 전 단계인 영유아기에는 음성 언어가 발달하고, 초등학교부터는 문자 언어 학습이 시작됩니다. 이때 배운 문자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을 넘어서 지식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에요. 초등학생 때 공부해 놓은 것은 중고등학교 학습의 기초가 됩니다. 초등학교 때 기초가 닦여 있지 않으면 상급 학년 과정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 ─ 4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 조기 사교육 문제가 사회적 이슈죠. 이른 나이의 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교육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고난도의 문제를 오랫동안 집중해서 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지적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반복 학습을 시키면 되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고도 하죠. 아이들의 정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수학자 허준이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할 문제는 잘 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생애주기와 발달단계에 따르지 않고, 부모가 너무 앞서나가려는 것은 아이의 학습 의욕은 물론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최근 영어유치원 금지법이 발의되면서 ‘부모의 교육권 침해다’, ‘영유아 사교육의 정도가 심각하다’ 등을 근거로 의견이 대립 중이기도 한데요.

    영어 교육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3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본토인들처럼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언어 혼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죠. 외국어는 7세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도 외국어로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언어에는 그 나라 국민의 정신과 문화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모국어를 충분히 익히기도 전에 외국어를 접하게 하면 아이는 문화적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온전히 뿌리내린 후에 외국어 교육을 시켜도 늦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초등학교 시기를 외국어 교육의 적기로 추천합니다.

    영국에 잠깐 머물면서 영국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을 봤어요. 프랑스어가 유럽의 공용어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요. 외국어 공부는 단지 ‘다른 나라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 돼야 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외국인과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은 입시 위주로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인지 학습을 모두 올바르게 진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 교육은 점수 경쟁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라야 합니다. 학교 교육 과정이 단지 주입식 암기, 점수 획득, 기술 중심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수학 천재라고 인정받은 어느 학자에게 “당신은 수학 이외에 다른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수학만 공부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해요. 교육은 ‘지덕체’를 골고루 길러내는 과정입니다. 수학 공부만 잘해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요.

    지금 우리는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교과목을 쉽게 천대합니다. 음악, 미술, 문학, 사회 등의 교과목은 학교 교육에서 외면받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덕을 기르는 정서발달과 점수를 높이는 학습법은 하나가 돼야 합니다. 

    ─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성장시키기 위해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훈계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작은 마을이어서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문화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말씀을 하나하나 듣고 새기고 실천하려 애썼지요.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아이에 대해서는 동네 사람들이 ‘누구네 집 자식’이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고국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습니다. 미국에 유학 온 전 세계 아이들의 성적을 국가별로 매긴 내용이 실린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요. 한국이 유학을 마칠 때 학위를 받고 돌아간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다른 나라는 유학생의 30% 내외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우리나라 유학생은 70% 이상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가진 문화적 전통이자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중에도 우리는 학교를 세우고 공부를 했습니다. 1970년대에 평화 봉사단으로 한국에 와서 일했던 미국인들이 얼마 전 다시 한국에 왔을 때, 그들은 우리의 발전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의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과 근면성 덕분에 이토록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죠.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였습니다. 임금과 교사와 부모는 하나라고 가르쳤죠. 교사를 존중하는 것은 우리의 원래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부모들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교직을 떠나는 교사가 매일 생겨나는 것이 현실이죠. 우리의 전통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 끝으로, 자녀 교육을 위해 애쓰는 부모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 부탁드려요.

    남들이 말하는 좋은 학원, 좋은 학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젊은 엄마 아빠들이 많이들 참고한다는 ‘맘카페’에서 수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겠지만, 저는 공부에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는 것을, 아이의 실력을 키우는 데는 그저 오랜 숙련과 노력만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부모여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면, 공부의 대가였던 선현들의 오랜 지혜를 살펴보세요. ‘백점’이 아닌 ‘백년의 가르침’이, 아이와 부모의 인생길을 든든히 지켜낼 것입니다.

  • ☞ 이해명 교수

    단국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의 교육학자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북일리노이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노던일리노이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지냈다. 교육학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사람의 지덕체를 기르는 전인적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강조해왔다. 특히,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와 관련해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아들아 너는 이런 책을 읽어라’, ‘자녀 성공의 키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자식을 기르며 본인이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간 ‘백년의 부모 수업’을 출간하고, 부모와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조언했다.